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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

경의 정신, 전통 지혜 따라 걸은 산청

by 조정림 2025. 10. 1.

작성: 심우진 (시민사업위원회 위원)

 

마산YMCA 6회 시민대학 '산청' 답사기


2025년 9월 6일 토요일 마산 YMCA가 주관하는 제6회 시민대학 ‘역사와 과학의 만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산청 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9시 3.15아트센터에서 출발 예정이었으나, 부지런한 참가자들의 협조 덕으로 10분 일찍 출발했습니다. 조정림 국장님의 소개로 시민사업위원회 김정하 위원장님의 환영 인사와 함께 버스는 산청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답사에는 특별손님이 오셨는데, 마산문화원 영화자료관장이며 고전영화해설사이신 이승기님이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고령(87세)에도 불구하고 현장 답사에 참여하시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번 답사는 남사예담촌, 유림독립기념관, 남명 조식 선생의 산천재와 기념관, 덕천서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원사 계곡 걷기까지 이어지는 풍성한 일정이었습니다.

 



옛 담이 아름다운 남사예담촌

첫 답사지는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남사예담촌이었습니다.
이번 답사의 안내는 노창훈 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님이 맡아주셨습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오래된 담장이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옛 담이 아름다운 마을’처럼 마을 전체가 아름다운 돌담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흙과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담들은 각기 다른 모양과 질감을 뽐내며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돌담 위에 핀 능소화 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해설사님의 소개로 부부회화나무를 지나면서 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답사기를 쓰면서 부부회화나무가 산림청 주관 ‘2025 올해의 나무’에 선정됐다는 기사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회화나무를 지나서 이씨고가, 사효재, 최씨고가를 둘러보았습니다. 해설사님이 해박한 지식으로 알기 쉽게 한옥 고가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간간이 나오는 유머와 위트가 재미있었습니다. 지난주에 들었던 송지환 강사의 ‘한옥의 숨겨진 과학’ 내용을 떠올리면서 현장에서 직접 한옥을 접하니 우리 한옥이 새삼 새롭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림의 지조를 만난 유림독립기념관

이어서 인근에 있는 유림독립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들어서니 박의동 마을해설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파리장서' 동판과 한글 번역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파리장서'는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면우 곽종석 선생과 유림 대표 137명이 서명한 대한민국 독립을 요구한 독립청원서입니다. 전시실에는 당시 영남 유림들의 주요 활동 상황과 후대의 포상 및 서훈 등에 대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청원서를 심산 김창숙 선생이 국외로 망명하여 전했는데, 일제의 치밀한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그는 여러 번 정독하여 외운 후 한 줄 한 줄 오려내어 짚신으로 꼬아 짚신 날에 감추었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 책을 덮고 일제에 저항했던 유림들의 지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태극기 변천사를 볼 수 있는 태극기 스탬프 찍기 체험에도 참여했습니다. 기념관을 나서면서 참가자 일행은 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 정신을 따라

오전 답사를 마친 후 참가자들은 ‘마실정’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즐겼습니다. 제철 식재료로 만든 돌솥밥 한정식은 소박하지만 정갈했고, 함께 식사하며 참가자들은 서로 감상을 나누며 한층 더 가까워졌습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오후 일정인 남명 조식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남명기념관이었습니다. 안승필 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님의 안내로 기념관 앞 은행나무 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명기념관은 남명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시관이었습니다. 전시실에는 그의 친필 자료, 학문과 실천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한 학문적 연구가 아니라, 그의 삶이 어떻게 ‘실천적 지식인’의 모범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경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그의 철학과 당시의 사회상을 담은 다양한 전시물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경(敬)'은 내면의 수양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는 경건함을, '의(義)'는 외적인 실천을 통해 정의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학문만을 위한 학문을 경계하고,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고 보았습니다.


기념관을 나와 덕천강가에 있는 산천재를 찾았습니다. 소박하고 단정한 건물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선비의 절제와 기개가 배어 있었습니다. 대청에 앉아 사방의 산세를 바라보니 지리산 천왕봉이 손이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으며 조식 선생이 왜 이곳을 학문의 터전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학문이 단순한 사유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반드시 도덕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이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산천재 앞에 있는 매화나무 ‘남명매’의 생육 상태가 좋지 않은 점이었습니다. 지자체의 좀 더 면밀한 관심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이후 덕천서원을 찾았습니다. 덕천서원은 남명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조선시대 유교적 학문 공간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서원의 단정한 건물과 고즈넉한 마당에 서 있으니, 이곳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학문과 정신을 전하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서원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이번 답사가 단순한 견학이 아니라 남명 선생의 정신세계를 만나는 배움의 시간임을 확인했습니다.

 



지리산 품에서 마무리한 대원사 계곡 걷기

마지막 일정은 대원사 계곡 걷기였습니다.
대원사 주차장에서 대원사 절까지 왕복 1시간 정도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으며, 오전에 보았던 역사적인 흔적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리산의 맑은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답사를 통해 얻은 배움과 감동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찰 마당의 푸르른 파초(바나나, 꽃말 ‘탈속’)를 배경으로 마지막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참가자들은 “처음 참여했는데 소중한 답사였다”, “언니 소개로 함께했는데 즐거운 하루였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하고 싶다”는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전통과 지혜를 오늘에 되살리며

이번 답사는 단순한 문화재 탐방이 아니었습니다. 남사예담촌의 고즈넉한 담벼락을 거닐며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고,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를 찾아 그의 '경의' 사상을 되새기며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산 YMCA 시민대학 프로그램을 통해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바쁜 일상에 지쳐 있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삶의 의미를 되찾고 싶다면 산청을 찾아보기를 추천합니다.
과거의 전통과 지혜를 오늘의 삶에 되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산청 답사의 가장 큰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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