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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활동

마산! 산업화의 길과 민주화의 길을 걷다

by 조정림 2026. 3. 10.

마산YMCA 80주년 기념 마산의 길개발 프로젝트 답사

작성: 이지영(역사와문화 회원)

 

마산YMCA 역사와문화는 마산YMCA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마산의 길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산의 공간을 직접 걸으며 도시의 역사를 시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탐방 코스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의 1차 답사는 지난 27일 진행되었으며, 독립운동의 길과 민주화의 길 일부를 답사했다. 이어 37일에는 두 번째 답사가 진행되었다. 이날 답사는 오후 2시부터 520분까지 진행되었으며 허정도 이사의 해설로 김태석, 심우진, 심지현, 이서희, 이지영, 정규식, 하은영, 허정도, 이윤기, 조정림이 함께했다. 이번 답사에서는 산업화의 길민주화의 길일부 구간을 직접 걸으며 마산의 산업 성장과 민주화의 역사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업화의 길 공장과 시장이 만든 도시의 역사

 

답사는 한일합섬 터에서 시작되었다. 1966년 착공해 1967년 준공된 한일합섬은 1970년대 세계 최대 규모의 화학섬유 공장으로 성장한 마산 산업화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당시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마산 시민들의 논밭을 낮은 가격에 매입하면서 사실상 시민들이 산업화를 위해 토지를 내놓은 셈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일합섬은 노동자 교육을 위해 한일여자실업학교(현재 한일여고)를 설립했고 한때 7,200명까지 학생을 수용했다. 현재 공장 터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비석과 학교가 당시의 기억을 전하고 있으며, 한일합섬 노동자들이 즐겨 찾던 양덕동 분식거리 역시 지금까지 음식점 거리로 남아 있다.

 

이어 방문한 마산 자유무역지역은 마산 산업 발전의 또 다른 상징적인 공간이다. 마산은 해방 이후 민관이 협력해 기업을 유치하는 활동이 활발했던 도시였다. 1960년대 후반 바다를 매립해 임해공업단지를 조성했지만 처음에는 활용되지 못하다가 1969년 정부가 전자제품 공단으로 지정하면서 산업단지로 발전했다. 1971년 기업 입주가 시작되었고 1975년에는 약 3만 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공단이 형성되었다. 당시 소니 워크맨 등이 이곳에서 생산되기도 했다. 한일합섬 노동자 3만 명과 자유무역지역 노동자 3만 명이 만들어낸 생활 인구는 산호동 구획정리와 동마산 상권 발전으로 이어졌다.

 

 

다음으로 찾은 신흥모직 터는 현재 신세계백화점이 자리한 곳이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인 1940조선신흥방직이라는 공장이 세워졌다. 폐직물을 새 직물로 바꾸는 재생 섬유 공장이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신흥방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후 노동운동과 경영 문제 등이 겹치며 공장이 문을 닫았다. 이후 마산공업고등학교가 자리했다가 학교가 이전하면서 성안백화점이 들어섰고, 지금은 신세계백화점이 자리하면서 상업 중심지로 변모했다.

 

이어 방문한 가야백화점은 마산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1975년 건물이 준공되고 1977년 개점했으며 당시 9층 규모로 지역에서 매우 높은 건물이었다. 원래 설계는 18층이었지만 인근 코리아타코마 공장이 내려다보인다는 보안상의 이유로 9층으로 축소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음으로 찾은 오동동 아케이드1970년대 도시 개발의 흔적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1970년 하천을 복개한 위에 1974년 아케이드 상가가 조성되었고, 백화점보다 가격이 저렴해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으며 오동동 상권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하천 복원 사업이 진행되면서 2009년부터 정비가 시작되어 2014년에는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다.

 

이어 방문한 고려모직 터는 일제강점기 산업 시설의 흔적을 보여주는 장소다. 1939조선물산주식회사가 운영하던 락락직공장이 이곳에 세워졌는데, 이는 신흥방직보다 1년 먼저 설립된 공장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황태일이 운영하는 고려모직으로 바뀌어 고급 순모 원단을 생산했다. 현재 이곳에는 서광아침의봄 아파트와 한마음요양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답사단은 이어 어시장과 구마산 선창 일대를 걸었다. 골목 안쪽에 남아 있는 옛 선창의 흔적을 확인하고 매립지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며 이 일대의 지형 변화를 살펴보았다. 현재 어시장은 과거 바다였던 곳에 형성된 시장이다. 일본인 하사마가 1913년 매립한 대지 위에 형성되었으며, 어선들이 드나들던 선창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어시장이 발달했다. 매립지 위에 형성된 도시 구조를 보면 기존 도시 도로축과 매립지 도로축이 만나면서 삼각형 모양의 너른마당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매립 과정에서 기존 도시 구조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 남성동 일대가 매립되기 전까지 조선시대 마산포는 마산창의 세곡을 운송하던 중요한 포구였다. 당시에는 선창 네 곳이 있었고 배를 수리하거나 군선이 정박하기 위한 굴강 두 곳도 운영되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경남은행 설립지는 산업 발전이 금융기관 설립으로 이어진 사례를 보여준다. 1960~70년대 한일합섬(1970), 수출자유구역(1969), 한국철강(1965) 등 산업이 발달하면서 지역 경제를 뒷받침할 금융기관의 필요성이 커졌다. 그 결과 경남은행이 설립되었으며 1970년대 초 창동에 본점이 자리했다. 이후 본점은 석전동으로 이전했고, 창동에 있던 최초 본점 건물은 철거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새 건물이 세워져 청소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답사단은 이어 창동 네거리를 지나며 오래된 상점들의 흔적을 살펴보았다.황금당이라는 상호는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한성당 건재약방한성예식장이 있던 1960년대 3층 건물도 여전히 남아 있어 당시 창동 상권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다음으로 방문한 부림시장은 마산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1924년 공설시장으로 조성되었으며 이후 부정시장을 거쳐 부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해방 이후에는 진해에서 일본 물건을 가져와 팔거나,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 물자를 거래하며 없는 것이 없는 시장으로 알려졌다. 1973년과 1976년 두 차례 큰 화재가 발생했으며, 화재 이후 복원 과정에서 1970년 형무소 이전으로 생긴 빈터에 난전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산업화의 길 마지막 지점은 몽고간장 공장이었다. 1905년 일본인 야마다 노브스키가 마산 최초의 일본 간장 공장인 산본장유를 세운 것이 시작이다. 해방 이후 회사의 관리권이 한국인에게 넘어가면서 몽고간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는 지금도 운영되는 기업 가운데 마산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화의 길 1차 답사에서 이어진 역사 현장

 

민주화의 길 답사는 1차 답사에서 이미 일부 구간을 먼저 걸었다. 27일 진행된 1차 답사에서는 3·15의거 발원지 및 기념관, 불종거리, 부마민주항쟁 발원지, 남성동 파출소(옛 마산동파출소), 남성동성당 등을 방문했다.

 

이어 이번 2차 답사에서는 3·15 의거의 주요 현장을 중심으로 민주화의 길을 계속 걸었다. 먼저 3·15의거 기념탑을 찾았다. 이 기념탑은 당시 시위가 가장 활발했던 장소에 세워진 기념 공간이다. 기념탑의 위치는 마산시립박물관 뒤, 마산고 뒤, 용마고 뒤 등 여러 후보지가 논의되었지만 실제 시위 현장을 고려해 현재 위치로 결정되었다. 12m 높이의 기념탑과 함께 여고생, 대학생, 시민을 형상화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어 무학초등학교 담장에서는 당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총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60315일 마산에서 벌어진 시위는 아시아 최초의 유혈 민주화 시위로 기록된다.

 

다음으로 찾은 옛 도립의료원 터3·15 의거의 중요한 역사 현장이다. 당시 병원은 현재의 주차장 위치에 있었고 현재 병원 건물이 있는 자리에는 롯데 크리스탈 호텔이 있었다. 3·15 시위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이곳으로 옮겨졌고, 1960411일 바다에서 발견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 역시 이곳 영안실에 안치되었다. 시신을 확인한 시민들의 분노는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고 이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답사단은 이어 3·15대로를 걸었다. 이 도로는 과거 중앙대로였으나 2005년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3·15대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옛 마산시청 강당을 찾았다. 이곳은 1960년 부정선거 개표가 이루어졌던 장소로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답사의 마지막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였다. 김주열 열사는 3·15 시위 과정에서 숨졌고 경찰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그러나 1960411일 세 번째 개선주 앞바다에서 시신이 떠올랐다. 당시 부산일보 마산지부 허종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 AP통신을 통해 세계에 보도되면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는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답사는 마산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흔적을 도시 공간 속에서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공장과 시장, 거리와 광장에는 마산의 경제 성장과 시민들의 삶,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러한 현장 기록은 앞으로 마산의 길을 시민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역사 탐방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마산YMCA 역사와문화 동아리는 316일 정기 모임을 통해 1·2차에 걸쳐 진행된 마산의 길답사에 대한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답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들을 정리하고 코스 구성과 해설 방식 등 향후 준비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또한 시민들에게 공개할 시점과 운영 방식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산의 길은 단순한 답사를 넘어 마산의 역사와 기억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의미 있는 역사 탐방 프로그램으로 발전해 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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