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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YMCA/만나러갑니다

아흔에도 소비자 상담원으로 살고 싶어요

by 이윤기 2024. 3. 4.
만나러갑니다. 2월에는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원회 김역숙 총무님을 만났습니다. 김역숙 선생님은 2006년 이후 18년 동안(짬깐 잠깐 쉬기는 하였지만)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원으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윤상현-정은솔-진보혜-김봉수–나혜진으로 5명의 실무자가 바뀌는 동안에 한결같이 마산YMCA 시민중계실을 통해 봉사하고 계십니다. 김역숙 선생님의 마산YMCA  시민중계실 히스트리를 소개 드립니다. 

 

 

이윤기: 선생님 YMCA 시민중계실 활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는가요?

김역숙: 2006년인 것 같네예. 기억이 좀 가물가물한데 2006년에 YMCA로 실습을 나왔어요. 그때 방송통신대학(청소년 교육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요. 양덕동 회관으로 평생교육사 실습을 나왔던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윤상현 간사가 실무자로 있었어요. 제 기억이 흐릿하기는 한데 아마 김정남 이사님 하고 같이 실습을 나왔던 것 같아요. 그 무렵에 방송통신대에서 YMCA로 실습을 여러 사람이 나왔었는데, 김정남 이사님이 가장 열심히 활동하였고 시민중계실 상담원 회장도 오랫동안 하면서 시민중계실을 이끌어주었지요. 

이윤기: 자원봉사 20주년이 다 돼 가네예. 마산YMCA가 올해 창립 78주년인데, 2년 후 80주년을 맞이합니다. 마산-Y 80주년은 선생님 자원봉사 20주년이 되겠습니다. 

김역숙: 네 대단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산YMCA 시민중계실은 2006년 이후 제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실습생으로 시민중계실에 왔는데, 그때 분위기가 참 좋았거든요. 김경년 이사도 있었나...김정남 정민교 김미희 신채은 선생님이 같이 활동했어요. 아무튼 실습하러 나왔는데 꼭 놀이터를 하나 정해놓고 모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실무자였던 윤상현도 역할을 했지요. 

이윤기: 그때 실무자였던 윤상현 간사님이 사람 끄는 힘이 있었네요?


김역숙 :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시민중계실이 엄청 편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왔을 때는 그냥 어떤 공적인 활동만 하고 나면 탁 떠날 거야 이런 느낌이 아니었지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고, 그건 어렇게 하면 되겠네 하고 의논하기가 참 참 수월했었어요. 그래서 다들 윤상현 간사를 좋아했고 편하게 생각했어요. 

 

이윤기: 아지트 같다는 느낌이 맞을까요?

 

김역숙: 아지트보다는 놀이터 같다는 느낌이 맞겠어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차를 마시거나 약속을 하지 않아도 시민중계실에서 다 만날 수 있고 소식을 알 수 있고 그랬어요. 저는 어떤 모임을 할 때 그냥 단순히 만나서 차나 마시고 먹고 헤어지는 그런 것보다는 어떤 테마가 있는게 좋았어요. 뭔가를 배운다든지 이런 걸 좋아하는데, 상담을 같이하잖아요. 만나면 상담을 주제로 이야기 나눌 수 있고, 그래서 생기는 어떤 그런 유대감들이 나는 참 좋았어요. 

 

 

시민중계실은 아지트가 아니라 놀이터였어요.

 

이윤기: 그런 모임들은 다른 데서도 있을 수 있는데 이 시민중계실에서 발견한 매력은 무엇이엇을까요?

 

김역숙: 보람이죠. 보람. 우리 선생님들이 다 기질이 비슷합니다. 지금도 함께 활동하시는 한갑선 선생님 최종자 선생님 모두 같은 마음일겁니다. 어떤 상담을 도와주면서 소비자의 어려움을 내가 알고 처리해 줄 수 있고, 그로 인해서 내가 뭔가를 배울 수 있고 그런 과정들이 엄청 보람 있었든 겁니다. 보통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 분들이 오랫동안 함께 활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윤기: 시민중계실 하시다가 소비자학 공부하러 대학원을 가셨잖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김역숙: 시민중계실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소년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시민중계실에서 활동하다가 법을 좀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방통대 법학과에 편입을 했습니다. 법학 공부를 시작하고 또 2년 만에 졸업을 했는데요. 공부도 자꾸 하다 보니까 경험도 생기고 학점 잘 받는 노하우도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할수록 좀 수월해졌구요. 장학금 받고 그랬어요. 법학 공부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소비자학을 공부하려고 2011년에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인제대 소비자학과 교수님들이 배려해주셔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논문 쓰고 학위 받는 과정이 엄청 힘들긴 했습니다. 

이윤기: 선생님은 어떤 계기로 왜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김역숙: 일단 제가 공부에 대한 욕구가 많았던 것 같아요. 결혼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좀 커고 나서 우연히 산호동 여성회관에서 사물놀이를 배웠는데 그게 정말 좋았어요. 좋아하면 열심히 하게 되잖아요. 여성회관에서 기초를 마치고 강사님을 따라가서 사물놀이를 전문으로 공부하게 되었어요. 4~5년 정도 엄청나게 열심히 사물놀이를 배웠어요. 배우는 속도도 남들보다 빠르고 실력도 빨리 늘고 좋아하기도 엄청 좋아하고...... 사람하고 그렇게 사랑에 빠지거나 그런 기억은 었는데, 사물놀이를 정말 사랑했었어요. 연습을 시작하면 한자리에 앉아서 3~4시간을 꼼짝 않고 했어요.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살도 10kg씩 빠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할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윤기: 국악과 사물놀이에서 진로가 바뀐 건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김역숙: 사물놀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을 때 마침 학교 방과후 수업이 생겼어요. 원장님이 저를 학교 강사로 보내주셨어요. 제가 나름 재능있는 제자였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매일매일 수업을 해야 할 정도로 그것도 열심히 했어요. 국악 강사 활동을 하다보니 나이가 들었지만 강사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대 국악 공부를 대학에서 하려고 보니까 학비가 너무 많이 들더라구요. 그때는 아이들 뒷바라지도 해야하고 그래서 제 공부에 많은 투자를 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방송통신대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대학원까지 이어졌어요. 
대학원 다닐 때는 학자금 대출도 2천만원을 받았어요. 공부를 하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에 대출금 갚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우선 제 마음이 행복했구요. 비싼 모피코드 하나 사 입었어도 그 돈 정도 들었을텐데......저는 모피코드 사 입는 것 보다 대학원 공부가 훨씬 행복했습니다. 

 

저는 모피코트 보다 대학원 공부가 더 행복했어요

 

김역숙 선생님은 쉰세 살에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무렵 창원시청에서 소비자 상담원으로 일하였습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시청에서 일했지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일을 그만두고 다시 자원봉사 현장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소비자상담원으로 일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었는데, 상담은 별로 없었고 주로 잡무를 처리하는 일을 하는 것이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건강까지 나빠져서 YMCA 시민중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윤기: 그럼 시청 근무 기간 빼고는 다 이제 시민중계실에서 자원봉사를 하셨겠네예. 


김역숙: 중간에는 우리 딸 아이가 부산에 살 때 손자 키워주러 부산에 4년 동안 갔었어요. 상담 활동을 할 수는 없었지만, 회비는 꼬박꼬박 내고 적을 두고는 있었지요. 손자 돌보면서 상담을 완전히 그만두면 맥이 끊어질 것 같아서 상담 계속 쉬는게 오히려 마음에 걸렸어요.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부산YWCA 소비자상담실에 가서 1주일에 두 번씩 상담을 했어요.
이윤기: 도로공사에서도 일하셨잖아요. 김역숙: 네 제가 도로공사에서 일 할 때 요금소에서 만나 인사하고 그랬던 기억납니다. 그때가 대학원 다닐 때였어요. 공부하면서 일도 하고 그래서 정말 잠자는 시간 줄여가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윤기: 시민중계실에서 (중간에 공백기도 있었지만)18년 동안 상담활동을 하셨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상담은 어떤게 있을까요?


김역숙: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게임이나 앱을 결제하고 나서 환불을 받고 싶다는 상담들입니다. 구글이 외국 회사라서 상담을 처리하는 과정이 어렵고 복잡합니다. 일단 전화 통화가 잘 안 되구요. 소비자를 도와주려면 공문을 보내고 하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우선 힘들어요. 하지만 반대로 어려운 상담을 해결하고 나면 확실히 더 보람있고 뿌듯한 마음이 생겨요. 규정만 따지면 해결이 안 되는 상담을 해결하고 나면 보람을 느끼지요. 

이윤기: 너무 웃긴다. 기가 막히다 이런 거는 없을까요?

 

김역숙 : 일단 법이나 규정을 싹 무시하는 그런 사업자들 만나면 황당하지요. 주로 헬스, 필라테스 이런데서 아주 뻔뻔 당당하게 나와요. "우리는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 이런거 모르겠다"는 분들을 더러 만나거든요. 최근에는 인테리어하고 A/S를 안 해준다는 상담을 받았는데, 참 해결하기가 어렵더라구요. 한 번 공사를 마친 업자는 대부분 책임을 회피하고, 또 연락조차 안 되는 경우들도 많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공사비를 다 지불하고 나서 하자를 고쳐 달라고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김역숙 선생님은 천생 소비자 상담원이었습니다. 웃기거나 재미있었던 경험을 여쭤봤더니 어렵고 힘든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이어서 친구 다섯 명이 식당에서 해산물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던 소비자 상담 사례를 가지고 ‘입증책임’에 관한 토론을 20분쯤 하였습니다만, 지면 관계상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김역숙 선생님과 상담 사례를 놓고 이야기 하다보면, 늘 소비자 입자에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걸 보고 저도 한 수 배우게 됩니다. 

이윤기: 마산YMCA 활동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김역숙: 우리 시민중계실 상담원 선생님들 다 기억에 남는 분들이지요. 그리고 실무자였던 윤상현, 나혜진, 사무총장님, 조정림 국장님이 기억에 남구요. 이종호 이사님, 허정도 이사님도 특별한 분들이지요. 

이윤기: 지금도 장구를 치시는가요?


김역숙: 지금은 안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조창 할 때 반주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어요. 

이윤기: 시조창은 다른 데서 공연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김역숙: 네 맞아요. 공연도 하고, 대회가 있으면 심사도 하러 가고 그럽니다. 오래되었어요. 한 30년 되는 것 같아요. 사물놀이는 집중해서 열심히 했는데, 시조창은 오랫동안 꾸준히 하고 있어요. 

 

나에게 YMCA는 <친정>이다. 

 

<YMCA 사람책 함께 읽기>로 시조창 공연을 제안드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든지 공연은 가능한데, 반주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YMCA에서 조촐하게 공연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공연을 한 번 만들기 위해서는 적지 않는 기본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동안에 해왔던 <사람책 함께 읽기>처럼 하기는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MR 반주로도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공연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절대 계획은 잡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김역숙: 시조창을 한 수 배워보는 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기는 해요. 전통 클래식까지는 아니지만 시조창이 세미 클래식 정도 되니까 한 번쯤 배워보는 경험이 괜찮기는 한데......


이윤기: 그럼 프로그램으로 한 번 만들어봐 주십시오. 1시간 정도짜리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서, 말씀하신 대로 또 한 곡 정도 같이 배워보기도 하고 체험도 하고 이렇게 해보면 좋을텐에요. 


김역숙: 생각은 해볼게요. 그렇지만 당장 계획은 세우지 마이소. 사무총장님 잘 밀어붙이시는데......일단 제가 먼저 고민해보겠습니다. 


이윤기: 시민중계실 자원 상담은 언제까지 하실겁니까?

 

김역숙: 계속될 겁니다. 공부하고 배운게 아까워서라도 계속 안 하겠습니까? 자원봉사는 정년이 없다고 하셨으니 사는 동안은 계속하겠지요.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계속하려고 생각합니다. 팔십 살은 충분히 할 수 있겠고 목표를 구십까지 한 번 세워볼께요 하하하 요즘 시민중계실에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나오는데, 참 빠르게 습득하고 너무 예쁘게 말하는게 너무 보기 좋았어요.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말을 예쁘게 하는지, “제가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이런 말을 하는데......참 놀랍더라구요. 저렇게 말하면 소비자도, 사업자도 다 마음이 풀어지겠다 싶더라구요. 요즘도 저는 젊은 친구들에게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이윤기: 자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YMCA란? 

김역숙: 나에게 YMCA란 <친정>입니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든든한 뒷배 같은 곳, 그냥 내 생활 속의 일부입니다. 제 삶이 나 자신, 우리 가족, 시조창, 마산YMCA 시민중계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도 퇴직하면 시민중계실에 자원상담원으로 봉사하러 오겠다는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요즘은 젊은 시절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원 회장을 지내셨던 김경년 이사님이 여러 가지 사회 활동을 마무리 하신 후에  매주 월요일에 시민중계실 상담 자원봉사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김역숙 선생님이 아흔에도 건강하게 마산YMCA 시민중계실을 지키면서 소비자 상담을 하는 멋진 할머니 상담원으로 활동하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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