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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YMCA/만나러갑니다

너랑 YMCA 함께 해서 기쁘고 즐거워~

by 이윤기 2024. 5. 6.
5월호 마산YMCA 웹진 <만나러갑니다> 코너에서 소개드릴 분은 지난 3월 14일 이사회 정기총회에서 선출되신  신임 김일영부이사장 입니다. 5월 2일(목) 오후 5시 30분, 마산 창동에 있는 카페161에서 김일영 부이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이날은 신삼호 이사장님 초청으로 임원 이사님들과 실무자들이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날이었는데요. 1시간 일찍 만나서 인터뷰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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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부이사장님, 중책을 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선 YMCA 회원들에게 소개를 좀 해주시지오. 고향과 자라온 곳이 어디신지요?

김일영: 네 저는 삼천포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사천과 통합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삼천포시였어요. 초등학교는 삼천포에서 다녔고, 중고등학교는 사천에서 다녔습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미술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나는 커서 ‘미술을 할거야’하고 마음먹었습니다. 삼천포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교가 진주 경상대학이었고 미술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지요. 대학을 졸업학고 미술 교육을 하면서 첫 번째 관심은 미술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교사로 일하다보니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윤기: 그럼 마산에는 어떻게 오시게 됐습니까?

김일영: 대학에서 남편하고 연애를 했는데요. 남편이 경영학을 전공하고 통영으로 첫 발령이 났다가 진동에 있는 지금 다니는 회사로 옮겼어요. 결혼을 하면서 남편 직장이 있는 마산으로 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마산이 참 낯설고 정이 하나도 안 들었는데 살다 살다 보니까 정이 스물스물 자라서 이제는 고향 못지않게 마산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자란 곳이 마산이니까 좋아하게 된 것도 있구요. 결혼 이후에는 대부분 마산에서 살았어요. 교사니까 10년에 한 번씩 다른 지역(진영, 통영)에 나갔다오기는 했지만 30년을 마산에서 살았고, 이제는 스스로도 마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향 친구와 만나서 결혼했어요. 우리 남편 꽤 괜찮은 남자예요

 


이윤기: 그럼 남편분 고향이 마산인가예?

김일영: 우리 남편하고 나 하고는 고향 친구에요. 고향 동네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 아주 오랫동안 그냥 아는 고향 친구로 지내다가 대학 때 연애를 하게 되었어요. 지금 마산에서 도의원으로 활동하는 정규헌 도의원도 고향 친구였어요. 남편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였지요. 어릴 때 제가 막 연애하고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고, 남편도 수줍음이 많고 그랬어요. 그냥 아는 친구로 지내다가 대학교 가서 동문회에서 만났는데, 그때도 친구였어요 그냥, 그러다가 나는 졸업하고 발령을 받았고, 남편은 군대를 가면서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그렇게 쑥스러워하면서 연애가 시작되었어요.

이윤기: 미술 작가이자 교사로서 쭉 살아오셨는데.......YMCA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김일영: 사실은 제가 교원대 대학원을 다닐 때 한국문화예술교육원이 생겼어요. 우리나라에 문화예술 교육을 하는 문화관광부 산하의 단체가 그때 처음 생겼어요. 제가 대학원을 마치고 나서 경남 지역 리포터로 활동을 했어요. 제가 미술 교사니까 청소년 문화예술단체나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곳을 취재해서 리포트를 작성했는데, 그 때 마산공설운동장에 있는 청소년문화의집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지금 양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이지양 관장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리포터를 썼지요. 그리고 제가 마산 서중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청춘건어물을 하고 있는 임종윤(시민사업위원)이 우리반 부반장이었고, 김경년 이사와도 인연이 맺어졌지요. 그러면서 청소년사업위원회 활동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시부지기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마 2004년일겁니다. 박영민 전 이사장님이 청소년사업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였어요. 

 

이윤기: 세월이 진짜 엄청나게 빠릅니다. 저는 김일영 이사님을 처음 뵌 기억이 욕지도에 근무하실 때 청소년사업위원회가 수련회하러 갈 때 함께 갔을 때입니다. 그 전에는 성함만 알고 있었는데 욕지도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김일영: 맞아요. 제가 욕지도에 근무하는 동안 위원회 활동을 못했잖아요. 그래서 청소년사업위원들이 두 번 정도 왔었어요. 내가 위원회 활동을 못하니까 위원들을 보고 싶었어요. 청소년사업위원회가 친정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욕지도에 놀러오라고 초청을 했지요. 한 번은 하해근 이사님 요트를 타고 왔는데 그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또 한 번은 우리 학교를 방문했을 거예요.
욕지도 근무는 내 인생에서 참 괜찮고 쓸쓸했던 기억이에요. 섬 배타적인 문화가 있어요. 사람들이 제주도가 배타적이라고 하잖아요. 욕지도 외부인 특히 여성한테 굉장히 배타적이었는데 그걸 온몸으로 느낀 곳이 욕지였어요. 그래서 지역 주민들하고 활동을 많이했어요.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기들한테 아무조건 없이 그냥 막 줬어요. 내가 가진 재능으로 무료로 수업을 계속 해줬지요. 예산을 따서 아이들한테도 특별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고......그렇게 엄마들, 아줌마들과 활동하면서 친해지고 나니까 좀 살만해지더라구요. 사람들 마음의 문을 열고 스며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오랜 노력으로 나중에는 마음을 얻게 되었고, 지금도 욕지에 가면 밥 사줄 좋은 인연들을 맺게 되었지요.

이윤기: 청소년사업위원회 활동에 보람을 느끼고 참여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김일영: 네 청소년사업위원회가 좋았던 것은 제가 늘 만나는 미술하는 사람들, 그리고 교사로서 만나는 사람들하고 좀 달랐어요. 세상이 원하는 교사의 이미지가 있고, 저도 최대한 거기에 맞추려고 하지요. 하지만 미술 수업은 최대한 나를 드러내야 하는 작업이다보니 미술과 교육 사이에 간극이 좀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실제로 어떤 학생에게서 그런 말을 직접 들은 적도 있어요. “선생님은 미술 활동을 할 때는 오픈마이드로 확 열려있는데, 옳고 그름에 관한 교사 역할을 할 때는 우리를 가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확실이 그런 부분이 있지요. 교육은 보수적이어야 되고 예술은 좀 열린 마음이 돼야 되는데 그 사이에서도 나도 참 힘든데 너가 그걸 눈치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사업위원회에 와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활동을 경험하게 되었지요.

 

경제적 이득 없는 일에 재능을 쏟는 위원들에게 감동 받았어요

 


이윤기: 그렇다면, 청소년사업위원회의 매력은 어떤 거였습니까? 

 

김일영: 여러 가지 매력이 있는데 첫째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청소년사업위원으로 활동하는게 나에게 경제적으로 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런데 모두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아무 욕심없이 막 내놓는 것이 놀랍고 매력적이었어요. 저는 건강 때문에 술을 안 먹지만 체력이 되는 한 술자리에도 가려고 하는데요. 늘 여러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는데, 정말 이 사람들 참 매력있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나이도 다르고 사는 것도 참 다르지만 서로 계산적이지 않는 정겨움을 발견했어요. 처음에는 좀 쭈뼛쭈뼛했고, 교사로서 어떤 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런 걸 확 내려놓고 나도 까불 수 있고, 마음을 확 풀렸다고 할까요? 절대 다른 곳에서 일부러 만들 수 없는 모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윤기: 청소년사업위원회 혹은 YMCA 활동을 통틀어서 좀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을까요

 

김일영: 연말에 송년행사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오르는데요. 저는 청소년사업위원회에서만 활동하고 있었는데, 송년 행사에 참석해보니 다른 위원회들이 많이 있고, 다양한 회원 조직들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대형 포토존 현수막에 여러 회원 조직 이름이 적혀 있는데....., 송년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느낀 건 뭐였냐 하면 송년 행사를 할 때 나는 청소년 사업위원회 청소위 활동만 이렇게 했다 아닙니까? 그리고 청소년사업위원장이 되면서 당연직으로 이사회에 들어오면서 살짝 긴장했거든요. 그런데 이사회에서 또 좋은 분들을 만나고, 실무자들이 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에 대해 보고 받으면서 YMCA가 세상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나도 여기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참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특히 젊은 실무자들이 참 매력적이었어요. 이사회 하면서 젊은 간사님들이 활동한 거 보고 받으면서 나보다 한 참 어린데도 참 괜찮은 젊은이들이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활동을 좀 더 열심히 해야 되겠구나 생각하는 계기도 되곤 했어요.

이윤기: 그래도 부이사장 직책을 맡게 되셔서 좀 당황하시지 않았습니까?

김일영: 당연히 당황했죠. 학교에서 부이사장을 맡아달라는 신삼호 이사장님 전화를 받고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 한참을 설득하시는 말을 듣고 있다가 다른 분을 추천하기도 했어요. 그렇데 이사회에서 제가 선출되었더라구요. 그래서 남편한테 이야기 했죠. “내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음을 다해서 해야겠으니 옆에서 당신 좀 도와달라” 고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영광스럽기도 하다”고 했죠.

우리 남편이 참 괜찮은 남자거든요. 이렇게 답을 하더라구요.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돕겠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역할을 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윤기: 부이사장 역할을 맡으시면서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예?

 

김일영 우리YMCA가 젊은 사람들의 공동체 이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YMCA를 남성 단체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활동할 수 있는 지평을 좀 넓힐 필요가 있구요. 젊은 엄마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프로그램도 필요한 것 같아요.
회원 모집은 아직도 좀 어려워요. 제 성격이 남한테 회원으로 활동해달라, 후원해달라 이런거 부탁하는게 어려워요. 몇년을 기다리고 기다리가가 밥을 사주고, 차도 마시며서 이렇게 부탁하거든요. 그 분들에게 YMCA 활동을 이야기 해주고, 지금 젊은 친구들이 하는 일을 당신이 돕는거라고 이야기 해주고, 고맙다는 말도 해주고 그럽니다. 너랑 함께 YMCA 활동을 하는 것이 즐겁고 좋다는 이야기를 서로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YMCA회관이 좀 머물고 싶은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윤기: 비슷한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앞으로 마산YMCA가 이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하는 제안이 있을까예?

김일영: 지금 우리가 청소년 활동과 청소년 모임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잖아요. 저는 젊은 아줌마들, 젊은 엄마들 모임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많은 아이들이 경쟁에 내몰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금전지상주의가 팽배해 있는데요.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을 좀 내려놓고 따뜻한 아이들을 기르는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YMCA가 엄마들과 이런 문화를 바꿔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창의적인 활동도 필요할 것 같아요. 뉴스에서 유럽의 미술관을 소개하는데, 미술작품 앞에 침대를 놓고 잠을 잘 수 있도록 했더라구요. 간단한 식사를 하고 침대에서 잘 수 있게 해놨는데, 미술 작품을 온전히 내 것처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YMCA 본관도 괘 잘 지어졌는데, 회의나 모임 공간을 넘어서서 사람들이, 회원들이 더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이윤기: 등대나 좋은 아빠 모임을 통해하고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좀더 활성화시키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들었습니다.

김일영: YMCA는 프로그램이 중심인데요. 뭐랄까 공간적으로 엄마, 아빠들이 우리 아지트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부분적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누구나 오면 거기에서 고민을 할 수 있고 아이들도 놀게 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공간을 가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윤기: YMCA 활동에서 만난 분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김일영: 처음에는 어른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청소년이 떠올랐어요. 한 4~5년 전에 멘토-멘토링 활동으로 만났던 청소년인데요. 멘토링 했던 애가 정확하게 제가 이름도 생각나는데 그 두 아이가 지금도 생각나요? 두 아이가 다 엄마가 부재하였는데요. 제가 여성이고 엄마라서 더 마음이 같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굉장히 조용하고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요. 같이 밥도 먹고 좋은 장소도 찾아가고 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더라구요. 나중에는 제가 애들이 좋아하는 고깃집을 데리고 가지 않게 되었고, 내가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은 곳, 괜찮은 한식집으로 갔어요.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 내가 이 음식을 너희들한테 먹이고 싶어...... 고기 말고" 
고깃집도 데리고 갔지만 고기가 몸에 좋기만 한건 아니잔하요. 아이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줬어요. 나중에 고성에 항공고등학교를 갔어요. 방학마다 만나기로 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만나지 못했는데.......학교 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어요. 대단한 걸 해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잘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영원하거든요.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것,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지 싶어요. 이런 활동을 함께 했던 YMCA청소년사업위원들도 참 매력있는 분들이지요. 

 

이윤기: YMCA 활동이나 성장을 위해서 내가 가진 재능을 좀 보태고 싶다 그런건 없을까예?

김일영: 재능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서....... 사실 제가 미술 교사로서 활동하고 있고, 또 하나 예술가로서 또는 문화나 이런족에 관심이 아주 많아요. 마산해양신도시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유치한다고 했었잖아요. 지금 흐지부지 되는 것 같아 정말 아쉬워요. 청소년들이 국회의원 후보자들과 정책 간담회를 할때 같이 참여했었는데요. 아이들에게 계속 지방은 돈이 없다는 말만 하는 것을 보면서 화가 좀 났었어요.

 

가정 살림 빗대보면  엄마가 우리 집 경제 사정 내에서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 내잖아요. 학교 영양사도 주어진 예산이 똑같고 재로도 똑같지만,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더 근사한 점심을 만들어 내는 분들이 있거든요. 저는 그게 창의성과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마산을 자꾸 서울하고 비교하지 말고 마산의 특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울보다 나은 장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역은 여유가 있거든요.정서의 여유라든가....서울 간 애들 중에서는 그 각박한 상황에서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안 되는 애들이 상처받고 돌아오고 막 그러잖아요. 저는 어른들이, 지도자들이 벽돌밖에 없다면 벽돌로 지을 수 있는 근사한 집을 짓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예산이 딱 이 정도면 그 돈으로 지역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창의적인 정책을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화가 나더라구요. 시금치밖에 없으면 시금치를 가지고 파스타도 만들었다가 나물도 만들었다가 지금 있는 밥도 만들어 죽도 만들고 그럴 수 있는거잖아요. 우리 지역 살림의 규모가 이 정도밖에 안 되면 이 정도 갖고 어떻게 곳곳을 좀 놓치지 않고 어떻게 매력적으로 할까를 고민해야지 왜 서울만 쳐다보고 있냐 싶어서 화가 났어요. 

 

나에게 YMCA는 아무도 모르는 숲이다.

 

 

이윤기: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YMCA는 OOO 이다. 

김일영: "깊은산 오솔 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가 참 좋은데요. 깊은 숲속에 옹달샘이 있어가지고 거기에 아무도 모르게 나만 먹고 싶은 것처럼 "저에게 YMCA는 아무도 모르는 숲이다"라고 생각해요. 주변 지인들에게 YMCA를 소개할 때도 있는데, 그 매력을 잘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그래서 YMCA는 저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숲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윤기: 혹시 이제 제가 질문 안 드린 것 중에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김일영: 다 한 것 같아요. 세상을 중심으로 마산YMCA와 우리가 살고 있는 마산이 고유의 독특함 가진 도시, 멋진 시민운동을 하고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게 우리가 우리 회원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좋은 도시를 꿈꾸는 수다모임이 YMCA 안에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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