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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YMCA/만나러갑니다

YMCA도 관계 회원 더 많아져야 한다

by 이윤기 2024. 10. 29.
만나러 갑니다.10월에는 올해 식약처 튼튼먹거리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시민중계실 정민교 회장님을 지난 10월 25일 마산YMCA 회관에서 만났습니다. 정민교 이사님은 상반기에 부산, 울산, 경남 지역 튼튼먹거리 교육과 하반기 충남, 세종 지역 교육을 진행하셨고, 10월 27일부터 11월 22일까지는 제주 지역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원 회장으로 소비자 상담, 소비자 교육, 물가조사, 튼튼먹거리 당나트륨 교육, 섬유제품심의까지 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시는 정민교 회장을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이윤기: 이사님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올해 튼튼 먹거리 수업 해보시니까 어떻습니까?

정민교: 사실 힘든 부분이 많아요. 올해 90여 개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업 일정 자체가 바쁘기도 하구요. 그 보다 눈에 듸지 않는 수업 준비 과정이 손이 많이 가서 힘이 들기는 합니다. 힘이 좀 들기는 하지만, 그런 수고를 통해 어린 아이들에게 도움이고 재미있어 하는 수업을 할 수 있어 보람도 큽니다. 특히 달고 짠 음식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더 의미가 있습니다. 


이윤기: 수업하다가 경험했던 에피소드 이런 건 없습니까?

 

정민교: 요즘 아이들 생각이 참 기발하다는 싶은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당은 너무 많이 먹으면 안되지만, 뇌가 당을 에너지로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 몸에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어느새 자동차 에너지는 휘발유, 수소, 전기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로 확장 되더라구요. 
또 교육을 하러 여러 지역을 다녀보니 아무래도 도시 지역 아이들보다 시골 학교 아이들이 순수하고 정이 많다 싶은 경험도 하게 되요. 저희 수업을 하면 오리 모양 마들렌 4마리를 만들어서 가져가게 되는데, 고작 4개 밖에 안 되는데도 “선생님도 하나 드세요”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대체로 시골 학교, 작은 학교 아이들이 더라구요. 작은 학교 일수록 아이들 마음이 더 따뜻한 것 같았어요. 

이윤기: 최근에 충청 세종 지역 다녀오셨는데, 그쪽과 우리(경상도) 지역 아이들도 많이 다르던가예?

정민교: 충청도 사람들이 양반이라는 말 딱 맞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말을 좀 천천히 하고 예의있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비교해보면, 경상도 아이들은 말투가 상대적으로 빠르고 좀 급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경상도 아이들이 확실히 텐션이 좀 높은 것 같아요. 정민교: 이야기하다보니 기억 나는 장면이 있는데, 어느 학교였는지는 기억이 분명치 않은데, 저희 교육 중간에 영상을 틀어주거든요. 그런데 영상이 나오자 아이들이 다같이 영상에 나오는 노래를 떼창을 하는거예요. 아이 한 명이 리더 역할을 하니까...다같이 입을 모아 노래하는게 참 인상적이었요. 

 

이윤기: 이번에 충청지역 교육하면서 여러 날 집을 비우셨죠? 부군께서는 싫어하시지 않았나요?

 

정민교: 네 5박 6일 일정으로 다녀왔어요. 남편이 좋아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저는 젊었을 때부터 남편에게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사회생활 하는 거다. 아내의 일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고 말해 왔어요. 그래서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었구요. 대신 저는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철저하게 준비 해놓고 나옵니다. 남편은 저한테 “당신 스스로 잘 챙겨라, 나는 알아서 잘 한다”고 하지만, 제 마음은 또 안 그렇거든요. 제가 완벽하게 준비 해놓고 나와야 제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정민교 회장님 댁에 가보셨던 시민중계실 상담원 선생님들의 전언에 따르면, 정말 살림을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시더군요. 음식 솜씨도 일류 레스토랑 저리 가라 할 만큼 품위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YMCA 2등급 소고기 캠페인 때 공유했던 레시피도 모두 정민교 회장님 작품이었습니다. 

 

이윤기: 그럼 원래부터 남편분께서 집안 일을 잘하셨습니까?

정민교: 제가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남편이 집안 일을 같이 하기 시작했어요. 가장 바쁘게 보낸때는 제가 대구까지 대학원을 다니고, 논문을 쓸 때였는데요. 제가 2008~2009년에 대구한의대 청소년교육학과 대학원을 다녔거든요. 공부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제가 집안일에 소홀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시절 에피소드가 있어요. 어느 날 남편이 식탁을 닦다가 행주를 툭 내리치면서 “이제는 내가 더 못 참겠네” 하길래, 저보고 화를 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다음 말이 “아들들, 너희 둘도 이제 엄마 좀 도와라” 하고 말하는거예요. 제가 그때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역시 우리 남편은 다르네’ 하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여기까지는 아이스브레이킹이었습니다. 회관에서 자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실무자들과도 많이 소통하시는데, 새삼스레 인터뷰라고 말씀 드렸더니 긴장하고 계시더라구요. 튼튼 먹거리부터 집안 소개까지 하고나니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이윤기: 자 정식 인터뷰 질문을 드릴께예. 마산YMCA 회원들에게 자기소개 한번 해 주십시오.

 

정민교: 네 저는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원회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민교입니다. 기진맥진 산악회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윤기: YMCA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정민교: YMCA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원 선생님들 중에 처음에 자원봉사 학점 취득 때문에 인연을 맺은 분들이 여럿 계시는데요. 김정남 이사, 김역숙 선생님 이런 분들이 저도 비슷한 인연으로 마산YMCA 시민중계실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아는 선배가 김경년 이사를 소개해주었고, 그 인인으로 마산YMCA를 알게 되었네요. 

 

이윤기: 저희 회원들이 <시민중계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민중계실 활동 소개 좀 해주시죠?

정민교: 시민중계실은 소비자, 시민들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저희 목적문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데요. 전화 상담을 받아서 중재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소송까지 함께 하며 소비자를 도와 줄 때도 있습니다. 소비자 법률대학이나 찾아가는 소비자 교육을 통해 시민들의 인식을 높이는 교육활동, 홍보활동도 하고 있고, 각종 모니터링이나 조사 활동도 꾸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윤기: 아까 선배 소개로 우연히 마산YMCA 시민중계실과 인연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그냥 학점만 따고 끝날 수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신 계기는 무엇일까예?

 

정민교: 우선 제가 성격이 뭘 한 가지 시작하면 좀 꾸준하게 하는 편입니다. 무슨 일이던지 그냥 형식적으로 대충 대충하는 걸 싫어해요.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이 쉬운 일은 아니거근요. 법률 지식도 있어야 하고, 분쟁 해결을 위해서는 전문성도 필요하거든요. 저는 그런 걸 알아가는게 좋았어요. 그리고 YMCA를 비롯해서 시민단체에 몸 담고 활동하는 것이 제 성향하고 좀 잘 맞았어요. 제가 다른 시민단체 활동도 함께 했었거든요. 
그래서 맨 처음 1년은 정말 성실하게 활동했어요. 당시에는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원 중에 가장 봉사 시간이 길었던 상담원에게 금반지를 시상(개근상)했었거든요. 금값이 폭등하기 전, 제가 마지막으로 금반지 받은 자원상담원이에요.

이윤기: 활동이 뜸할 때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9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시는 비결(혹은 계기)은 뭘까요? 

정민교: 저도 19년째 활동하고 있는데, 물론 19년을 한결같이 열심히 하지는 못했어요. 다른 시민단체에 마음을 주고 활동하던 때도 있었고, 또 대학원 다니고 논문 쓰고 하면서 활동이 뜸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계속 시민중계실과 인연을 이어가도록 해준 분이 있는데, 바로 한갑선 전 회장님이세요. 제가 다른 일로 바빠서 소홀했던 시기에도 자주 전화를 해 주시고, 매주 상담 활동에 참석을 못해도 다른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여하라고 독려해주셨어요. 열심히 안 하는 사람도 밀어내지 않고 품어주시는 분이었고 늘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윤상현 간사의 역할도 있었네요. 시민중계실에 처음 나와서 상담 받으며 당황해 할 때 항상 옆자리를 지키면서 응원해줬어요. 제가 잘 모르는 상담이 들어와도 간사님이 옆에 있으면 걱정이 없었지요. 늘 용기를 북 돋아주는 역할을 했어요. 윤간사님 별명이 “친절한 윤간사”였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시민중계실 개근상 금반지 구경을 하였습니다. 별다른 디자인 없이 <YMCA>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엄청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저도 오래전에 세입자보호조례 제정운동으로 국무총리상을 받았을 때, 시민중계실 금반지 1돈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진 반지보다 정민교 이사님 반지가 더 예쁘더군요. 

이윤기: 내년이면 시민중계실 자원상담원 활동 20주년이 되시는데요. 그동안 시민중계실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꼽는다면?

정민교: 뭐니뭐니해도 우리 한갑선 회장님이 소비자운동 유공자로 대통령상을 받은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염모제 피해 구제 활동으로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지요. 시민중계실 활동 중에는 저희가 꾸준히 소비자 법률대학을 하고 있는 것도 자랑입니다. 1989년에 시작한 소비자법률 대학을 한 해도 그르지 않고 진행하였고, 올해 드디어 50회 소비자 법률대학을 진행하였습니다. 소비자 법률대학을 통해 시민들에게 소비자 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자원상담원을 양성해왔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꼽고 싶습니다. 

한갑선 회장님 대통령상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마산YMCA 시민중계실에는 상을 받은 분들이 많습니다. 한갑선 회장께서 대통령상을 받으셨고, 김경년, 박수연, 최상실, 임영희 전 회장님들이 장관상을 받으셨습니다 도지사상과 마산시장상도 여러 사람이 받았는데, 저도 다 기억을 못하겠습니다. 

 

이윤기: 평소에 마산YMCA 시민활동을 늘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셨잖아예? 마산YMCA 저력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민교: 네 제가 이사로 있으면서 우리 YMCA를 칭찬하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만, 제가 다른 시민단체 활동도 해봤는데, 마산YMCA 회원들이 정말 시민단체 활동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평화축제만 해도 20년을 꾸준히 이어오면서 매년 발전해나가고 있고, 사랑의 김장나누기도 21년 동안 꾸준히 진행하고 있잖아요. 저는 예산을 지원받아서 보여주기식으로 사업하는 단체들도 많이 봤거든요. 그런점에서 YMCA는 확실히 다르다고 자부합니다. 처음 이사가 되시는 분들이 한결같이 “YMCA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 몰랐다”하고 말씀 하시잖아요. 저는 다른 단체도 이사 활동을 해봤는데, 마산YMCA처럼 이사, 위원, 회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실무자들과 힘을 모아 활동하는 단체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진맥진 산악회나 회원활동위원회 같은 활동은 다른 단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단톡방에 있는 분들을 보면 정말 YMCA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는 걸 알수 있어요. 

이윤기: 아까는 시민중계실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소개해주셨는데, 이사로 또 기진맥진 회원으로 참여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한 가지 소개하신다면?

정민교: 딱 한 가지를 꼽는다면 저는 ‘지리산 종주’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한 번 건강을 잃어 봤기 때문에 특히 지리산 종주는 제 인생 최고의 추억입니다. 사실 저는 건강에 적신호를 받기 않았을 때도 운동을 싫어했어요. 당연히 등산도 싫어 했어요. 힘들게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올건데 뭐하러 올라가냐 그랬거든요. 제가 원해서 등산을 다닌 적이 없어요. 주변 살마들이 가자고 해서 같이 갔지요. 하지만 제가 어중간하게 하고 그만두는 성격이 아니라서 막상 산에 가면 끝까지 완주는 했지요. 그러다가 건강을 한 번 잃고 나서는 항상 건강이 우선이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기진맥진에서 지리산 종주를 신청해놓고 저도 남편도 걱정이 많았어요. 처음에 짐을 다 싸서 무게를 확인해보니 20kg정도 되었어요. 남편은 이 배낭 메고는 절대 못간다고 하면서 짐을 다 풀어서 덜 중요한 건 빼내고 꼭 필요한 것부터 다시 쌌어요. 그래도 15kg이 되더라구요.

이윤기: 종주가 힘드시기는 했죠?

 

정민교: 첫날 벽소령 대피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2km 정도 남겨뒀을 때 정말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요. 마침 그때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2km 남았다는데 해도 떨어지고 앞도 안 보여서 힘들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그럼 배낭은 버리고 몸만 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말을 듣고나니 갑자기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남편이 나를 이렇게까지 응원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위로가 되었어요. 남편은 출발 전에도 힘들면 무조건 포기해라 데리러 갈게 하고 안심을 시켜주었거든요. 

이윤기: 이사회 활동은 어떠셨나요?

정민교: 이사로 선출되고 나서 많이 놀랐어요. YMCA 활동을 오래 했지만 동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잖아요. 이사회 활동을 해보니까 제가 깜짝 놀라겠더라구요. 마산YMCA 진짜 이사님들이 많았어요. 어떻게든 실무 활동과 회원활동을 지원해주려는 마음을 갖고 계시더라구요. 좋은 이사님들이 나이가 들고 은퇴하시고 이런 게 살짝 걱정이기는 한데. 뭐 틈이 살짝보이는 정도라고 할까요. 저도 이사회에서 자주 발언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늘 지지하고 응원하는 편입니다 .

 

이윤기: 시민중계실이나 마산YMCA가 회원이 많아지거나 재정이 넉넉해지면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 하는게 있으면 말씀 좀 해주세요.

정민교: 대단한 바람이 있는 것은 아니구요. 우리 자원상담원 선생님들이 봉사활동으로 참여하고 계시지만, 봉사활동을 통해서 경제적으로 조금 도움이 되는 인센티브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활동을 좀 격려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늘 하고 있습니다. 


이윤기: 이번 주말부터 제주도에 한 달 동안 튼튼먹거리 수업도 가셔야 하고, 이사회, 기진맥진, 시민중계실 활동으로 YMCA 활동에 시간을 많이 쓰시는데,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민교: 아주 전폭적인 지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족들도 제 활동을 인정해줍니다. 남편이 한 번은 차를 태워주러 왔다가 이렇게 멀리까지 봉사하러 다니느냐고 깜짝 놀라더라구요. 요즘은 제가 꾸준히 사회를 위해 도움되는 일을 하는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도 활동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그 활동이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활동이니까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로는 아내가 사회 활동하는 것을 자랑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남편이 정권이 바뀐 후에 YMCA 걱정을 많이 했어요. 시민단체 보조금을 없앤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걱정을 하더라구요. 대놓고 잘한다 잘한다 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지지해주는 것 같아요. 

이윤기: 가족 분들 소개도 좀 해주신다면?

정민교: 남편은 평생 직장 생활 후에 은퇴 생활을 하고 있구요. 아들이 둘 인데 큰아들은 현대무용을 전공해서 무용가이고, 작은아들은 일반 회사에 다닙니다. 

이윤기: 아드님이 무용하신다구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정민교: 아~ 모르셨구나? 남편은 돈 안 되는 일이라고 걱정이 좀 많아요. 아들이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발레도 하고 그럽니다.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같은 곳에서 객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광주와 부산을 왔다 갔다하면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어요. 아들이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좀 늦게 무용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니까. 아들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한다는 이야기를 자주해요. 또 자기가 돈을 버는데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부모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집안 환경도 감사한 일이라고 하구요. 

이윤기: 늦게 무용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정민교: 남편은 부정적이었지요. 춤은 취미로 할 수 있는 일이지 직업으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아들을 지지했어요. 제가 청소년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무용을 하겠다고 했을 때 반대했을지도 몰라요. 제가 청소년 쪽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전폭적인 지지를 할 수 있었어요. 몇 년 전에 창신고등학교 100주년 행사를 했는데, 100년 동안 현대무용을 전공한 졸업생은 우리 애 혼자 밖에 없었어요. 

이윤기: 와 대단하네요. 

정민교: 본인의지도 대단했어요. 중학교 때 춤을 잠깐 배운 일이 있거든요. 자기가 안 해본 걸 제대로 해보고 싶어했어요. 춤을 배우기 전에 자켓 사이즈가 110이었고 몸무게도 90kg이 넘었어요. 그런데 체중 감량을 하겠다고 권투를 시작하더니 70kg까지 체중을 줄여버리더라구요. 체중 감량을 하고 무용학원에 우연히 들렀는데, 원장님이 날씬해진 몸을 보고 선이 좋다면서 무용을 권유하셨어요. 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하고 그러면서 결국 무용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이윤기: 오늘 큰아드님 이야기 참 놀랍습니다. 인터뷰 마치면서 혹시 못다한 이야기 있으면 해주세요. 

정민교: 제 활동을 돌이켜 보면 지난 19년 동안 항상 열정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했어요. 좀 느슨할 때도 있었고, 아주 열심히 활동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늘 YMCA와 인연을 끊지는 않았던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좀 활동이 뜸할 때도 실무자들이 안부를 물어주고, 한갑선 회장님이나 시민중계실 선생님들이 연락을 주시고, 또 시간 내서 다시 오면 그걸 그대로 인정해주고, 반갑게 맞이 해준 것이 긴 시간 봉사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이윤기: 그게 요즘 지자체들이 강조하는 ‘관계인구’하고 비슷하네요. YMCA가 관계 회원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지금 당장 직접 회원 활동에 참여는 못하지만, YMCA에 우호적이고, YMCA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고, 또 언젠가 계기나 인연이 되면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겠습니다. 

정민교: 네 그런 뜻입니다. 관계를 끊지 않고 안부를 물어주고, 오랜만에 오면 반갑게 인사해주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가까이서 실무자들을 보면 너무 일이 많고 바쁘니까 그렇다, 철두철미하게 처리하려니 그렇다 하고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YMCA와 인연을 맺은 회원들은 열심히 안하더라도 일단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언제 또 계기가 돼서 두 발 다 뛰어들 수도 있거든요.

 

이윤기: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 할 시간입니다. 모든 인터뷰이에게 묻는 공통 질문인데요. 나에게 마산YMCA는 OOO이다. 

 

정민교: 나에게 YMCA는 남에게(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이다. 저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요. 마산YMCA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또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분들이 많잖아요. 


이윤기: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약간 긴장하신 표정으로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아주 편안한 모습이십니다. 제주도 튼튼 수업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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