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이 5회 시민대학 합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이날은 새벽잠을 설칠만큼 비가 쏟아부었습니다. 25명이 함께 대형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에 걱정으로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그런데 이 걱정이 닿은 것인지 창원보다 적은 양의 비가 왔습니다. 이후 확인해보니 경남에서 2번째로 비가 많이 온 날 이라고 합니다.
마을 감싸주는 옥전고분군
합천의 첫 번째 방문한 곳은 옥전고분군입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고분군이 둘러 쌓인 곳에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 벅찬 감정이 일었습니다. 한 분은 ‘고분 사이에 거니니 어머니 품에 있는 것 같다’는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집니다. 이처럼 다양하게 느낄 만큼 묘한 기분이 드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답사 전체 진행을 맡은 창원대학교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은 고분군이 형성된 위치가 가지는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고분군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의 시선이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고분군을 바라보는 시선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함이 중요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 나니 ‘저 아래에서 사람들이 이곳을 우러러봤구나.’라는 생각이 더해져 고군분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울퉁불퉁 재미있는 호연정
점심을 먹기 전 한 곳을 더 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다음은 호연정입니다. 호연정은 조선 선조 때 예안 현감을 지낸 주이(1515-1564)가 관직에서 물어 나 머물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곳입니다. 호연정은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현재의 모습은 숙종 37년(1711년) 다시 지었습니다.
호연정은 황강을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의 아쉬움 컸습니다. 골재채취로 유유히 흐르는 강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흉물스럽게 모래가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자연경관과 잘 어울러져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호연정은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호연정 편액 중 미수 허목이 쓴 편액은 그림을 영상하는 서체였습니다. 그리고 자재로 쓴 나무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들보를 반듯한 모양이 아니라 용의 꿈틀대는 모습같은 구불구불한 나무를 썼습니다. 자연스럽고 재치가 돋보였습니다. 호연정에서 건축전문가인 허정도 위원의 기둥에 대한 설명이 더해져 즐거운 현장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답사 진행을 아무리 잘해도 밥이 맛없으면...
밥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짧은 이동시간에도 쉬지 않고 김주용 위원의 설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열정에 매번 감동받는 것 같습니다. 점심식사는 합천 맛집인 ‘청학동’이라는 곳에서 즐겼습니다. 즐겼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너무도 높았습니다. 점심 또한 김주용 위원의 센스였습니다.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 함벽루
식사 후 찾은 곳은 함벽루입니다. ‘물의 푸름을 머금고 있다’라는 뜻을 지닌 함벽루는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당시 비가 오는 날 함벽루 마루에 앉아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떨어지면 마치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데크가 설치되어 그 느낌이 사라져 아쉬웠습니다.
함벽루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글이 함께 있습니다. 두 분의 글이 한곳에 있는 건 유일하다고 합니다. 두 분의 글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김주용 위원이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을까요? 좋지 않았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좋았다 나빴다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남명 조식에 대한 출판 경험이 있는 ‘뜻있는 출판사’ 대표인 이지순 위원이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여러 사례로 설명해주었습니다.
의병정신을 느낄 수 있는 임란창의기념관
아쉬움을 살짝 남기고 이동한 곳은 임란창의기념관이었습니다. 이곳은 처음 답사 계획에는 없었는데, 시민대학 합천 강의 중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본 합천’ 주제를 맡은 김강식 교수님이 합천에 가면 꼭 가보라는 곳이어서 급하게 답사 코스로 추가했습니다. 아주 소박했지만 주변 산새와 구경도 함께하면서 의병들의 정신을 생각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속이 뻥 뚫어주는 황계 폭포
이렇게 역사 현장만 찾기는 아쉬워 합천의 자연경관을 느끼기 위해 황계폭포를 찾았습니다. 이번 답사에서 비 소식을 접할 때부터 ‘폭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고민과 안전에 대한 걱정이 컸던 곳이었습니다. 실무자로서는 황계폭포만 다녀오면 답사에 대한 걱정을 안해도 되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창원에는 큰비가 내렸기 때문에 걱정과 안부를 묻는 문자가 수시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라 더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황계폭포로 향할 때까지는 합천에는 비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내린 비로 폭포는 장관이었습니다. 모두들 말을 잃고 감상했고 일제히 핸드폰으로 그 현장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비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비 덕분에 잊지 못할 광경을 마주하였습니다.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로 마음까지 깨끗이 씻긴 느낌이었습니다.
황계폭포에서 나오면서 이제 안전 걱정은 안해도 되겠지라고 안도했는데, 갑자기 뜻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길을 잘못 들어 외길 오르막에서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후진하기도 너무도 위험했습니다. 분명 그 길이 아니라고 김주용 위원이 전했음에도 버스기사님의 이상한 자존심이 발동했는지 그 길을 고집했습니다. 결국 전진하기에도 조심스러운 길을 후진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로 인해 1시간이나 일정이 지체되어버렸습니다. 진행자로서 너무도 죄송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참여자 모두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황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마음 고생이 엄청나게 했습니다.
건물이 없어도 웅장함을 전하는 영암사지
그 상황 속에서도 김주용 위원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지막 코스인 ‘영암사지’로 향하는 동안 정호승 시인의 ‘폐사지처럼 산다’를 낭독하고 지역 행사 안내 등 버스 안에서 다양한 정보와 감동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영암사지’에 도착하니 꽤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영암사지의 첫인상은 어떠한 건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웅장함이었습니다. 황매산을 뒷 배경으로 해서인지... 1시간이나 늦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인지... 아님 김주용 위원이 낭독해준 시 덕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웅장함으로 다가온 영암사지는 이 곳은 반드시 학예사랑 함께 와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영암사지는 자세한 연혁이 전해지지 않았으나, 주민들에 의해 ‘영암사’라고 구전되어 왔습니다. 금당지 기단의 사자상, 쌍자석등의 디테일 그리고 일본의 만행, 영암사지 삼층 석탑 등 우중에서 진행된 설명을 들으며 ‘와~’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만약 비가 오지 않았다면 보물 찾기 하듯 천천히 찾아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김주용 위원과 같은 학예사와 함께여야 가능한 일이지만...결국 비가 계속 내리고 어두워지기 시작해 답사는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영암사지를 마지막으로 모든 답사 일정이 끝났습니다. 1시간이나 늦어진 귀가에 짜증도 낼 만한데 몇 분이 전한 답사 소감이 너무도 힘이 났습니다. ‘서로에 감사하고 즐거웠고 의미있었다.’는 내용의 소감으로 험난한 시간을 싹~ 잊게 해주었습니다.
답사로 시민대학 합천편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도시는 ‘김해’입니다. 김해의 공부는 어떨지? 답사는 또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채워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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