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김정하(시민사업위원장/ 이사)

책: 헤비(키에스 레이먼, 2025)
‘헤비’는 한 사람이 자신의 몸과 말, 그리고 사랑받고자 했던 마음을 정직하게 꺼내 보이는 이야기다. 저자 키에스 레이먼은 흑인 남성으로 살아오며 겪은 차별과 폭력, 가난과 불안을 ‘비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으로 기록한다. 이 책에서 ‘헤비(Heavy)’는 단순히 체중을 뜻하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 기대, 통제, 그리고 사랑의 조건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는지를 상징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어머니와의 관계다. 사랑하지만 상처 주고, 보호하려 했지만 통제하게 되었던 그 관계는 인권이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이의 삶을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이 폭력이 될 때, 우리는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가 침해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헤비’는 타인을 판단하거나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한 인간이 자기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을 들여다봐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질문받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몸과 삶에 너무 쉽게 기준을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가, 공존은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헤비’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평등하고 존엄한 관계를 다시 상상하게 하는 책이다.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감독: 바딤 피얼먼, 2020년작)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은 러시아, 독일, 벨라루스 합작으로 제작된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12월에 개봉했던 작품이다. 페르시아어가 낯설게 느껴져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언어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페르시아어를 쓰는 주요 국가는 이란, 아프가니스탄(다리어), 타지키스탄(타지크어)이며, 이 외에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바레인, 러시아 다게스탄 지역 등 중동 및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사용된다고 한다. 페르시아어(파르시어)의 총 사용 인구는 약 1억 2천6백만 명 이상이며, 이 중 제1언어(모국어) 사용자가 약 9천만 명(2023~2024년 기준)이 넘고, 제2언어 사용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다는 정보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해당 영화가 세상에 나온 모티브는 볼프강 콜하세(Wolfgang Kohlhaase)의 단편 소설 ‘언어의 발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영화는 총과 폭력이 지배하던 시대 한복판에서, 인간을 끝까지 인간이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한 유대인 청년은 우연히 “나는 페르시아어를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말 한마디로 살아남을 기회를 얻는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만들어 하루에 하나씩 단어를 외워가며, 잔혹한 권력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낸다. 이 영화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영웅적인 저항이나 극적인 탈출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르고, 말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폭력은 사람을 숫자로 만들지만, 언어는 다시 사람의 얼굴을 되돌려 놓는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평화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타인의 말을 지우지 않고 귀 기울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혐오와 배제가 일상처럼 반복되는 지금, 이 영화는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작은 출발점이 무엇인지 조용히 보여준다.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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