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중학교 2학년, 배한솔
안희제는 양정의숙을 졸업하고 동래와 의명에 구명학교와 의신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안희제는 항일비밀결사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히였다 안희제는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열고 그곳을 국내 독립단체의 연락처로 삼았다. 그리고 1925년 중외일본사를 인수, 중알일보사로 개칭하여 총독정치를 비난하는 글을 발표했다.
1933년 중국에 발해 농장과 발해학교를 세워 교포의 생활안정과 청소년교육에 힘썻다.그리고 종교를 통하여 민족자주정신을 고취하였다 1942년 11월 일본경찰에 구금된후 9개월 만에 풀려났으나, 이듬해 무단장병원에서 병사하였다.
안희제가 독립운동을 지원할 자금을 마련하기위해 설립한 백산상회는 처음에는 자본금 13만원의 소규모 개인상회였지만 1919년에 영남지방의 대지주들을 규합하여 자본금 100만원의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장하여 부산에서 제일 큰 회사가 되었다.
그 후 국내의 대구,서울,월산과 만주지역의 안둥,평톈 등지에 지점 또는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여 그 활동지역을 확산하였다.그러나 회사의 경영상태는 항상 결손을 면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회사 경영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통해 막대한 자금이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에 대한 지원금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3.1운동 이후 안희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차장을 맡게되어 임시정부의 모든 경비를 조달해 주며 회사의 경영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던중 백산무역이 독립운동 자금의 공급처라는 걸 눈치챈 일보이 회사의 장부 검열등의 조사를 집요하게 계속하는 등 탄압하며 결국 회사는 1927년 문을 닫았다.
안희제와 백산사회에 대한 조사를 하며 안희제가 독립운동에 많은 도움을 줬고 백산사회를 설립하면서 안희제가 달성한 많은 업적들을 알게되었다.또한 자본금 13만원의 소규모 개인 상회를 자본금 100만원(지금의 200억 정도)의 대규모 상회로 발전시킨 안희제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백산상회를 설립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도운 안희제가 없었다면 임시정부가 유지되는되 더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또한 오늘 조사를 하며 많은 지식을 쌓아서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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