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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

모두가 편한 길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by 오승민 2026. 1. 5.

 

창원시 평화인권센터는 2025년 진해구 이동권 모니터링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모니터링은 인권교육연구회 ‘부엉이’ 회원들과 디딤장애인성인권지원센터, 진해장애인복지관이 연대하여 기획부터 현장 모니터링, 토론회까지 함께 마무리하였습니다. 아래 글은 이동권 모니터링에 참여한 김묘근 회원의 글입니다.

 

 

모두의 길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두의 관심과 연결이  필요하다.

(장애인 이동권 조사에 직접 참여하며 길 위에서 새롭게 깨어난 이동 감수성과 안전 감수성 이야기)

김묘근 (창원시평화인권센터 활동회원)

 

 

 

우리는 매일 길 위를 걷는다. 어른도 아이도, 빠른 사람도 느린 사람도,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 길 위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도, 유아차를 밀고 가는 부모도, 조심스레 발을 옮기는 어르신도,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이동권 실태조사에 참여하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지나쳤던 그 길이 모두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길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사람의 존엄과 하루가 오가는 곳이며, 모든 사람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는 장소이다. 그렇다면 “모두의 길”은 과연 어떤 길이어야 할까?

 

 

1. 모두의 길이란 무엇인가 — 새로운 정의

모두의 길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걷는 길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넓고 반듯하게 정비된 길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모두의 길이란,

나이·성별·장애 여부·이동 수단과 관계없이 누구나 멈춤 없이, 두려움 없이, 존중받으며 자신의 속도대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이다.

이 정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를 포함한다.

접근성: 단차, , 좁은 통로, 경사로 부재 등으로 배제되지 않는 길

안전성: 사고 위험이 최소화된 길

동등성: 장애·비장애, 노인·청년·아이 모두가 똑같이 이용할 수 있는 길

존엄성: 도움을 요청해야만 이용 가능한 길이 아니라 스스로 이동 가능한 길

선택의 자유: 원하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이동의 자유

심리적 안전: 걱정·위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

길은 결국 사람이 설계하고 사람이 이용한다.
따라서 어떤 길이 모두의 길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을 중심에 둔 관점, 그리고 인권적 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2. 조사 준비 과정 — 길을 보기 전에 먼저 배워야 했던 것들

실태조사는 단순히 현장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문제를 찾는 일이 아니었다. 지역을 섭외하고, 조사 지점을 선정하며, 어떤 위험 요소를 세밀하게 살필지 회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단차, 경사, 보도블록 파손, 시각장애인 유도선 단절, 횡단보도 출입구 폭, 볼라드, 도로와 인도의 연결, 횡단보도 시각장애인용 음향 보행신호기, 대중교통 승하차 동선 그리고 조사자들은 사전 교육을 통해 이동 취약계층이 겪는 실제 어려움을 배우고, 길을 보는 감수성을 연마했다. 그때 느꼈다.

 

 

길을 보는 눈은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관심과 배움이 있을 때 비로소 열린다.

 

 

좌) 시각장애인이 점자블록을 따라 이동할 경우, 동선 위에 나무가 있어 충돌 위험이 발생한다. 우) 인도의 보도블록이 파손되어 있어 휠체어 이용자는 물론 비장애인도 걸려 넘어질 위험이 있는 상태이다.

 

 

 

3.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 — 위험은 늘 있었지만, 우리는 몰랐다

전동휠체어 이용자와 처음 함께 걷던 날, 나는 걷기가 아니라 이동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끊어진 인도

한참 이어지던 인도가 갑자기 사라지고 차량 도로와 곧바로 연결되는 곳. 함께 현장 조사에 참여한 전동휠체어를 탄 그분은 조용히 방향을 틀어 익숙한 듯 도로로 내려섰지만 나는 그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가파른 복합 경사로

보기엔 평범했지만 전동휠체어는 순간적으로 기울어 전복될 뻔했다. 경사는 수치가 아니라 곧 생존의 문제였다.

 

유도선 위의 일상의 짐들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선 위에 벤치나 판매대가 놓여 있었다. 인도 위의 끊어진 유도선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편의였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동을 차단하는 벽이었다.

 

일상 속 위험들

유아차 바퀴가 틈에 끼어 멈춘 엄마 자전거도로 부재로 차량 사이를 지나는 학생 경사로를 오르지 못해 도로로 내려선 어르신 빗물 고인 미끄러운 보도 우리는 이 장면들을 너무 오래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불안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위험이었다.

 

 

4. 식당 앞에서 멈춰선 순간 —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현실

조사 구간 마무리 후 조사자 팀들은 함께 식사를 위해 식당가로 향했다. 그 길은 평범했지만,

그 평범함이 문제였다. 좁은 출입구, 몇 개의 계단, 경사판 부재. 전동휠체어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떤 사장님은 말씀하시면 경사판 놓아드릴게요라고 했지만 안내가 미리 적혀 있었다면...“전동휠체어를 타고늘 갈 수 없어 가보지 못한 맛집들이 많아요.괜찮아요라고 하는 장애인 조사자는 여러 식당을 지나치는 허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선택의 자유누군가에게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자유임을 깨달았다.

 

 

5. 저상버스—장애인·비장애인 모두에게 편리하지만, 모두에게 편리하지는 않은 현실

저상버스는 한 도시의 접근성을 상징하는 장치다. 비장애인에게도 큰 편의성을 제공한다. 유아차 이용자에게는 탑승이 쉽고 노인에게는 계단 부담이 없고 학생과 보호자들에게는 안전한 승하차가 가능하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저상버스는 여전히 실질적 이용이 어려운 교통수단이었다. 손을 흔들어 여기 있음을 알려야 겨우 탑승이 가능하였다. 어떤 기사님은 직접 내려와 경사판을 펴며 도왔고, 그 친절은 기다림과 탈수 있을까?’를 걱정했던 긴장을 녹였다.

하지만 또 다른 기사님은 탑승 승객이 많아 어렵습니다. 다음 차를 이용하세요.”라고 말했고,
그 말 한마디는 이동권을 사실상 제한했다.

 

저상버스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탈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좌) 인도가 단절되어 모든 보행자가 차도로 내려가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중) 횡단 경사로의 기울기가 심해 유아차나 휠체어가 통과하기 어렵다. 우) 인도에 보도블록이 빠져 파인 구간이 있어, 유아차나 휠체어가 통과할 때 바퀴가 빠질 위험이 있다.

 

 

6. 볼라드—안전을 위해 설치된 것이 오히려 장애가 될 때

현장에서 또 하나 크게 느낀 장면은 볼라드(차량 진입 방지 기둥)의 역할 상실과 방치 상태였다. 어떤 구간에서는 볼라드가 지나치게 촘촘하게 설치되어 전동휠체어나 유아차, 혹은 보행이 느린 사람들의 이동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반대로 불법주정차가 잦고 인도로 차량이 침범하는 진짜 위험한 구간에서는 정작 볼라드가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야간에는 문제가 더 컸다. 반사띠가 닳아 식별이 어려운 볼라드, 기울어진 채 위험요소로 변한 볼라드, 파손된 채 쓰레기통처럼 사용되는 볼라드, 볼라드는 본래 보행자를 지키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관리와 유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을 만드는 존재가 된다. 안전은 설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에서 완성된다.

 

 

7. 조사자들 사이에서도 달랐던 감수성 — 위험은 보려고 해야 보인다

같은 장소를 두 팀이 교차 체크 해가며 조사했을 때 발견하는 문제는 제각각이었다. 한 팀은 단차를 발견했고, 다른 팀은 경사와 시야 방해물을 기록했다. 어떤 팀은 보도 파손을 문제 삼았고, 또 어떤 팀은 시각장애인용 음향보행신호기의 부재를 가장 큰 위험으로 느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위의 위험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지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8. 길은 만들고 난 뒤가 아니라, 만들기 전에 함께해야 한다

많은 길과 시설은 완공 이후에야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정작 그 길을 사용할 사람들의 목소리가 처음부터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을 설계할 때 실제로 그 길을 걷고, 밀고, 타고, 서야 하는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르신은 어디에서 쉬어야 할까?

유아차, 쌍둥이용 유아차는 어느 지점에서 불편하고 흔들릴까?

자전거를 탄 학생들은 어떻게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까?

시각장애인은 어떤 안전과 안내가 필요할까?

장애인용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는 어떤 폭과 경사가 필요할까?

이 질문들이 설계 단계부터 반영될 때 불편함도, 사고도 줄어든다. 길은 결국 사람의 경험으로 완성되는 공간이다.

 

9. 이동감수성과 안전감수성 — 서로를 이해하는 기본 감각

이동감수성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이동하는 사람을 이해해 보는 감각이다.

안전감수성은 보이지 않는 위험까지도 생각해 보는 마음이다.

두 감수성은 거창한 덕목이 아니라 같은 도시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다. 일상 속 작은 멈춤, 작은 관심, 작은 질문은 길을 완전히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10. 우리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실천들

변화는 큰 행동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따뜻한 마음 하나에서 시작된다.

길 위의 이상함을 발견하면 잠시 멈춰 바라보기

생활불편 제보하기 출입구 앞 물건 정리해 두기

유아차·휠체어 승하차 기다려 주기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안내문 붙이기

아이와 함께 모두의 길을 이야기하기

작은 행동들은 누군가의 하루를 안전하게,
그리고 존중받는 하루로 바꾸는 힘이 있다.

우리 모두가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변화 실천리스트 안내

변화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의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준다.

 

1) “이상하다느끼면 사진 찍어 제보하기

단차·파손·경사 문제를 발견하면 사진 한 장으로 생활불편 제보하기. 5초면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실천.

 

2) 유아차·휠체어·어르신에게 잠시 양보하기

횡단보도·버스·출입구에서 한 박자만 천천히 움직여주는 마음.

 

3) 가게·집 앞 출입구 동선 정리하기

의자, 박스, 홍보물 등 조금만 옆으로 치우기. 누구나 즉시 할 수 있는 환대의 행동.

 

4)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안내문 붙이기

강요가 아닌 존중의 표현. 한 문장으로 안전감수성 높이기.

 

5) 아이와 1분 대화하기

오늘 길에서 누가 불편했을까?” 감수성은 작고 짧은 대화에서 자란다.

 

6) 야간에 보이지 않는 볼라드·파손 시설물 발견 시 제보

위치만 알려줘도 충분하다. 안전시설은 설치보다 관리가 중요하다.

 

7) 오늘 걷는 길에서 한 지점만 다시 보기

이 길은 정말 모두에게 괜찮을까?” 작은 질문 하나가 시선을 바꾼다.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모두에게 열린 길을 만든다

부담 없는 행동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안전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존중받는 하루가 되고
우리 사회에는 이동감수성과 안전감수성이 쌓인다.

 

 

“모두의 길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 가는 길이다.”


모두의 길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길이 아니다. 누군가 먼저 문제를 보고, 누군가 작은 관심을 갖고, 누군가 불편을 말하고, 누군가 바꾸기 위해 손을 내밀 때 비로소 길은 조금씩 모두의 길이 되어간다. 우리는 모두 존재만으로 소중하다. 그 소중함이 길 위에서도 존중받을 때 비로소 우리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모두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제보: 창원시 평화인권센터 T. 055-251-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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