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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YMCA/만나러갑니다

1번 타자, 유격수 ...나에게 YMCA는 천년해우

by 이윤기 2025. 12. 3.
만나러갑니다. 이번 달에는 도시인문기행 수강생으로 마산YMCA와 인연을 맺어 「기진맥진」 회원, 「역사와문화」 회원, 그리고 시민사업위원 으로 1인 3역을 하시는 심우진 회원을 만났습니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누구못지 않게 열심히 활동해오신 심우진 회원을 소개해 드립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앞서 출퇴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매일매일 성산구 상남동 성원아파트에서 의창구 동정동까지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가 오거나 너무 덥거나 추운 날이 아니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윤기: 짧은 거리가 아닌데 시간 많이 걸리지 않습니까?

 

심우진: 그래서 일찍 출발합니다. 5시에 출발하면 오전 7시 가까이 되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약 10km쯤 되는 거리인데 중간에 신호등도 있고 그러다보니 넉넉하게 2시간 잡고, 가끔 자전거도 타는데 한 40분쯤 걸립니다. 다행이 창원이 길 자체가 위험하지는 않거든요. 자전거 탈 때는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지만 주택가 이면도로가 더 편한 구간도 많아요. 오래 다니다보니 이제 편한 길로 다니지요. 개인 자전거는 없고 누비자 연간 회원(3만원)으로 가입해서 공공자전거 혜택을 누립니다. 처음 누비자 탔을 때는 도로가 울퉁불퉁해서 제 생각대로 주행이 안 되었는데 지금은 길을 잘 아니까 울퉁불퉁한 길은 피해서 잘 다닙니다.


걷기도 싫고, 자전거 타기도 어려울 때는 시내버스를 이용합니다. 출퇴근 코스를 다니는 노선 버스가 많고, BRT구간에 속하기도 하기 때문에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버스를 타는 대중교통 모범시민이라고 자부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승용차는 사무실 주차장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대로 모셔놓고, 주말에 고향집 갈 때 혹은 특별한 일정이 있을 때만 운행합니다.

 

이윤기: 사무실은 어디인가요?


심우진: 동정동에 있는 흥한웰가 아파트 상가 1층입니다. 사무실도 넓고 휴게실도 넓고, 탁구장이 있어서 휴게시간에는 탁구도 칠 수 있고 좋은 점이 많아요.

심우진 회원은 법무사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심우진 회원이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까지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법무사 사무소 직원이 되기까지 경험한 산전수전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윤기: 그럼 창원에는 언제 오셨나요?


심우진: 2019년에 창원으로 왔습니다. 지금 일하는 법무사 사무실로 직장을 옮기면서 창원으로 왔는데요. 좀 길지만 과거 이력을 먼저 소개해드릴께예. 법무사 사무실에 근무하기 전에 나름대로 이것저것 많이 좀 경험했거든요. 제가 부산대학교 법대(공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법대에 입학할 때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법시험을 치려고 갔구요. 고향이 양산인데 청송 심가 집성촌이었답니다. 친척 중에 꽤 유명한 검사가 한 분 계셨는데, 그분 영향으로 집안에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있으면 법대에 입학시키는 분위기, 혹은 압력 같은 것이 좀 있었어요. 
제가 90학번인데, 부산대 법학과를 1지망으로 하고, 고고학과를 2지망으로(담임 선생님이)했더라구예. 지금 생각해보면 고고학이 제 적성에 더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1학년 때부터 사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공부가 최우선이었고 그러다보니 공부에 방해가 되는 건 모두 삶에서 배제 시켰고 당연히 연애도 안 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때도 한 눈 팔지 않는 모범생이었는데, 대학 가서도 고시 공부에 매달린겁니다. 
부산대 법대에 당시 효원재라고 고시생들 전용 기숙사가 있어서 그곳에서 공부만 열심히 했죠. 고시 준비 4년 하고 군대를 2년 동안 다녀왔는데, 그 때 공부 시기를 좀 놓쳤어요. 타이밍을 놓친 것도 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공부 전략을 잘못 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보따리 싸가지고 서울 고시촌으로 갔어야 하는데, 결단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혼자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구예. 


이윤기: 사법시험을 몇 번이나 도전하셨나요?

심우진: 사법시험, 고등고시 한 번씩 치고 그만뒀어요. 1차도 시험도 안 붙었기 때문에 일찍 마음을 접었습니다. 졸업하고 한 2년 정도 쪽방 고시촌 생활하다가 결국은 그만두었어요. 솔직히 혼자서 누우면 팔도 완전히 펴지 못하는 조그마한 방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밥 먹고 공부하고 밥 먹고 그런 생활 하는 것이 회의가 들었습니다. 짐 싸들고 집에 와서 IMF 이후에 유행했던 실직자 재취업 교육, 고용 촉진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고시그만 두고 학원 강사로


이윤기: 뭘 배우셨나요?

심우진: 그냥 놀며 놀면 뭐 하나 싶어서 직업전문학교에 가서 컴퓨터 공부를 좀 많이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많이 만졌거든요. 프로그래머는 아니었지만, 하드웨어도 만지고(원래 기계 만지는 걸 좋아했어요) 처음엔 OA과정으로 시작해서 OS(운영체제)까지 좀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하였습니다. 배우는데 돈도 안 들고 오히려 교통비를 받으면서 배웠지요. 1년 반 정도 열심히 직업 교육을 받았네요. 어느 날, 직업전문학교 담당 직원이 학생 그만두고 행정실에서 근무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우연히 행정실 직원으로 일할 기회가 왔고, 회계와 영업까지 현장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이윤기: 그곳에 계속 계셨던 건 아니죠?

심우진: 다음 직장은 학원이었습니다. 사실 학원 강사로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산 북정동에 있는 보습학원, 초중고 그리고 일반 성인들까지도 다니는 그런 학원이었습니다. 북정공단 근처에 있는 양산 변두리에 있는 학원이었는데, 구직 활동 중에 채용이 되었습니다. 당시 원장님이 부산대 출신이었는데, 학교 후배인 저를 구직 카드에서 발견하셨다고 하더라구예. 원장님께서 학원 선생님으로 일해보자는 제안을 해주셔서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윤기: 직업전문학교에서 스카웃 되신거네예?

심우진: 제가 원래부터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동시에 가르치는 것도 좋아합니다. 어쩌면 교대나 사범대가 제 적성에 더 잘 맞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도 가르치고 설명해 주는 거 이런 거 되게 좋아해요. 당시 원장님께서 학원에서 일하는 것이 직업 전문학교 행정실에서 허드랫 일 하는 것 보다는 나을거라고 하신 말씀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학원에서 처음에는 컴퓨터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했고, 좀 시간이 지나면서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 영어도 가르치고, 시험 때는 시험대비 특강도 하고 그렇게 15년 정도를 학원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청춘을 학원에서 보낸 샘이지요.

 

이윤기: 인기 강사셨겠네예. 워낙 성실하시니까? 

심우진: 학원 이름이 <알찬학원>이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어요. 아줌마들 컴퓨터 가르치고, 아이들 영어 가르치고 이렇게 지냈는데 밤 낮으로 일하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갔어요. 시험 때는 시험대비 특강하고, 방학 때는 학원아이들 데리고 수련회도 가고, 학원이 잘 나갈 때는 버스 대여섯대가 움직였답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번 것은 아닙니다.

 

이윤기: 학원이 잘 운영되었는데 왜 돈을 많이 못 버셨을까요? 


심우진: 우선 변두리 학원이다 보니 부모님들 형편이 여의치 않았고, 국영수 다 해서 10만원 정도 받는 그런 정도였으요. 그러다보니 선생님들도 페이가 높지는 않았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 좀 철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월급에 크게 연연치 않습니다. 지금 있는 법무사 사무실도 그렇게 월급이 많은 편은 아니거든요. 제 나이나 경력에 비하면 낮다고 봐야죠. 월급보다 일에서 느끼는 보람 같은 걸 우선시 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제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다보니 더 연연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2015년 무렵이 되니 학령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학원이 사양사업이 되었습니다

이윤기: 인구 감소에 따른 영향을 굉장히 일찍 받은 편인 것 같습니다. 


심우진: 네 2010년 대 중반이 되면서 학령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어요. 제가 일하던 학원도 그런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요. 특히 저희 학원은 변두리에 있었기 때문에 양산에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더 어려워졌습니다. 돈을 모아서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가는게 자연스런 흐름이었지요. 제가 일하던 학원도 원생 숫자가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였기 때문에 제 스스로 그만뒀습니다. 몇 달 동안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걱정하실까봐. 학원다니는 것처럼 나와서 산에도 가고 부산에도 가고 뭐 다니고 싶은 곳 다녔지만 결국은 못 놀겠더군요. 노는 것도 어떤 계획이 있고 잘 놀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알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집 근처 공장에 나갔습니다. 1차 목적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구직활동이었는데 이번에도 취직이 된 겁니다. 

실업급여 받기 위해 구직 활동하다 빵공장 노동자로

 

이윤기: 무슨 공장에 가신건가요?

심우진: 빵 만드는 공장, 빵 원료를 반죽까지 다 해가지고 급속 냉동시켜 판매하는 공장인데요. 생지라고 들어보셨죠. 생지를 사서 오븐에 구우면 바로 빵이 되는데요. 오븐에 굽기 전 단계까지 만드는 생산직이었습니다. 빵 포장하는 작업, 빵 반죽하는 작업, 포장된 걸 영하 30~40도 냉동 창고에 보관하는 작업, 보관된 생지를 분류하여 출하하는 작업, 이런 걸 다 경험해봤는데요. 그때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삶을 좀 많이 알게 됐어요. 내가 너무 온실해서 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처음에는 짧게 일하려고 했는데, 막상 일하다 보니 거기 계신 분들하고 친해지고 하면서 한 1년 반 정도 일했어요. 빵은 참 많이 먹었습니다. ㅎㅎ 


이윤기: 생지 만드는 공장인데 어떻게 빵을 많이 먹었지요?

심우진: 모든 공장에는 불량이 생기잖아요. 그런 제품은 포장을 안하고 빼 놨다가 새참 시간에 오븐에 구워 먹었어요. 대형 오븐에서 구우면 갓 구운 제일 맛있는 빵이 되거든요. 특히 크로와상을 좋아했어요. 제가 일하던 공장에서 만든 생지가 탑마트 베이커리에 납품이 되었어요. 일본에 수출도 하는 제법 큰 회사였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별로 장래성이 있는 회사는 아니었죠. 그래서 사회인 야구단에서 만난 형님 소개로 다시 직장을 옮기게 되었어요. 김해 안동공단에 있는 엘리베이터 부품업체로 옮겼습니다. 쇠 깍는 공장이었는데 저는 쇠 깍는 것 자체를 그 때 처음보았습니다. 제가 직접 작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영업이나 출하 업무를 하려면 작업을 알아야 하니까 현장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장의 열악한 상황을 직간접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쇠를 깍을 때 사용하는 절삭유가 굉장히 독한 기름이거든요. 냄새도 심한데 환기도 잘 안되고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그러면서 처우개선이나 안전, 환경 개선에 사장들이 별로 신경을 안 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을 그냥 하나의 기계 부품처럼 여기는 걸 지켜보는 것이 힘들어 결국 2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다음이 지금 일하는 법무사 사무실입니다. 


이윤기: 파란만장한 경력인데예. 법무사 일은 원래 경험이 없는 일인데 어떻게 이쪽으로 오셨어요?

 

심우진: 저희 누나가 요양병원 수간호사로 계시는데요. 동료 간호사가 현재 일하는 법무사 사무소 사무장의 부인이었습니다. 누나가 “내 동생 놀고 있으니 자리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고, 사무장께서 면접이나 한번 보자 해서 만났는데 함께 일을 하자고 하더군요. 사무장과 법무사가 형제이신데 처음에 수습사원 비슷하게 들어가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법을 공부해서 실무 경험이 없었지만 이론적 토대는 있었기 때문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6년 정도 일하고 있는데 저희 사무실에서는 지금도 제가 막내입니다. 


이윤기: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네예. 자 그럼 이제 YMCA와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심우진: YMCA와 인연은 5기 시민대학:도시인문기행 입니다. 작년에 도민일보 광고 보고 신청했습니다. 원래부터 인문학을 좋아했고, 현장에 답사다니고 역사공부하고 그런 걸 좋아했습니다. 광고 보자마자 왜 이런 걸 진작 몰랐을까하고 신청했지요. 작년에 합천과 김해 답사를 갔는데, 김해 답사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봉재 이사님이 YMCA 활동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사실 그때까지 저도 좀 쭈삣쭈삣하고 서먹서먹했는데, 같이 식사하면서 대화가 이어지고 구체적인 제안을 해주셔서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윤기: 지금은 기진맥진과 역사와 문화에서 활동하고 계시지요?

심우진: 시민대학:도시인문기행을 마치고 연결해서 <역사와문화>라는 모임을 만들고 있으니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김태석, 이봉재 이사님이 제안해 주셨는데,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모임이니까 저 하고 딱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주중에 하는 모임은 큰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에 11월부터 참여했습니다. 
기진맥진은 청량산에서 시산제 할 “때 처음 참여했습니다. 제가 원래 산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기 때문에 역시 나한테 맞는 모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뒤에 곧바로 통영 사량도에 갔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 참석이 좀 뜸한 것은 제가 주말을 양산에서 보내기 때문입니다. 집에 혼자 지내시는 아버지와 주말을 함께 보냅니다. 말동무도 해드리고 밥도 챙겨드리고, 텃밭도 돌보고 하다보면 주말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윤기: 역사와 문화 활동은 어떻습니까?

 

심우진: 역사와문화는 하나의 주제가 정해지면 3~4개 조를 나눠서 공부하고 자료를 준비해 발표까지 합니다. 그동안 다양한 창원의 인물들에 대해서 공부했고, 최근에는 창원의 스포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야구, 씨름 그리고 그 외 스포츠로 나눠서 발표 준비를 하는데, 모임을 통해 강제로 공부하게 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저희 조는 이번에 야구에 대해서 발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에게 조장을 맡기더라구예. 「창원 야구 100년사」를 읽으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발표 준비가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발표 준비 때문에 억지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은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냥 기분 좋게 하고 있습니다. 


이윤기: 역사와문화, 기진맥진, 시민사업위원회까지 YMCA 활동을 세 군데나 하시네예


심우진: 회원활동위원회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역사와문화 대표로...... 회원활동위원회에 참여하면서 YMCA 안에 있는 다른 모임 회원 활동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생명평화축제에 참가하면서도 활동의 범위가 넓고 다양한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활동을 하면 할수록 다양한 YMCA운동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참여해야하는지 몰랐거든요. 시민사업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지역문제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마산YMCA 성인 체육(스포츠 ) 활동 없어 아쉬움

 

이윤기: 혹시 YMCA에 대해 궁금하신거는 없습니까?

심우진: 있습니다. YMCA에 아기스포츠단은 있는데 성인 스포츠단은 왜 없죠? 사실 제가 야구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제가 사회야구 선수 활동을 15년 넘게 했어요. 지금은 여건이 안 되어 못하고 있지만 한 때는 야구에 푹 빠져지냈습니다. 학원 아이들과도 야구를 하고, 교사들과 같이 팀을 만들고 그러다가 정식 사회인 야구팀 창단에 참여했습니다. 김해로 직장을 옮긴 것도 야구팀에서 만난 형님 권유 때문이었어요. 제가 보기에 마산YMCA는 기진맥진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윤기: 마산YMCA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스포츠활동입니다. YMCA 삼각형 마크의 한 변이 몸, 체육, 스포츠를 상징합니다. 대부분의 근대스포츠는 YMCA를 통해 한국에 도입되었고, 심지어 농구는 미국YMCA에서 만들어진 종목이기도 합니다. 제일 큰 어려움은 시설이 없는 것입니다. 스포츠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YMCA들은 자체 회관에 체육시설을 가지고 있거나 지방정부로부터 체육시설을 수탁 받아서 운영하는데, 저희는 그런 시설이 없다보니 등산, 마라톤 같은 시설이 없어도 되는 활동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윤기: 야구 할 때는 어떤 포지션을 맡으시는지?


심우진: 주로 내야수를 맡았습니다. 제가 공을 무서워하지 않거든요. 전성기 때는 유격수, 그 뒤에는 2루수를 봤습니다. 덩치가 작다고 투수는 안 시켜주더라구예. 투수도 자신이 있었는데, 사회인 야구도 승패를 많이 따지기 때문에  투수 할 기회를 못 잡았습니다. 타격은 주로 1, 2번 타자를 맡았습니다. 한창 때는 토요일팀, 일요일팀에서 동시에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할 때는 상대 팀 전력 분석도 해서 다른 선수들에게 알려주고 그랬습니다.

하루 50km 장거리 트레킹...... 걷는데 온전히 집중하는 정화의 시간

 

이윤기: 다른 취미나 운동은?

심우진: 저는 장거리 트레킹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하루에 한 50km 걷는 트레킹. 시간 날 때마다 즐겨 합니다. 여건만 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가거든요.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하루에 한 12시간 정도 걷습니다. 시속 4~5km/h로 걸으면 50km 정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번씩 걷고 나면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각성이 되는 거죠. 미리 지도보고 코스를 짜고 도시락 싸서가기 때문에 온전히 걷는데 집중합니다. 나름대로 이제 이게 일종의 정화가 됩니다. 정화의 시간이면서 그냥 오로지 걷는 데만 집중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요. 다리가 아파도 물집이 잡혀도 목표를 향해 갑니다. 비가와도 눈이와도 걷는데만 집중하면 좀 심하게 말하면 무아지경에 빠지는 거죠. 요즘은 평일인데 빨간 날이 있으면 양산 집에 안가는 대신 장거리 트레킹을 합니다. 

 

이윤기: 장거리 트레킹 경험 참 놀랍습니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공통질문입니다. 나에게 YMCA는 OOO이다. 

 

심우진 : 나에게 YMCA는 [천년행우]이다.천년해우는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뜻밖에 만난 우연 이런 뜻이거든요.그러러니까 YMCA는 저에게 오랫동안 기다렸던 우연한 만남인데, 너무 잘 만난 만난 거죠. YMCA는 저에게 아주 소중하게 다가온 존재고 계속 함께하고 싶고 다른 사람한테 알려주고 싶은 그런 단체입니다.


이윤기: 실무자로서 마산YMCA에 대하여 좋은 평가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활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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