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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YMCA/만나러갑니다

나는 요즘 잘 놀기 위해 산다

by 이윤기 2023. 6. 12.
김인성 명예이사 인터뷰는 6월 8일(목) 오후 5시 30분 회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김인성 이사님은 2020년 3월 정기이사회에서 마산YMCA 정관규정(이사장을 지내고 YMCA 활동 15년 이상인 이사)에 따라 명예이사로 추대되었습니다. 당시 이미 일본 북해도로 출국하셨기 때문에 따로 추대식하지 못하였는데, 올 봄에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6월 정기이사회에서 명예이사 추대식을 하였습니다. 이 인터뷰는 추대식 3시간 전에 진행되었습니다. 

약력 및 YMCA 활동
- 마산 출생
- 1986년 ~ 의신여중, 마산중, 지세포중 교사
- 환경을 생각하는 전국교사모임
- 전국 최초 환경담당 장학사
- 우포생태교육원장
- 경남 기후환경네트워크 공동대표
- 경남생명의숲 상임대표
- 2000년 ~ 2020년 마산YMCA 이사(20년)
- 2001년 ~ 2020년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
- 2006년 ~ 2008년 제26대 마산YMCA 이사장

▲ 이인안 이사장, 김인성 명예이사, 오승민 팀장(김인성 선생님의 의신여중 제자, 중1 담임 선생님)


이윤기: 이사님, 일본에서 돌아오신 후에 창동에서 지내신다고 들었습니다.

 

김인성: 맞아요 내가 일본 가기 전에 자산동에 있는 아파트를 다 처분을 해버렸어요. 처분하고 일본 갔다와서 새로 집을 하나 사려고 생각하다가 차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차 없이 살려고 보니까 교통이 편리한 곳이 좋겠더라구요. 저는 요새 월요일부터 주말까지 계속 놉니다. 그냥 노는데 논다고 바빠요. 맨날 노는데 뭐하러 차를 사가지고 세워놓고 다니겠나 싶어서 차를 안 샀지요. 차 없이 일주일에 세 번을 창동에 나가거든요. 그래서 아예 창동에 원룸을 구했어요. 오늘도 택시 타고 왔어요. 

이윤기: 창동에서는 무얼 하시는가요?


김인성: 취미 생활 합니다. 하루는 하모니카 배우고 있고, 하루는 나이든 분들과 함께 동요 부르는 모임을 해요. 생명의 숲 회원들이 같이 하는데 지난 번에 박물관 앞에서 공연도 한 번 했어요. 그리고 하루는 생명의숲 사무실에 갑니다. 

 

이윤기: 이제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보통 다른 이사님들은 회원 활동을 하시다가 이사로 추천되시는데, 자료를 보니 이사님께서는 YMCA 입회 하시면서 바로 이사가 되셨더라구예. 어떤 인연으로 바로 이사회에 들어오셨습니까?

김인성: YMCA 활동을 하기 전에 먼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했어요. 주로 교사위원회에서 활동을 오래했지요. 환경운동연합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기 때문에 YMCA활동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지요. 아무튼 2000년 무렵에 주변에 많은 분들이 마산YMCA 활동을 권유하는데 거절하기 어려운 분들이었어요. 제가 정혜란 전 부시장님과 고등학교 때부터 아카데미 활동을 같이했어요. <흥사단 고등학교 마산아카데미> 활동을 같이 했는데, 정혜란 선배는 마여고, 나는 마고에서 활동을 했어요. 원래 1년 선배가 제일 무섭잖아요. 정혜란 선배가 권했어요. 그리고 친구인 김종수 이사, 평소 좋아하는 후배 박영민 이사, 김형준 이사 이런 분들이 이미 YMCA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활동하면 좋겠다고 해서 거절하기 어려웠죠. 

이윤기: 기독교인이셨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합성교회 권사님이셨지예? 당시 마산YMCA 기독교 정체성을 가진 이사님들이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를 요청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인성: YMCA 입장에서는 그런 면도 있었겠군요. 나는 당시 환경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환경운동을 확장하기 위해 참여를 요청한다고 생각했어요. 내 입장에서도 환경운동과 관련해서 YMCA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다 싶기도 했구요. 


이윤기: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권이셨다는 말이지예? 

김인성: 이윤기 사무총장이 생각하는 학생운동과는 좀 결이 다르기는 한데, 아무튼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지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강조하신 ‘무실역행, 충의용감’을 따르자는 생각했어요. 자주 만나서 모임하고 토론하고 그랬어요. 어느 때는 밤을 새워 토론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학교에서 그런 활동을 싫어했기 때문에 몰래 활동했는데......말하자면 순수 운동권이었요. 정혜한 선배님과 그때부터 인연이 쭉 이어졌지요. 

 

6년만에 이사장, 초고속 승진(?)의 비결은?


이윤기: 이사님께서는 초고속 승진(?)을 하셨더라구예. 2000년에 이사회에 들어오셨는데, 2002년에 기록이사, 2004년에 부이사장, 2006년에 이사장을 맡으셨어요. 20년 동안 마산YMCA 이사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김인성: 그렇죠. 워낙 갑작스레 일을 맡기는 바람에 정신없이 맡은 역할을 했어요. 이사회에서는 임원이사를 맡아 일하고 이사장도 맡고 했지만, 실제 활동에서는 환경과 관련된 여러 활동에서 역할을 많이 맡았던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래도 시민사업위원회가 중심이 되어서 했던 하천탐사 활동인 것 같아요. 2년에 걸쳐서 마산시내에 있는 모든 하천을 상류부터 바다까지 다 답사를 했던 것 같아요. 삼호천, 회원천, 산호천, 진전천 이런 하천들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마산만까지 걸어서 답사를 했어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장군천 흔적을 찾아나서기도 했구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회원천과 교방천이 합류하는 곳에 있던 오동동 아케이드 아래에 들어갔던 일이지요. 뭔가 무시무시한 괴물이라도 있을 것 같은 그런 곳을 직접 들어갔었지요. 다들 피부병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었지요. 하천 발표 결과를 모아서 발표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일본 후쿠오카로 하천탐사 여행을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인안 이사장이 그때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김재현 교수하고 너무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약간 술친구 비슷하게 되어서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많이 친해져서 김재현 교수는 제가 일본에 있을 때도 가끔 전화 통화를 하고 그랬어요. 

후쿠오카 하천 답사 때는 호텔에서 ‘숙’은 했는데, ‘박’은 안 하고 밤새 이야기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YMCA 활동하시던 이사, 위원들이 많이 함께 갔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하천답사"


이윤기: 네 저는 후쿠오카를 함께 못가서 그때 경험을 공유할 수 없어 참 아쉽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임항선 답사도 열심히 함께 하셨더라구예. 


김인성: 맞아요. 그때는 여러 가지 생태답사가 중요했어요. 사람들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데 생태답사가 일정하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거든요. 여러 차례 임항선 철길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윤기: 지금 임항선 그린웨이가 만들어지는데 당시 YMCA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예?


김인성: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임항선 그린웨이를 지날 때면 “저그 우리가 그때 시작했는데...”이런 생각이 들어요. 최종 결정은 시장과 공무원들이 했지만, 시민들이 편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녹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YMCA가 했지요. 그리고 그 후로 시민들 의식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원래 우리 구상대로면 노면 전차나 증기기관차 같은 게 운행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안 돼서 좀 아쉬움이 있지요. 


이윤기: 경남도민일보에서도 임항선 그린웨이 걷기대회를 하고 있구요. 저희도 국화축제 때 걷기대회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315해양누리공원이 핫 플레이스가 되어서 말씀 하신대로 마산역에서 전차타고 해양누리공원까지 갈 수 있었다면 시너지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윤기: 마산YMCA  활동에서 부족하거나 미흡하다고 생각되시는 부분이 있다면?김인성: 글쎄 내가 생각해봤는데...미흡한게 없죠. 막 찾아내려고 생각해봤는데 없어요. 이윤기: 좋게 평가해주셨서 고맙습니다. 저는 이사님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이사회 독서 토론’입니다. 강현영 전 이사장님과 두 분이 꽤 오랫동안 매달 1권씩 이사회 독서토론을 진행했던 것은 한국-Y, 세계-Y에서도 아마 사례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인성: 아 저는 좀 힘들었어요. 왜 힘들었냐 하면 YMCA 이사회는 알다시피 구성원이 정말 다양하잖아요. 우리가 같은 YMCA 이사지만, 각자 그 성향이 다양하기 때문에 책을 고르는 것도 참 힘들었고, 그리고 어떤 한 책에 대해서 독후감을 나누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함부로 함부로 개인 생각을 말했다가 좋은 관계가 안 좋아질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넓은 의미에서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아무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우리 YMCA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좀 힘들었어요. 


이윤기: 당시에 저도 책 선정을 많이 했는데 저는 이사님이 힘들게 독서토론 진행을 하시는 줄 전혀 몰랐습니다. 저는 이사님들이 책을 잘 안 읽고 오셔서 진행이 힘드시겠다는 생각만 했었는데...오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사회 독서토론은 "나도 힘들었어요"


김인성: 그런 것도 있긴 있었죠. 그것도 힘든 이유 중 하나였는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 색깔이 아주 서로 달랐기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었는데 다 못했죠.

 

결국 이사회 독서토론은 강현영, 김인성 전 이사장님 두 분이 진행을 맡고, 제가 실무를 맡아서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2년 간 진행하였습니다. 2015년 연말이 되자 더 이상 진행을 맡겠다는 이사님들이 없어서 “좀 쉬었다 다시 하자”고 한 후에 다시 시작되지는 않았습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동안은 김인성 이사께서 책 선정을 도맡아 하였으며, 강현영 전 이사장께서 독서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2006년 이후에는 제가 책 선정을 맡았는데, 1/3은 이사님들께서 돌아가면서 추천하셨고 2/3는 제가 선정하였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2003년 5월의 첫 번째 책은 에모토 마사루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였습니다. 2015년 마산YMCA 사업보고서에는 2003년 5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진행된 독서토론 도서 목록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윤기: 자 그러면 마산YMCA가 앞으로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은 어떤 일일까요?

 

김인성: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고 뭐 내가 볼 때는 활동가들이 진짜 저러다가 지치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최근 상황은 잘 모르지만 사실 활동비도 얼마 안 되는데 저렇게 활동을 해서 저 사람들이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내가 그 생명의 숲을 만들어서 활동가의 활동비를 마련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까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YMCA 활동가들이 참 잘한다. 지켜보면 자기 열정이나 사명감이 있어요. 개인적인 어떤 즐거움이나 쾌락이나 휴식이나 이런 건 미뤄두고, YMCA가 지향하는 어떤 공적인 일을 많이 열심히 하는 것 같았어요. 내 생각에는 그랬어요.

 

이윤기: 저희 활동가들을 그렇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산 YMCA가 좀 잘하고 있다 싶은 활동은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예?


김인성: 시민 법률 상담을 하는 시민중계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시민중계실 활동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실제로 시민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그런 활동이잖아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걸 해결해주기도 하고 또 방법을 찾아주고 그런 곳이 시민중계실이잖아요. 저는 참 좋은 활동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잘 모르긴 해도 아마 지금도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을 걸요. 


이윤기: 네 요즘도 월 50~100건씩 상담을 받고 있고 또 세탁 심의도 하고 있습니다. 사업자와 소비자간에 세탁물 분쟁이 생기면 민간 전문가들과 사업자 대표, 소비자 대표가 한 자리에서 심의하고 중재하는 기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시민중계실...참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김인성: 맞아요. 그런 분쟁이 생기면 시민들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주변 사람들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방해만 되는 경우도 있지요. 내 생각엔 힘들어도 계속 이어나가야 할 YMCA 활동이라고 봅니다. 자기 일처럼 열심히 전화를 걸어서 알아주고 해결하고 이렇게 해주는 거. 이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윤기: 개인적으로 늘 궁금했는데 은퇴 후에 짧은 여행이 아니라 일본에서 여러 해 살고 오신 까닭이 있습니까?

 

김인성: 쉽게 납득이 안 될 수도 있는데, 내가 퇴직하기 전까지 너무 좀 힘들게(열심히) 살았어요. 온갖 일을 맡아 가지고 무슨 장도 맡고 총무도 맡고 온갖 일을 많이 맡아서 하다 보니까 퇴직하고 나면 좀 쉬고 싶다하는 생각이었어요. 이런 저런 활동 다 접어두고 편안하게 지내야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막상 여기 있어 보니까 안 되더라구요. 이게 여기저기서 계속 연락이 오는 겁니다. 피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여러 가지 생각을 좀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인생관이랄까 내 삶의 철학이 좀 바뀌었는데 이제 나도 좀 편하게 살아보자. 재미있게 즐겁게 살아보자. 그냥 내가 편안하고 즐겁게 남은 여생을 보내도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남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하던 일을 좀 놔버리자 이런 생각으로 정리가 되었어요.

 

이윤기: 와 놀라운 말씀이시네예.

 

김인성: 진심이었어요. 그래서 일본에 가서 정말 그냥 편안하게 놀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어요. 내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내가 창동에 놀러 간다고, 난 놀러 가지 절대 일하러 안 갑니다. 

 

일본가서 아무생각없이 편하게 놀았어요. 한국 와서도 그렇게 살려고 해요


아직 생명의숲 활동은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는데, 그것도 그만해야 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생명의숲은 내가 주도적으로 만든 단체라서 딱 끊지 못하는 그런 게 있어요. 이제 그만한다하고 선언하고 나왔는데 그게 그렇게 잘 안되는 면이 있어요. 활동공간도 마련해야 되고 재정도 열악하고 앞으로 계속 김형준 치과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생명의숲 공간을 위해 창원시와 의논하고 협력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계시는데 인맥을 활용하는 쉬운 길 보다는 회원들과 노력해서 차근차근 노력하는 방법으로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창원시 환경정책관으로 일했던 이종훈 정책관이 활동공간을 대구로 옮긴 것에 대해서는 지역 인재가 유출된 안타까운 일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윤기: 저는 개인적으로 늘 궁금한 게 있었는데 YMCA 모임 같은 데서 2간, 어떨 때는 3시간 이상 아무 말씀 안 하시고도 잘 듣고만 계시는 걸 자주 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듣기만 하실 수 있죠? 

제 기억에는 이런 장면이 많습니다. 모임에서 특별히 의견을 여쭈면은 말씀을 하시는데 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아무 말씀 안 하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계속 듣고만 계시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김인성: (하하) 내가 말을 하고 싶은 게 많았죠. 참아서 그렇지.


이윤기: 세상에 그걸 어떻게 참으십니까?


김인성: 그게 자꾸 참으면 잘 참아져요. 뭐라고 할까 습관이 되면 잘 참아져요. 그때보다 지금은 말을 좀 많이 해요. 내가 자유로우니까 근데 옛날에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그냥 내가 말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입을 닫는 일이 많았지요. 물론 속이 썩을 때도 있었지요. 

그게 이제 내 습관이 됐어요. 왜 습관이 되었냐 하면 내가 어느 모임에 가보면은 택도 안 되는 소리를 혼자 다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나까지 얘기를 많이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모임이... 그래도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이 되면 그 틀렸다는 말을 안 하고 참는 게 사실 쉽지는 않아요. 많이 참다가 막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전국 최초 환경 장학사...한 마디로 안타까웠다

 

이윤기: 최초의 환경담당 장학사로 최초로 일하셨던 소회를 좀 듣고 싶습니다. 

 

김인성: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냥 ‘안타까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우선 어떤 일이던지 처음 하는 사람은 뭘 마음대로 하기 힘들어요. 이미 여러 관행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특히 교육계가 그런 곳이죠. ‘환경 교육을 하자’하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꼭 안해도 되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귀찮고 힘들고 땀을 흘려야 되고 이런 일들이기 때문에 그런거죠. 

그래서 우포생태교육원을 시작한거죠. 환경을 생각하는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여러 가지 활동을 만들고 지원하고 이런 일부터 시작한겁니다. 하지만 막상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지요. 교육과정도 그냥 바뀌는 게 아니거든요. 장학사 직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는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이 대목에서 당시 함께 일(활동)했던 후배 교사들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경남교육을 위해서 일할 인재인데, 능력이 제대로 쓰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윤기: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YMCA는 OOO이다’라고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시다면?

 

김인성: 나에게 YMCA는 좋은 숲이다. YMCA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유지 지도자들이 YMCA를 구성하고 있고 그 사람들이 되어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숲과 같은 다양성이 있는 곳이에요. 좋은 나무가 많은 그런 숲이지요. 내가 볼 때 이제 그 숲이 확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묵은 숲처럼 지속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YMCA가 ‘좋은 숲’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윤기: 그럼 이제 공식 인터뷰는 여기까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오래전 임항선 답사 할 때 김인성이사께 들은 ‘이름 모르는 그 풀을 잡초라고 부르며 우리도 모두 잡놈이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다 각각 이름이 있는데 우리가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그냥 다 잡초라 무르는 것은 이름 모르는 사람을 다 잡놈이라고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평생 간직하는 큰 배움이 되었습니다.

같은 산을 가도 같은 길을 걸어도 김인성 이사님과 함께 걸으면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립니다. 나무와 풀과 숲에 살아 있는 생명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인사를 건네며 걷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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