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제110회 아침논단을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논단은 ‘창원에서 하와이까지, 묘비로 만난 독립운동 이야기’를 주제로, 창원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이자 시민사업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주용 위원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김주용 위원은 자신을 “땅을 파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고고학 분야에 몸담은 지 25년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집요한 탐구심과 꾸준한 열정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그러한 자세가 하와이의 잊힌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일로 이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묘비 없는 독립운동가들을 찾아서
김 위원은 하와이 현지에서 묘비조차 없이 묻힌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고 기록하는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올해만 해도 하와이 전역에서 11기의 독립운동가 묘소를 새롭게 확인하였으며, 그 가운데에는 창원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인 박금우, 김공도 지사의 묘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눈시울을 붉히는 참석자들도 많았습니다. 단순한 고고학적 조사가 아니라, 지워진 이름을 역사 속으로 다시 불러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참석자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김 위원은 “처음에는 이민자의 삶을 보기 위해 하와이를 찾았지만, 그 여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록되지 못한 조국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기억하는 작업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아침논단은 묻힌 이름들을 다시 기억하고, 지역사와 독립운동사를 잇는 귀중한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와이 이민 사회를 주도했던 마산 여성들
평생교육 실습생 박준헌
2001년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 배우가 맡은 역할의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니가 가라 하와이!’가 먼저 떠오른다. 당시 이 대사는 패러디되어 여러 분야에 활용되었다. 감독과 작가가 알고서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민족의 해방을 위해 애쓰고 힘쓰며, 생존을 위해 하와이로 향했던 사람 중 경남 사람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산의 여성들을 대표주자로 볼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2025년 8월 19일 오전 7시, 마산YMCA 3층 청년관에서 진행한 광복 80주년 기념 110회 아침논단 ‘창원 사람, 왜 하와이로 갔을까?’ 라는 제목으로 국립창원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인 김주용 교수가 강의를 진행했다. 자신이 고고학자로서 연대를 세기(century)와 같은 큰 단위로 나누다가 하와이 이민사를 하면서 연, 월, 일, 시, 분, 초 단위로 나누는 세밀한 작업이 힘들었다는 언급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의 연구는 이민자들의 묘비를 살피며 시작했다. 옛말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이 있듯, 묘비에는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이 오롯이 드러나 있으며, 고인이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일 테다. 발표 내용을 정리하며 그 흔적을 따라가 보려 한다.
기록상 하와이 이민의 시작은 1902년 12월 22일이다. 이민은 외세의 침략과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한 국내 요인과 하와이 노동시장에서 일본인을 대체할 인력을 구하고 있다는 상황이 맞물려 시작됐다. 당시 하와이에는 일본, 중국, 노르웨이, 포르투갈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민 온 이민자들이 포진해 있어 새롭게 이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1905년까지 총 65회에 걸쳐 7,400여 명의 조선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이 이민 사회가 잘 정착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진신부였다. 결혼 상대의 사진 한 장만 받아서 결혼을 위해 먼 길을 홀로 나섰던 용감한 여성들을 우리는 사진신부라 부른다.
사진신부의 7~80%는 경상남도 출신이며, 그 중심에는 마산의 세 여성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박금우, 김공도, 김화진으로 마산에서 윗마을 아랫마을에 살던 이웃이면서 친구이고 창신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박금우는 여성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전후조선구제위원회를 결성, 국내 동포들을 위해 구호 물품을 보냈다. 김공도는 영남부인실업동맹, 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 동포 사회의 단결을 위해 헌신했다. 김화진은 1914년 일제가 마산포에서 토지를 강탈하고 주민들을 학살한 일에 분노, 일제의 만행을 통렬히 규탄했다.
조선인 이민사회는 그들의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도 민족해방을 위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일에 힘을 쏟으며, 개인의 노력으로만 그치지 않고 국내 독립운동가들과도 활발한 연계를 위해 힘을 쏟았다. 그 가운데 큰 일을 한 것 역시 사진신부들이다.
하와이 이민자들은 혹독한 타지 생활 중에서도 힘을 쏟아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힘을 쏟았지만 해방을 이룬 지금, 우리는 그들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향만리에 방치된 그들의 묘비,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가자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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