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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YMCA/만나러갑니다

30년 회원, Y는 세상 사는 눈 뜨게 해준 곳

by 이윤기 2024. 7. 1.

 

만나러 갑니다, 30년 차 마산YMCA 활동회원 김경년 재정이사
만나러갑니다. 6월에는 올해부터 마산YMCA 재정이사를 맡으신 김경년 회원을 인터뷰하였습니다. 김경년 회원은 1994년 3월, 당시 여섯살이었던 아들(임종윤 위원)을 마산YMCA 아기스포츠단에 보내면서 회원 활동을 시작하였는데요. 올해로 YMCA 활동 30년을 맞으셨다고 합니다. 창동아지매 김경년 재정 이사님의 30년 YMCA 이야기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윤기: 안녕하세요 이사님~ 인터뷰로 이렇게 마주 앉으니 새삼스럽습니다. 우선 웹진 독자인 회원들에게 지금 하시는 일과 본인 소개를 좀 해주십시오.

김경년: 지금 제가 하는 활동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창동 골목을 가꾸고 창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창동 이야기 들려주고 하면서, 짬을내서 작은 소일거리로 창원시 청소년 마을학교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제 본업은 “창동아지매”이고, 창동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윤기: 마산YMCA 활동은 얼마나 하셨습니까?


김경년: 30년 차인가요? 94년 우리 아들(임종윤 시민사업위원)이 6살 때 아기스포츠단에 입단했으니까 딱 30년이 맞네요.

이윤기: 마산YMCA에서 회원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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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년: 아들을 아기스포츠단에 보냈더니 YMCA 선생님들이 촛불대학을 권유하더라구요. 촛불대학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모르고 살았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구요. 등대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촛불대학에서 받았던 낡은 파일을 가지고 있는데요. 첫 번째 강의 때 돌아가신 황주석 선생님이 오셔서 소공동체 모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병철 선생님에게 먹거리에 대해 배우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아이 낳고 키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키운 무지한 엄마라는 걸 깨달았구요. 엄마는 그냥 엄마가 되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제대로 된 엄마 교육을 처음 받아본 겁니다. 

어쨌든 그 먹거리의 중요성을 제가 알게 되면서 우리밀 살리기 행사에도 참여하고, 등대활동을 하면서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고, 촛불들과 같이 학습하면서 우리사회를 알게 되었고 세상을 관찰하게 되고 그때부터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등대활동을 하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이렇게 하면 좋겠구나”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연습들이 계속되었던 겁니다.

이윤기: 하하하 정리해 보면 임종윤 위원이 6살에 아기 스포츠재단에 입단을 했고, 몇 달 있다가 촛불대학에 참여하였네요. 그리고 촛불대학 수료하고 등대활동하면서 YMCA 늪에 조금씩 빠져들었다는 말씀이네예.
그럼 등대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활동이나 기억에 남는 활동은?

김경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살고 있던 두산아파트에서 아파트 주부대학을 개최했던 일, 그리고 동네 놀이터를 조사하고, 아이들 통학로 조사도 했었어요. 아이들 통학로를 조사해보니 많은 아이들이 등교하는 건널목에 신호등이 없어서 위험하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경찰서에 신호등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는데, 200미터이내에 신호등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어서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그냥 포기하지 않고 마산시내에 200미터 이내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모두조사를 했어요. 그리고 두산아파트 뿐만 아니라 주변 아파트 주민들 서명도 받고, 해운초등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 숫자도 다 조사해서 다시 요구해서 결국 신호등이 설치되었지요. 처음으로 벽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신호등이 설치되고 나서 마산에서 최초로 아파트음악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등대활동 하면서 통학로 신호등 세우고, 아파트 음악회도 열었어요

 

이윤기: 네 참 대단한 일을 하셨지요? 지역 주민이 요구해서 200미터 이내에 신호등을 하나 더 설치한 첫 사례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경년: 네 우리는 참 어렵게 신호등을 설치했는데, 나중에 대우백화점이 생기니까 가까운 거리에 신호등이 있어도 또 설치해주더라구요. 어쨌든 내가 참여해서 아이들의 안전과 주민들의 불편을 직접 해결하는 경험을 했고, 특히 성공했기 때문에 이후 사회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윤기: 30년 동안 마산YMCA에서 등대 활동뿐만 아니라 여러 모임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어디어디 활동하셨는지 한 번 이야기 해주시지요. 

김경년: 맨 처음 아기스포츠단 학부형으로 회원이 되었어요. 그때는 아기스포츠단 입단시키려면 우선 YMCA 회원 가입부터 해야 되더라구요. 그리고 촛불대학을 수료하고 등대활동을 했었지요. 몇 년 동안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아이들이 아기스포츠단을 다 졸업하고 등대활동이 주춤해졌을 때, 소비자법률대학에 참여하고 시민중계실자원상담원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청소년사업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평생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고, 매주 회관에서 모임을 하는 Y-통에서 남편과 함께 참가하고 있고, 기진맥진에도 참여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재정이사도 맡고 있네예. 그리고 작년부터는 마산청소년문화의집에서 마을학교 코디네이터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윤기: 정말 여러 회원조직에서 활동을 하셨는데요. 마산YMCA 팔방미인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다양한 회원조직 활동 중에서 기억에 남는 활동은 뭐가 있을까예?


김경년: 시민중계실 활동을 할 때는 제가 자원상담원 회장을 하면서 소비자의날에 부총리상을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당시에 활동했던 것에 비해 과분한 상을 받았다는 생각이들어요. 그때 시민중계실이 상담도 엄청 많이 할 때였고, 세입자보호조례제정운동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때 받은 경제부총리상은 제가 받은 가장 큰 상인 것 같아요.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원으로 활동하면서 농산물 감시 활동도 하고, 소비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시민중계실 활동을 통해 생활의 지혜 같은 것 많이 배웠습니다. 

이윤기: 청소년사업위원회 활동도 열심히 하셨잖아예. 지금은 마산YMCA의 청소년사업위원회의 전설이 된 ‘청소년지도사 자격시험’도 같이 치셨나요?

김경년: 네 그 당시에 마산YMCA가 위탁운영하던 경상남도청소년종합상담실이 불종거리에 있었잖아요. 청소년상담실 활동에 참여하면서 이지양 부장(현 양산YMCA 사무총장)을 만났구요. 청소년사업위원회가 구성될 때 아마 이지양 부장 추천으로 참여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마산종합운동장 안에 있는 올림픽기념관 3층에 <마산청소년문화의집>이 있을 때였습니다. 청소년사업위원회 활동에 참여했는데, 위원들이 공부해서 다같이 청소년지도사 시험을 치자고 결의가 되었습니다. 당시 제 고등학교 은사님이셨던 이호준 선생님과 같이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지도사 시험공부도 같이 했습니다. 한 달 넘게 같이 모여서 공부하고 준비해서 서울까지 단체로 올라서서 청소년지도사 시험을 치고 모두 합력했습니다. 저는 합격 후에 강원도 평창에서 연수까지 받고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시험에 합격하고 연수받을 시간이 없어서 자격증을 못 받은 분들도 있거든요. 

마산-Y의 전설이된 청소년지도사 시험 합격...청소년사업위원


이윤기: 이사님께서는 남들보다 좀 늦게 공부를 많이 하셨잖아예? 새로 공부를 시작하신 계기가 있었습니까?

김경년: 네 YMCA가 진짜 제 삶에 많은 변화를 줬지요. YMCA가 대동씨코아에 있을 때였는데, 김서현 간사(현, 위카페다온 센터장)이 먼저 방통대 공부를 하면서 저 한테도 방통대에서 공부를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해줬어요. 그래서 방통대에 등록을 했는데, 저는 진짜 좋더라구요. 교육학과에서 공부하면서 인간 행동과 사회환경 이런 걸 공부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 때 지금 평생교육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하는 전달래 위원도 만났구요. 건너건너 이선애 위원, 김정남 이사 이런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동생 가게에서 일 할 때라서 공부에 전념할 수는 없었지만, 스터디모임 하는 분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방송대 다음카페에 창동이야기를 올려주고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윤기: 대학원도 가셨잖아예?


김경년: 대학원은 이옥선 전 도의원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제가 창동상인회에서 일 할 때였는데, 당시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이옥선의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어요. 그때는 시의원들에게 포괄사업비가 있었는데, 이옥선 의원이 포괄사업비로 창동 활성화사업에 도움을 줬어요. 그 무렵에 이옥선의원께서 같이 경남대 대학원 NGO과정에 가자고 해서 같이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은진 교수님 마지막 제자가 되었어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우리지역 현대사에 대해서 정말 많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은진 교수님이 많이 연구하신 3.15와 부마항쟁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윤기 : 방통대 공부하시면서 대학 동료들을 시민중계실 활동에 많이 참여시키신 것 같더라구예


김경년: 네 시민중계실자원상담원회 활동이 약간 주춤할 때였는데, 제가 방송대 다니면서 실습을 원하는 동료들에게 마산YMCA를 소개했습니다. 김정남 이사님, 황윤미 선생님 이런 분들이 시민중계실과 인연을 맺었고, 김정남 이사님은 오랫동안 자원상담원 회장을 하시고, 지금도 이사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계시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맺은 인연들이 지금 평생교육위원회 주축이네요. 김서현 센터장을 중심으로 저보다 선배였던 이선애 위원장, 황윤미 위원, 김정남 위원, 전달래 위원이 모두 YMCA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윤기: 제가 이선애 위원장님도 작년에 인터뷰 했는데... 방송대 공부할 때 정말 치열하게 하셨더라구예. 

김경년: 네 맞아요. 그때 방송대는 아이키우면서 공부하는 그런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황철곤 마산시장, 박완수 통합창원시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대표에게 직접 편지도 썼어요.


이윤기: 이사님은 지금 기타 모임 Y-통 활동도 하시잖아예?


김경년: 네 기타모임은 임경화 이사님 권유로 참여했어요. 제가 원래 다른 기타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 모임이 흐지부지되면서 쉬고 있었는데, 임경화 이사님이 모임을 같이 하자고 불러주었어요. 우여곡절이 좀 있었는데, 어째든 지금은 Y-통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허성무 시장 출판기념회를 비롯해서 여러 행사에 초대도 받고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타 모임은 남편과 함께 즐겁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윤기: 저는 이사님 알고 나서 가장 놀랐던 날이 임종윤 위원 결혼식 날이었어요. 유력 정치인 자녀 결혼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하객들이 많았잖아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예? 

김경년: 네 종윤이 결혼할 때 그럼 말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창동에서 상인회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많났어요. 제가 그냥 사무실에서 조용히 전화나 받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그때부터 활동가 기질이 발휘된 것 같아요. 당시에 황철곤 시장한테도 편지를 두 번 쓰고, 박완수 통합창원시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대표한테도 편지를 쓰고, 국민신문고에 글도 올리고, 창동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시의원도 만나고, 도의원도 찾아가고 시장님도 찾아가고 그러면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된거죠. 제가 15년 동안 창동에서 지내면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만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이윤기: 동생 가게에서 일할 때부터 계산하면 좀 더 길지 않습니까?

김경년: 맞아요. 동생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건 2002년 무렵이구요. 창동상인회에서 일을 시작한 건 2007년 4월 19일이에요. 동생 가게에서 일할 때는 근처 가게 언니들하고만 친하게 지냈는데, 상인회에서 일을 하면서 인맥이 확 넓혀졌어요. 상인회 일을 하다보니까 동사무소도 자주 찾아가고, 동장님에게 오시라고도 하고, 그러면서 공무원들과도 잘 알게 되고 그래서 저는 소위 좌우를 가리자 않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냥 두루두루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한 쪽에서는 저 보고 국민의힘 사람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시민사회활동하는 민주당 사람이라고 하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선거를 여러번 치뤘지만 저 한테 도와달라는 사람은 없어요. 서로가 상대방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봐요

이윤기: 이사님 YMCA 활동도 30주년인데요. 오랫동안 YMCA 활동하면서 발견한 마산YMCA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김경년: YMCA는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제 삶의 일부가 되었는데, 오랫 동안 YMCA 활동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다보니까 그냥 식구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어요. 가족처럼 익숙하고, 그래요. 제가 성호생활문화센터 운영에도 참여하고, 도시재생센터에서도 활동하고 이런저런 주민제안 사업도 참여하고 여러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맨 처음에 나를 연습시켜준 곳, 성장시켜준 곳이 YMCA라고 생각해요. 오랜 세월동안 익숙하고 내집처럼 생각하는 곳. 그래서 언제든지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기꺼히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구요. 그래서 올해부터 시민중계실 상담자원봉사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 늘 칭찬 많이 해주시는 박영민 이사님

 

이윤기: 네 방금 YMCA가 가족같다고 하셨는데요. YMCA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가족 이야기 한 번 해보시죠. 

김경년: 일단 남편은 저와 함께 기타 모임 Y-통에서 같이 회원활동을 하고 있구요. 아들은 시민사업위원이면서 좋은 아빠모임 회원(직전 회장)이에요. 며느리는 YMCA 아기스포츠단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었구요. 딸과 사위는 YMCA 후원 회원이구요. 아들, 딸, 조카 2명, 손자, 손녀는 YMCA 아기스포츠단 졸업생입니다. 

이윤기: 자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그동안 YMCA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김경년: 기억에 남는 사람은 많지요. 그래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박영민 이사님이에요. 다른 이사님들 선배님들도 다 좋으시지만, 박영민 이사님은 주변 분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저도 청소년위원회 활동할 때 칭찬을 받고 힘을 얻었던 일이 여러 번 있어요. 지금 고인이 되신 이호준 위원님도 기억에 많이 남지요. 

이윤기: 그럼 앞으로 YMCA 활동에 참여시켰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은 없습니까?


김경년: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하고 있고 또 다들 바빠요. 그래도 초등학교 동기들 중에 YMCA 활동 같이 할 만한 친구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기는 해요. 유심히 살피고는 있는데, 내 마음하고 달라서 다른 봉사활동들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사회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더라구요. 그렇지만 우리 Y-통 회원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 중에 시민중계실 활동 같이 할 만한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중입니다

 

나에게 YMCA는 세상을 알아가는 눈을 뜨게 해준 곳이다

 


이윤기: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YMCA는 OOO이다. 


김경년: 나에게 YMCA는 세상을 알아가는 눈을 뜨게 해준 곳이다. 내 삶에 지침이나 지혜가될 많은 것을 YMCA에서 배웠고, 오랫 동안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곳입니다. YMCA 활동으로 좋은 부모의 눈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소비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이윤기: 올해 YMCA 재정이사를 맡으셨는데, 우리 회원들이나 이사님들께 하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김경년: 각자 자기 역할을 잘 하고 계시기 때문에 따로 드릴 말씀은 없지만, 더 오랫동안 더 건강하게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이들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모임이 많아서 오랫 동안 동행하면서 반짝반짝 빛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YMCA활동의 여러 영역에서 자신의 재능을 보태주신 김경년 이사님과 인터뷰하면서 지면에 소개하지 못한 여러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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