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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활동

천상병, 권환, 이선관의 흔적을 찾아서

by 조정림 2025. 11. 5.

작성: 김태석(역사와문화 회장, 시민사업위원, 이사)

 

마산YMCA 동아리 ‘역사와문화’는 2025년 10월 11일(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창원 문인 천상병·권환·이선관의 흔적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답사에는 김태석 회장을 비롯해 하은영, 허정도, 심지현, 심우진, 김봉임 회원 등 6명이 참여했으며, 허정도 원로회원이 인솔과 해설을 맡았습니다.

2024년 7월에 창립한 ‘역사와문화’는 매월 창원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발표하며, 반기마다 한 번씩 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은 20명으로, 30대에서 70대까지 YMCA의 다양한 세대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자산솔밭공원 – 시인 천상병의 발자취

답사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자산솔밭공원에서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마산중학교와 마산고등학교 위쪽에 위치한 근린공원으로, 과거 경주이씨 문중의 선대 묘가 안장되어 있던 곳을 마산시가 매입해 조성했습니다. 무학산 자락의 숲으로, 시인 천상병이 학창시절 사색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천상병은 1930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마산으로 돌아와 5년제 마산공립중학교 2학년에 편입했습니다. 당시 마산공립중학교는 일본인과 한국 학생이 함께 다니던 학교로, 1936년 설립된 뒤 1946년 6년제로 개편되고, 1955년 현재의 마산중학교로 교명을 바꾸었습니다.

한국어에 서툴렀던 천상병은 조용한 학생이었지만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었고, 자산솔밭에서 사색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의 시 〈강물〉은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천상병은 솔밭 인근 공동묘지에서 장례를 치르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인간의 존재론적 비애를 서정적으로 담아냈으며, 이 작품을 알아본 김춘수 교사가 《문예》에 게재되도록 도왔습니다.

회원들은 현장에서 이 시를 낭독하며, 동백림 사건으로 고통받았으나 〈귀천〉을 남긴 천재 시인 천상병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완월동 – 시인 권환의 흔적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겨 완월동의 권환 시인 생가 터를 찾았습니다. 천상병이 마산공립중학교 4학년이던 1948년, 권환은 학교 인근 초가 단칸방으로 이사했습니다. 지금은 콘크리트 단층주택으로 바뀌어 찾아내기 어려운 곳이지만, 허정도 회원의 안내 덕분에 그 자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권환이 살던 집에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였다고 합니다. 카프 동지 임화가 월북하던 시기, 권환은 고향으로 돌아와 교토제국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이지만 늘 역사의 그늘에 서 있던 삶을 살았습니다.

1952년 마산고등학교 독일어 강사로 재직했지만, 결핵이 심해 밤마다 각혈을 하면 아내가 들쳐 업고 완월동 내리막길을 달려 마산병원(현 마산의료원)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는 1954년 7월 30일 완월동 초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은영 회원이 시 〈집〉을 낭독하며 고인의 삶을 기렸습니다.

노비산 – 문학과 역사, 그리고 마산문학관

완월동 언덕을 따라 내려가면 ‘심온길’이 나타납니다. 천상병의 호 ‘심온’을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좌측으로는 마산고등학교 담장, 우측으로는 완월초등학교 울타리를 따라 자산동으로 이어집니다.

답사단은 3·15 의거 희생자인 김영준·김용실 열사 추모공원을 들른 뒤, 마산중학교를 지나 시내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낮 기온이 28도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임항선 그린웨이로 이동했습니다.

임항선 그린웨이는 마산역에서 1부두까지 이어지는 옛 화물철도로, 현재는 시민 산책로로 변모했습니다. 마산YMCA가 조성 과정에 참여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린웨이를 따라 성호초등학교(1901년 개교)와 옛 ‘후미끼리’(철도 건널목)를 지나 노비산으로 향했습니다.

노비산은 마산 한복판의 낮은 언덕으로, 과거 창신학교가 자리했던 곳입니다. 초대 교장은 마산포교회의 앤드류 애덤슨(손안로)이었습니다. 시조시인 이은상은 이 학교 출신으로, 1960~70년대 문화권력으로 자리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노비산 정상에서 회원들은 이은상의 시조에 곡을 입힌 가곡 〈옛 동산에 올라〉를 감상하며, ‘노산’이라는 그의 호가 ‘노비산’에서 유래했음을 되새겼습니다. 마산문학관은 노비산 정상에 2005년 개관했습니다. 당초 이은상 문학관으로 명명될 예정이었으나, 시민사회의 반발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부에는 마산 문학의 흐름과 인물들의 자료가 전시돼 있지만, 여전히 세련되지 못한 콘텐츠와 적은 방문객 수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역사와문화’ 동아리는 이미 정기모임을 통해 지하련, 이원수, 김달진, 권환, 이선관, 천상병 등의 문학인을 연구해온 바 있습니다. 회원들은 문학관이 중심이 되어 창원 문인 연구와 시민 답사를 활성화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오동동과 창동 – 천상병과 이선관의 집을 찾아

노비산에서 내려온 일행은 옛 마산구락부 운동장이 있던 6호 광장을 지나 오동동 공영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해방 직후 귀환한 천상병 가족은 이곳 오동동 마산우시장 옆 단칸방에 살았습니다. 천상병은 이곳에서 마산중학교까지 매일 2km를 걸어 다녔습니다.

답사단은 불종거리를 지나 창동 사거리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천상병이 즐겨 찾던 서점이 있던 곳으로, 그는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즐겨 들었다고 합니다. 진해에서 온 심지현 회원은 불종거리, 마산형무소 터, 부마민주항쟁 동판 등에 많은 질문을 던지며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후 창동예술촌 안에 있는 이선관 시인의 옛집(현 영록서점)을 찾았습니다. 이선관은 뇌성마비로 신체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1969년 시집 『기형의 노래』를 통해 강한 존재 의식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씨알의 소리』에 「애국자」와 「헌법 제1조」를 발표하며 유신독재를 풍자했고, 1975년 시 〈독수대〉를 통해 마산만 오염을 비판했습니다. 이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생태시의 효시로 평가됩니다.

허정도 회원은 현장에서 그의 시 〈내가 사는 방〉(1988)을 낭송하며 이선관의 삶을 회상했습니다. 10월 25일은 이선관 타계 20주기로, 마산의 뜻있는 인사들이 기념사업회를 결성해 추모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답사를 마치며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번 〈창원 문인 답사〉는 천상병, 권환, 이선관 세 문인의 삶과 문학을 따라 걷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뒤풀이 자리에서 이번 답사의 의미를 나누며, 앞으로 다른 문인들의 흔적도 발굴해 시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가을 햇살 속에 이어진 답사는, 문학이 남긴 향기와 도시의 기억을 다시금 일깨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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