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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YMCA/만나러갑니다

30년, YMCA는 일터이자 삶터였다.

by 이윤기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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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회원 인터뷰 <만나러 갑니다>는 근속 30주년을 맞은 위카페다온 김서현 센터장입니다.

1993년 11월 15일 마산YMCA 실무자로 입회한 김서현 센터장은 지난 11월 15일 근속 30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2월 4일(월) 오후 4시 30분 마산합성동에 있는 위카페 다온을 방문하여 김서현 센터장을 인터뷰하였습니다. 막상 30년 동안 함께 일해 온 동역자인 제가 인터뷰를 하다보니 함께 공감하는 옛 기억을 되짚을 수 있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서로 너무 잘 아는 사이라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1993년 마산YMCA 총무부 실무자로 입회하였습니다.  당시 마산YMCA가 위탁운영하였던 <경상남도청소년종합상담실> 개관 준비에 참여하고 94년 중반부터 본관 총무부 실무자로 활동하였습니다. 2002년부터 훈련간사로 사회교육부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05년부터  사회교육을 총괄하는 사회교육부장으로 오랜 기간 어린이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켰습니다.
2019년 마산YMCA가 경상남도 교육청으로부터 학교밖청소년을 지원하는 <위카페 다온>을 위탁운영하면서 4년째 센터장을 맡아 분투하고 있습니다.

 

 

 

이윤기: 먼저 근속 30주년 축하드립니다. 매달 하는 회원 인터뷰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1993년 11월에 마산YMCA 실무자로 입회하셨는데...어떻게 마산으로 오시게 되었나요? 제가 알기론 진주가 고향이신데...

 

김서현: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결혼(5개월 후에 결혼을 하였음)을 생각하면서 마산으로 옮겨와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두 군데 정도 일자리가 있었는데...여러 고민 끝에 결국 마산YMCA에서 일하게 되었지요. 경상남도청소년종합상담실 공개 채용에 응모했는데, 짧은 기간 개관 준비에 참여한 후 본관 총무부로 옮겼습니다. 결혼을 마음먹고 있었고, 남편이 경남매일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산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던것 같아요. 제가 93년 11월 15일에 입회하였고 94년 4월 10일에 결혼을 했어요.

 

이윤기: 그렇죠. 입회하고 5개월만에 결혼을 하셔가지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청접장에 적힌 남편 이름을 보고 많은 분들이 깜짝 놀랐었지요. 그런데 왜 하필 마산YMCA였을까요?  아마 당시 알아보시던 다른 일자로보다 조건이 좋지 않았을텐데요.

 

김서현: 그 때는 어려서 그런 생각을 잘못했던가봐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것이 YMCA라면 결혼 후에도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당시만해도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는 결혼 후에 여성직원들을 퇴직시키는 일이 흔히 있었다.)

 

이윤기: 저도 그렇습니다만, 아마 30년이나 일을 할 줄은 모르고 입회 하셨을텐데요. 중간에 어느 시점에 내가 여기서 일을 길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때가 언제쯤일까요?

 

김서현: 돌이켜 생각해보면 면접하러 갔을 때 되게 인상 깊은 경험을 했어요. 여성 실무자들이 사무실에 많이 있었는데, 남자 간사가 커피를 가져다 주더라구요. 제가 YMCA 오기 전에 일반 회사에 근무 했었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일반 회사에서는 남자 직원이 커피심부름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거근요. 남자 직원이 차를 들고 오는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30년을 일하면서 힘든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하거나 자주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일단 구체적으로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거든요. 

 

남자 직원이 차를 들고 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윤기: 아니~~ 힘들다는 이야기, 그만 두고 싶다는 이야기 저는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김서현: ㅎㅎ 맞아요. 힘들다고 투덜거린 적은 많이 있지요. 실제로 힘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사표를 내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 YMCA활동에 전환기가 되었던 경험은 분명히 있어요. 아마 2002년 사회교육부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2003년 쯤에 "YMCA 회원운동에서 희망찾기"라는 주제로 진행했던 어떤 연수에 참여했어요. 제가 자료집도 가지고 있어요. 그 때 연수가 '울림'이 있었고 오랫 동안 YMCA 활동을 하면서 가끔 그 연수 자료집을 꺼내보고 참고할 때도 많았어요. 제가 업무 특성상 다른 실무자들에 비해서 운동적인 '울림'이 있는 경험을 할 기회가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남들보다 좀 늦게 그런 울림이 찾아왔는 거지요. 

 

이윤기: YMCA 활동에 재미가 붙은 건 사회교육부로 옮긴 이후부터죠?

 

김서현: 네 제가 입회하고 나서 본관으로 왔을 때 재정이 참 힘들었어요. 대략 10년쯤 일하고 총무부 간사를 그만둘 때까지도 재정이 나아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1997년 IMF를 전후해서 가장 힘들었어요. 재정이 어려워서 힘든 것도 있지만 다른 일을 시작해보니 힘들었던 요인 중에는 총무부 간사의 업무 특성도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총무부 간사는 다른 모든 부서가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잖아요. 그러다보니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는데...잘 하는 것은 티가 안나고 잘못하거나 실수하는 것은 티가 많이나는 그런 업무였어요. 

어린이 사회교육 업무를 해보니까 내가 일하고 노력하는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모집)가 나타나더라구요. 그러니까 YMCA 일에 본격적으로 재미가 붙은 것은 사회교육부 일을 하면서였던 것 같아요. 어린이 생태교육(파브르 생태학교), 어린이 역사교육(역사탐험대, 근현대사 탐험대)을 두 축으로 각종 캠프활동 등을 통해 사회교육, 대안교육으로서 YMCA 어린이 사회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윤기: 지난 30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뭘까요?

 

김서현: 힘들었던 기억 많은데...너무 재정이 힘들어서 돈이 없어서 힘들었던 기억이 많아요. 제가 총무부 간사로 일하던 시기에는 돈이 없어서 월급을 한꺼 번에 못주고 쪼개서 주는 일이 다반사였구요. 거래처 외상값이 너무 많이 밀려서 전화 받는거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맨날 돈이 없다고, 기다려달라고 이야기 하는 역할이 힘들었지요. 그리고 내 월급을 쪼개 받는 것도 문제였지만 총무부 간사로서 동료들 월급을 쪼개서 줘야하는 것도 참 힘들었어요. 

 

저와 김서현센터장이 함게 보낸 30년의 공통된 기억에 따르면, 1997년 IMF를 전후한 시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원래부터 YMCA는 어려웠는데...IMF 위기를 맞았던 셈입니다.  당시에도 실무자들이 여러 가지 수익 프로그램을 통해 적지 않은 수익을 거뒀지만, 회관이 없었던 YMCA  회관의 높은 월세를 감당하기에 늘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실무자들이 받을 가능성이 없던(?) 상여금을 반납하고 급여도 일부 반납해서 YMCA를 지탱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2000년에 양덕동(526-12)에 처음 자체 회관을 마련한 후에도 월세만큼 많은 은행이자를 감당해야 했지만...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사정이 나아졌던 것 같습니다. 

 

이윤기: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것 어찌보면 센터장님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문제였고,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중간에 휴직하고 두 달간 휴가를 하셨을 때가  아니었나요?

 

김서현: 네 맞습니다. 2014년 도에 긴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1개월은 유급 휴가 1개월은 무급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 때 함께 일하던 동역자들이 두 달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응원해준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분명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돠 제가 그때 정말 엄청 소진되었거던요. 당시에 제가 엄청 에너지를 쏟아서 했던 일들이 성과가 안 나왔어요. 노력하고 공을 들인 것에 비해서 '시너지'가 생기지 않으니까 사람이 소진되더라구요. 일이 엄청 힘들었던 건 아닌데... 내가 에너지를 엄청 쏟는 일에서 내가 기대했던 성과와 피드백이 안 나오니까...소진되는 느낌에 갇혀버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만큼은 아니지만, 다온에서도 힘든 시기가 잠깐 지나가긴 했어요. 모두가 맨땅에 헤딩하면서 시작했는데...첫 해, 두 해를 마무리 하면서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하나 둘 그만두고 나가는 것이 힘들었어요. 여기까지 기초를 닦았으니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마음을 모으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함께 경험을 쌓은 후배들이 그만두고 나가니까...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생각해보면 다 지나간 일이지만 당시에는 힘든 경험이었어요. 사실 해마다 늘 어려운 일은 생기잖아요. 이제는 스스로에게 "그때보다 니가 더 힘드냐?"고 물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이 그렇게 성장하는가봐요. 

 

이윤기: YMCA 하기를 참 잘했다 싶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김서현: 아무래도 어린이 사회교육 프로그램이 학부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던 시기였습니다. 2002년에 사회교육부로 옮겨와서 제가 처음 기획단계부터 주도하는 프로그램들을 하게 되었고, 또 그게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마음에 '시너지'가 생겼던 것 같아요. 파브르 생태학교, 역사캠프, 근현대사 캠프, 역사교실, 근현대사 교실 같은 프로그램이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면서 저도 성장하고 아이들도 같이 성장하는 그런 경험을 했었지요. 

 

이윤기: 30년을 돌이켜보면서...YMCA를 안 했다면 내가 이렇게 안 살았을텐데... 뭐 이런거 없을까요?

 

김서현: YMCA에서 영향 받은 거 엄청 많아요. 제 삶의 거의 80% 이상을 지배하는 것이 YMCA였다고 생각합니다. 생태 환경에 대한 관심, 조금 불편하더라도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한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것, 좋은 먹거리를 구입하려고 노력하는 것, 정치의식이 명확해진 것, 촛불 집회에 열심히 나갔던 것.... 이런 것들이 YMCA에서 일했기 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보기엔 센터장님과 남편분 성향으로 보면, 다른 일을 하셨어도 이렇게 사셨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김서현 센터장께서는 YMCA에서 공부하고 훈련 받는 과정이 아니었다면 좀 더 편한 삶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책도 일고 공부했지만 아마 YMCA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면... 달랐을 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나에게 YMCA는 삶터·일터이다

 

이윤기: 지난 30년 동안 YMCA에서 만난 사람 중에 나에게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은?

 

김서현: 그냥 누구를 콕 찍어서 말하기는 좀 그렇고...YMCA에서 만나는 이사님들이나 위원님들...유지지도력이라고 그러지요. 그분들의 삶을 곁에서 보면서 참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 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제가 YMCA 밖에 있는 다른 모임에 나가보니까 YMCA 이사님들처럼 품위 있는 분들이 별로 없더라구요. 저는 YMCA 이사, 위원님들을 보면서 "내가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윤기: 연차가 짧은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서 해주고 싶은 말씀?

 

김서현: 저는 공부를 하라고 권해주고 싶어요. YMCA 안에도 이런 저런 학습의 기회가 많기는 하지만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저 같은 경우는 학부 과정을 방송대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공부를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듣는 것, 정해진 기간에 맞춰 과제를 제출하는 것 이런 공부가 좋았어요. 

혼자서 공부하면 좀 미룰 수도 있고 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그럴 수 없잖아요. 약간 짜여진 틀이 있기 때문에 더 꾸준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후배들이 대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면 본인도 성장하고 덩달아 YMCA 활동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해요. 자기 업무와 관련하여 대학원 공부를 하고 계속 YMCA 활동에 남으면 좋은 것이고, 혹시 YMCA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좋은 지도력으로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윤기: 인터뷰를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은데요. 30년을 했지만 아직 못했던 것... 혹은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김서현: 사실 제가 자격증 따고 이런 걸 좋아하는 편이고, 또 그런 분명한 결과물이 있어야 내가 한 해를 잘 보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성향인데요. <위카페 다온>에서 일을 해보니까 물리적인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책임지는 자리에서 일을 하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1급 자격증을 취득한다던지 그런 시도를 하기가 어렵더라구요. 

앞으로 남은 일은 박사 학위를 마무리 하고 싶어요. 제가 일하는 다온을 질적 연구를 해서 박사 학위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아서 계속 고민입니다. 

 

YMCA 안에서는 새로운 평생교육의 좋은 사례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지금 제가 다온에서 일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쏟는데 한계가 있는데요. 저는 전문직으로 은퇴하는 세대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좀 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할 때 에너지를 많이 받는 사람인데요. 서울에는 전문직 은퇴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은데... 지역에서는 별로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경남지역 창원지역에도 없지는 않을텐데...노출이 안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분들을 모으는 게 힘들다고 하지만...저는 힘든 일이니까 해보고 싶고, 그래서 경제력이 있는 분들이니까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강좌를 해보고 싶어요. 

 

이윤기: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YMCA란?  OOO이다. 

 

김서현:  나에게 YMCA란 일터·삶터이다.

YMCA에서 일하면서 저는 일터와 삶터의 경계가 불 분명해졌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YMCA에서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YMCA 공동체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으니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20대, 30대, 40대, 그리고 50대 제 삶에서 YMCA에서 보낸 시간을 빼고 남는 것은 별로 없네요. 힘든 순간이 많긴 한 것 같은데 ...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좀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가시밭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꽃길도 아니었습니다.

마산YMCA 회원 여러분 ~

한 일터에서 30년을 보낸 김서현 센터장을 격려 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의 삶은 곧 역사입니다. "김서현 당신이 YMCA입니다."

앞으로 남은 날들도 그 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잘 발휘하도록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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