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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YMCA/만나러갑니다

17년차 Y-역사 선생님 김연진 회원

by 이윤기 2023. 8. 31.

 

이 달의 회원 인터뷰는 17년차 YMCA 역사 선생님 김연진 선생님입니다. 지난 31일(목) 오전 11시 한일타운 4차 상가에 있는 역사교실 <역사의숲>에서 김연진 회원을 인터뷰하였습니다. 에너지 넘치는 초등학생들과의 역사 수업을 마치고 숨돌릴 틈도 없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김연진 선생님은 2006년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할 무렵 창원대학교 남재우 교수님의 추천으로 마산YMCA 역사 탐험대 지도자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김서현 센터장님이 어린이 주말체험 활동으로 '어린이 역사 캠프'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함께 활동을 시작하여 올해까지 17년째 어린이 역사 캠프, 근현대사 산책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이윤기: YMCA 회원들에게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김연진: 17년차 마산YMCA 역사 선생님이면서 YMCA 아기스포츠단을 졸업한 세쌍둥이 엄마 김연진 회원입니다. 

 

이윤기: 17년차라고 하셨는데 언제 어떻게 마산YMCA와 인연을 맺으셨나요?

 

김연진: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할 때였는데요. 창원대학교 남재우 교수님이 석사과정 지도교수님이셨는데(당시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 마산YMCA 김서현 간사님의 요청을 받고 저를 역사 강사로 추천해주셨어요. 그때가 스물 네살 때였는데요. 김서현 센터장님과 양덕동에 있는 YMCA  회관에서 어린이 역사 탐험대를 기획 단계부터 함께 준비하였습니다. 

 

이윤기: 저도 오랫 동안 YMCA를 하고 있지만 선생님도 대단하신데요. 보통 자원지도자나 강사는 3~4년 하고나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오고 계시는가요?

 

김연진: 저도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은 사실 잘 몰랐는데요. 일단 초반에는 김서현 센터장님이 사회초년생인 저에게 칭찬과 격려를 너무 많이 해주셔가지고 약간 거기에 취해서 초반엔 정말 열심히 했고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고 하느라 3~4년 정도 좀 쉬었어요. 그 사이에는 다른 제 후배들이 와서 활동을 하였는데, 아이들이 좀 자라고 나니 김서현 센터장님 다시 YMCA로 불러주시더라구예. 저도 아이들 키우면서 집에만 있기 그렇던 차에 제안을 받아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서현 센터장님이 많이 지지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윤기: 요즘은 박미선 팀장님과 절친이신 것 같던데요?

 

김연진: 네 맞습니다. 나이는 저 보다 세 살 어린데 박미선 팀장님 둘째와 저희 아이들 셋이 아기스포츠단을 함께 다니면서 서로 굉장히 가까워졌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오랫 동안 친구처럼 지냈는데요. 요즘 특히 제일 친한 친구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역사 탐험대 강사로 참여할 때, 박미선 팀장도 캠프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하였는데, 나중에 실무자가 되어 지금까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때문에도 친해졌고, 또 일을 오랫 동안 같이 하다보니 굉장히 코드가 잘 맞았어요. 그냥 제가 '아' 하면은 박미선 팀장이 '어' 하면서 아이들을 챙기고... 서로 분업과 협업이 아주 잘 맞았어요. 그래서 같이 일을 하면 둘 다 서로 힘을 얻고 일이 잘 풀리는 그런 관계... 쿵짝이 잘 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면서는 두집 아이들이 성향도 비슷하고 만나면 너무 잘 지내거든요. 그러니까 또 더 자주 만나고... 여행도 같이 가고...애들끼리도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고 그렇게 오래 만났는데도 한 번도 "엄마 나 쟤랑 못 놀겠어 이런 얘기한 적 없고 지금도 만나면 너무 반가워하고 좋아하고 놀이 코드도 좀 잘 맞아요. 아이들끼리. 그러니까 같이 여행을 가면 편안한 거예요. 그러다보니 점점 더 베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윤기: 그러면 석사 시작하면서 YMCA 오셨는데 박사 과정은  안 하셨나요?

 

김연진: (하하하) 저 박사 학위 받았습니다. 임신하기 전에 박사 과정을 시작하였고, 3년 전에 근대 불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윤기: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역사학 박사님과 수업을 하고 있었네예

 

김연진: 그렇게 말씀 하시니 부끄럽네요. 박사학위는 이제 아이들 낳기 전에 시작했고, 아이 낳고 좀 쉬면서 사실은 좀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이 있었어요. 너무 힘든 과정이어서 포기하고 싶었는데 지도교수님이 격려하고 불러주셔서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 낳고 교수님이 학교로 다시 불러주셔서 박물관 근무하면서 학교 다니고 논문 쓰고 하면서 힘들게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윤기: 그럼 시민사업위원회 활동하시는 김주용 위원님과도 잘 아시겠네예?

 

김연진: 네 학과 선배님이시고 박물관에서 일 할 때도 같이 계셨습니다. 

 

김연진 선생님이 운영하는 역사교실(한일타운 4차 상가 1층)


이윤기: 남재우 교수님이 왜 선생님을 추천하셨을까요?

 

김연진: 제가 학교 다닐 때 답사 다니고 이런 걸 굉장히 좋아했고 답준위 활동도 열심히 하고 그랬는데... 마침 그때 대학원에 입학했기 때문에 "너 마산YMCA 한번  가 봐라" 이렇게 된 거예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김선영 센터장님하고 저하고 호흡이 잘 맞고 교육철학도 잘 맞았어요. 저는 역사를 애들이 막 외우는 방식으로 배우기를 원하지 않았고, 김서현 간사님도  애들이 좀 즐겁게 활동하면서 역사가 이렇게 재밌구나 하는 걸 알게 해주자는 쪽이었습니다. 이런게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말 체험 프로그램으로 역사 탐험대로 시작해서 역사교실도 하고, 고학년들과 근현대사 산책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역사 교실은 한국사에서 시작하여 세계사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중국으로 역사 캠프도 함께 다녀오고 유럽 캠프에도 지도자로 참여했습니다. YMCA 활동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석사과정 시작할 때, 김서현 센터장님 발탁, 박미선 팀장은 지금 배프

 

이윤기: 꾸준하게 활동하셨고...또 다양하게 활동하셨네예

 

김연진: 네 긴 시간이었지만 저는 굉장히 즐거웠어요. 너무 재미있고 좀 의욕도 많았고, 또  그때는 어리기도 했기 때문에 센터장님 칭찬 받으면서 약간 거기에 도취돼가지고 내가 정말 잘하는가 보다 이런 착각 속에 정말 푹빠져서 활동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윤기: 네 김서현 센터장님 칭찬을 많이 해주시지만, 사람 보는 눈이 높아서 아무나 칭찬해주지는 않습니다. 실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칭찬을 하셨던 거지요. 

 

김연진: YMCA 활동을 통해 저도 많이 성장했던 것 같아요.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YMCA 활동을 하게 되었고, 막상 해보니 너무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역사탐험대도 너무 재밌고 역사 교실도 너무 흥미 있었고, 함께 기획하는 프로그램들이 모두 잘 진행되었기 때문에 자신감도 생겼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할 수 있었고 내가 이런 활동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저한테는 진짜 너무 감사한 곳이 YMCA죠. 저의 재능을 찾아주셨으니까요. 

 

이윤기: 아기스포츠단 입학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김연진: 역사 탐험대 지도자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김서현 센터장님께 아기스포츠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역사탐험대 활동을 같이하는데...시간 날 때마다 수시로 아키스포츠단 얘기를 하셨어요. 자랑을 진짜 많이 하셨거든요. 캠프 가면서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 아기 스포츠단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아이를 낳으면 아시스포츠단에 꼭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세 쌍둥이를 낳았는데 유아기 때 배변 훈련이 좀 늦어져서 5살 때부터 못다니고 6살이 되어서 셋이 같이 아기스포츠단을 다녔어요.

 

이윤기: 어떤 태몽을 꾸셨길래 세 쌍둥이를 낳으셨어요?

 

김연진: 사실 결혼하고 5년간 아이가 안 생겼어요. 저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했고  빨리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빨리 생기지 않았어요. 여러가지로 노력하다가 시험관을 하기로 했거든요. 시험관을 하기로 결정을 하기까지가 이제 5년이 걸린 거죠. 뜻하지 않게 3명이 생긴 겁니다. 난자가 모두 착상이 되어서 제가 셋다 낳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주변 어른들은 세쌍둥이 낳는 것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저는 기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셋을 낳고 보니 힘들기는 했어요. 아기 때는 많이 힘들었죠. 왜냐하면 이제 울어도 셋이 똑같이 울고 제법 클 때는 힘들었어요 밖에 나가면 남들 시선도 불편할 때가 많았어요.  저는 좀 내향인이어 가지고 주목받는 거를 싫어하거든요. 

 

아이들이 자랄수록 세쌍둥이 엄마라서 너무 행복합니다.

 

내향인이라는 말에 제가 수긍을 못했습니다만, 본인은 MBTI에서 I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김연진: 일단 아이가 셋이니까 가는 데마다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거예요. 그래서 유모차를 밀고 가도 사람들이 모여들고...당시  대한민국 만세가 방송 될 때라서 시선을 집중을 더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그런 시선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는데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쌍둥이처럼 안 보이는 면도 있고 하니까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아기스포츠단 입학 할 무렵부터는 셋이라서 너무 좋았어요. 셋이면 너무 힘들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셋이라서 오히려 더 좋을 때가 많았어요. 왜냐하면 일단 저를 덜 찾고요. 자기네들끼리 놀이를 찾아내고 자기네들끼리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스스로 배우더라고요. 셋이니까 그게 가능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엄마인 제가 조금 편했어요  좀 크고 걸어다니고 말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나서부터는 셋이라서 더 할 나위없이 좋아요. 커가면서 점점 더 좋은 것 같아요.  학교 갈 때 도 셋이 손잡고 가는 것 보면 안심되고, 학교 마치면 서로 기다렸다가 셋이 같이 오고......지금은 너무 좋습니다. 

 

제가 세쌍둥이 혜택도 좀 받았냐고 물었는데, 언론에 나오는 것에 비해 정말 혜택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특히 셋째 아이 정부 지원금을 반납 당할 뻔한 경험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박근혜 정부 때 세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당시 창원시에서 셋째 아이에게 지원해주는 게 700만 원 정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출산 축하금, 돌 축하금 그리고 3년 동안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는 것이 있었는데, 나중에 아동수당이 생기면서 중복지원을 할 수 없다면서 그동안 받았던 돈을 환급하라는 연락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결국 환급까지 당하지는 않았지만 3년을 약속했던 지원금을 끊겨 버렸다고 하더군요. 저출산...저출산 하고 걱정하지만 지금 체감하는 세 자녀 혜택은 전기요금 할인 정도 밖에 없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김연진: 사람들은 셋째를 낳으면 국가에서 다 키워주는 것처럼, 국가에서 1억씩 주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정말 아니에요. 정부 혜택보다는 민간 교육기관에서 배려를 더 많이 받았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배겨해주셨고, 아기스포츠단에서도 배려해주셨고, 지금 다니는 태권도 학원에서도 회비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보다 오히려 민간에서 더 많이 도움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윤기: 지금 하시는 일은?

 

김연진: 우선 지금 이 공간에서는 초등학생들과 역사 수업을 하고 있구요. 오후에는 남편이 운영하는 입시학원에서 같이 일을 하구요. YMCA 역사탐험대 같이 하고 있고, 대외 활동으로는 경상남도 문화재 위원, 밀양시 향토문화유산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TVN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6년 넘게 경남의 역사와 인물을 소개하는 코너를 맡아하고 있습니다.

 

이윤기: 방송까지 하시는 줄은 몰랐는데요. 

 

김연진: 교통방송 라디오 프로그램도 YMCA를 통해서 연결되었어요. 프로그램 작가님이 인터넷을 검색하시다가 YMCA에서 활동하는 저를 발견하셨고, 고정 코너를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한 3년 정도 하면 그만하게 될 줄 알았거든요. 2년이 지나고부터 개편 때마다 그만두라고 할 때가 되었다 싶었는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경남의 문화재를 소개하였는데, 소재가 고갈 될 때쯤에는  경남의 인물로 확장하였고, 또 소재가 떨어질 때쯤에 지역에서 전국으로 확대 시켰기 때문에 소재가 고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요. 이 라디오 하면서 경남 지역 역사에 대해서 진짜 많이 알게 됐어요. 그전에는지역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만 했었는데... 방송을 하면서 더 애정이 많이 생겼다고 할 수 있어요. 오랫 동안 방송을 하면서 먼저 연구하신 선생님들이 쓰신 책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유장근 교수님, 허정도 이사님, 김훤주 기자님 같은 분들이 쓰신 책에서 굉장히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교통방송에서 6년간 축적한 컨텐츠를 유튜브나 블로그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한 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지면 관계상 생략합니다. 새로운 컨텐츠 가공 이야기를 나누다 허정도 이사님 블로그 이야기까지 연결되었는데요. 

 

 

 

 "YMCA는 내 삶의 기초다" 

 

김연진: 사실 제가 허정도 이사님 블로그를 너무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박사 논문 쓸 때 정말 많이 참고했거든요. 허정도 이사님 박사 논문도 출력해서 읽고, 책도 제가 사서 읽고 진짜 많이 도움이 됐어요. 제가 근대 불상, 근대 불교 조각에 대해서 박사 논문을 썼는데, 이 분야 논문도 별로 없고 자료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마산에 일본인들이 와서 만든 일본식 불상들이 많이 있단 말이에요. 그 불상이 만들어진 배경을 보려면 근대 마산의 도시 형성 과정이나 일본인들의 거주지 이런 것들을 알아야 했거든요. 그런데 허정도 이사님 박사 논문에 보니까 전부 다 있는 거예요. 너무나 감사했지요.  진짜 이사님 논문 없었으면 제 논문 못 썼을 정도로 진짜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는 허정도 이사님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 "이사님 한번 만나면 꼭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이게 너무 또 부끄러워 말씀을 못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윤기: 자 이제 마무리 하는 질문입니다. 혹시 주변에 YMCA 활동에 참여시키고 싶은 지인이 계실까요?

 

김연진: (2~3초 동안 망설임 후) 제 동생이요. 제 동생의 둘째가 얼마 전에 YMCA 아기스프츠단에 입단했거던요. 5세 반에 . 동생도 좋아하고 아이도 너무 좋아하고 제가 YMCA 활동 오래 한 거를 알고 있고,  저랑 성향도 비슷하고 그래서 아마 활동을 같이 하면 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사 온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좀 천천히 반모임부터 나가보라고 하고 엄마들도 만나고 그 다음에 이제 촛불대학도 권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ymc의 세계로 끌고 들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이윤기: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YMCA는 OOO이다.

 

김연진: 나에게 YMCA는, "YMCA는 내 삶의 기초다"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겠어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의 기반에는 YMCA가 있었어요. 제가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도 YMCA  교육철학에 기반하고 있고, YMCA 활동하면서 아이들을 존중하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을 배웠어요. 그게 제 아이를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됐고요.  그리고 YMCA에서 함께 했던 일들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토대가 된 것 같아요. 저는 해마다 달력을 제일 쓸 때 YMCA 역사 탐험대 일정을 가장 먼저 쓰거든요. 그 다음에 근현대사 일정을 쓰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좀 더 적극적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없는 건 좀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등대 활동이나 촛불 대학 같은 활동은 시간이 모자라서 못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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