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문화 주관으로 '원동무역 사옥 및 창동 근대역사 탐방' 다녀오다.
작성: 김봉임 (청소년사업위원, 역사와문화 회원)
4월 5일 토요일. 궂은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를 한잔 먹어야 하는 날이었지만 아쉽게도 못마셨다. 대신, 10여 명의 마산 YMCA회원들과 창동 근대역사 탐방길에 나섰다. 오동동 문화광장부터 김명시 장군 생가터까지 24개의 탐방 코스. 그 모든 걸 담기엔 지면이 부족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들만 뽑아 요약했다. (물론 빠진 것도 꽤 있다.)
먼저, 오동동 인권 평화 자주 다짐비. 마산 오동동 소녀상은 다른 지역의 소녀상과 다르다는 걸 알았는가? 몰랐다면 지금부터 주목! 다른 지역 소녀상은 대부분 앉아있지만 마산의 소녀상은 서 있다. 결연한 표정과 당당한 포스에서 마산 소녀의 깡다구가 느껴진다. 연말이면 타종행사를 하는 불종거리. 지금까지 새해를 알리는 종으로 알았는가? 알았다면 큰일이다. 불종은 119가 없던 옛날에 불이 나면 동네방네 화재 소식을 알렸던 종이다. 일제강점기 최고 번화가였던 불종거리. 시인 백석이 불종거리를 세 번이나 지나간 사실을 아는가? 평북 정주가 고향인 백석이 마산에 올 리가 없다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가? 그렇다면 고개를 똑바로 하시라. 백석은 불종거리를 세 번 지나갔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구마산역에서 내려 불종거리를 지나 마산 선창에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갔다. 연인 박경련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야말로 연인을 향한 백석의 마음이 불타는 불종거리다. 1951년 개점한 마산의 대표적인 노포 불로식당. 불로가 어디서 유래한 말인지 아는가? 불로는 프롤레탈리아 한국식 발음이다. 프롤레탈리아에서 프로식당으로 프로식당에서 부로식당을 거쳐 불로식당이 되었다.
1913년 일제가 지은 마산 형무소. 독립운동가부터 해방 이후 좌익인사까지 수감되었던 이곳에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도 수감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색깔론으로 공격받을 때 “제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라는 말로 전국의 수많은 아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등장했던 그 장인이 맞다. 마산YMCA 시민위원회 단골집 우정아구찜의 현관에 있는 칠언율시를 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부터 자세히 보라. 마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허당 명도석 선생의 작품이다. 해방 이후 마산 건국준비위원장까지 지낸 명도석 선생과 ‘꽃’의 시인 김춘수와 관계를 아는가? 선생과 제자? 아니다. 장인과 사위다. 교육운동가로 알려진 옥기환 선생이 마산 어시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만든 마산 노동야학. 전국의 대부분 노동야학이 1920년대에 만들어진 것에 비해 마산 노동야학은 1906년에 만들어졌다. 시대를 앞서간 마산이다.
1990년대까지 경남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이름난 시민극장. 한일합병 전에는 근대 마산 시민들의 토론의 장이었던 민의소가 있던 곳이다. 일제에 의해 민의소가 사라지고 해방 이후 이름을 바꾼 시민극장. 여기에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이 그림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는가? 놀랐다면 지금부터는 더 놀라운 얘기를 해주겠다. 창동 북경반점을 아는가? 자장면 맛을 안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일제강점기 북경반점 자리는 경남은행 마산지점이 있었던 곳이다. 우리가 아는 지금의 경남은행이 아니다. 양산에 사는 민족정신이 강한 윤씨 집안이 세운 금융기관으로 한국인들에게 돈을 싸게 빌려주던 곳이다. 의령과 마산에 지점을 두었는데,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에 다녔던 엘리트 윤현진이라는 사람이 마산지점장을 지냈다. 윤현진이라는 이름이 낯이 익는가? 맞다.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을 지낸 독립지사다. 1918년 경남은행 마산지점장으로 근무하는 중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망명했다. 최근 친필 편지글을 비롯한 유품 등 14점이 경남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경남 최초 한국인 병원 삼성병원 김형철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19년 마산의 3.1운동으로 불리는 삼진의거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다친 수십명의 한국인들을 치료한 의사다. 일본인이 쏜 총에 맞아 8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지만 일본인 병원으로 갈 수 없는 노릇. 그때 김형철 원장이 위험을 무릅쓰고 삼진의거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이런 미담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이후 무슨 선거 때만 되면 마산 사람들이 김형철 원장을 추천했다고 한다.
가는 곳곳마다 의로운 삶이 숨어 있는 창동 근대역사탐방. 허정도 이사님이 쓴 도시의 얼굴들 책 속에 나오는 한 구절. “장소를 피해 가는 삶은 없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생의 한 순간도 장소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탐방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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