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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YMCA/만나러갑니다

아구찜만 먹고와도 뭔가 큰 일을 한 것 같아!

by 이윤기 2023. 1. 4.

[시민사업위원회 이지순 위원 인터뷰]

YMCA 웹진 이달 회원 인터뷰는 시민사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이지순 위원입니다. 한지선 팀장과 제가 만났는데요. <뜻있는 도서출판>이 경남신문 1층에 있는 줄 알고 찾아갔더니 이미 2년 전에 회사를 옮겼더군요.(여전히 간판이 붙어 있어서...ㅠㅠ) 새로 옮긴 사무실은 중앙동에 있는 <하이페르> 오피스텔 9층에 있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쯤 늦게 도착한 사무실엔 출판사 대표이신 이지순 위원 혼자 계셨는데요. 창가 쪽으로 책상 두 개가 마주보고 있고, 가운데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는 단촐한 사무실이었습니다. 제가 앉은 맞은 편 벽에는 멋진 그림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차 한 잔을 내주시더니 자리에 앉아마자 질문도 하기 전에 먼저 책 이야기를 쏟아내셨습니다. 


이지순 위원은 2019년 후원 회원으로 마산YMCA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먼저 회원 활동을 희망하셔서  2020년부터 시민사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보생명 보험 여왕을 하셨던 분인데, 퇴직 이후에 '가슴뛰는 일을 찾아' 지금은 <뜻있는 도서출판> 대표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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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순:  제가 젊었을 때 책을 엄청 좋아했어요. 책을 많이 아주 많이 읽었는데요. 30대 후반까지는 소설책도 많이 읽고, 보험회사 일을 하면서 자기개발서도 엄청 많이 읽었어요. 책에 나오는대로 다 하지는 못해도 책에 무슨 내용이 나오는지는 다 알게 되었죠. 자기개발서는 유효기간이 한 달쯤 가는데, 유효기간이 지나면 약발이 떨어져요. 한 달 지나면 또 다른 자기개발서를 읽었지요. 그렇게 자기개발서를 읽으면서 스스로를 옥죄었던 것 같아요.

소설책도 공지영, 박완서 닥치는 대로 아주 많이 읽었는데, 지금 책을 만들면서 생각해보면 한 작가가 쓴 책은 한 두권 쓰고 나면 다 거기서 거기였어요. 작가 한 사람의 말투와 이야기는 지금은 괜찮은 작가도 한 권씩 내는 게 딱 맞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 ! 작년에 책을 다섯 권 내고 연말에 달력을 찍었어요. 우리 회사 달력은 다 보셨죠.?


작년에 출간한 <주역강의>, <조선의 유학자 조식>, <부디 제발>, <노경보차가 제안합니다>, <가장아름다운하동:하승철>, <지금, 여기 나를 담다> 등 6권의 책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책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다른 유명 출판사에서 나온 요즘 트렌드라는 책을 꺼내 놓고 우리 책을 너무 헐값에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지순: 내가 어느 날 H 신문 기자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는데, “우리 딸이 책 냈다”고 하면서 이 책을 보여주는 거야. 내가 책을 주르륵 넘겨봤는데 이 얇은 책이 민음사에서 나왔는데 1만 2000원이야. 내가 이 책(조선의 유학자 조식)을 2만 2000원에 내놨는데....... 내가 뭔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요즘 세대가 이런 책을 보는거야. 그런데 이 책이 교보문고 순위도 높게 나왔어. 우리 책(주역강의)은 대선 때 JTBC에 막 나오고 유명세를 탔을 때 교보 순위 7위까지 겨우 갔는데... 좀 허탈하더라고요. 


어느날 밤에 막 반성이 밀려오는거예요.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것인가? 이런 책이 팔리는 시대에 딴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실 이런 책은 원고만 있으면 며칠만 뚝딱뚝딱 작업하면 되는 책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책은 6개월 이상 작업해서 만든 책이에요

이때 사진 촬영을 위해 함께 갔던 한지선 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한지선: 이거 그때 시민사업위원회 조별 데이트할 때 저도 샀어요. 그때 이지순 위원님이 조별 데이트 멤버들에게 “다 주문해라, 지금 바로 주문해라” 하셔가지고... 책 값 보면서 깜짝 놀랐는데 다들 주문하고 확인도 받았어요. 

 

가슴뛰는 일 하면서 살고 싶었어요...지금 가슴 뛰는 일 하고 있어요


이윤기: 원래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이지순: 원래는 과외를 했어요. 과외도 하고 학원도 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서른 일곱 살에 보험회사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 신랑이 사업을 하다 망해서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된 거라. 내가 가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찾아보니까 돈을 제일 많이 벌 수 있는데가 보험회사인거야.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맨땅에 헤딩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는 여전히 보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게 아무나 선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열심히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 이었던거죠. 

이윤기: 아니 그렇다고 보험 하는 사람이 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잖아요.

이지순: 기본적으로 내가 뭐든지 열심히 하잖아요. 내가 서른 일곱 살에 보험을 시작해서 나중에 지점장까지 올라갔어요. 여자로서 지점장이 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입지전적인 일이었어요. 보험회사 일이 개인 보험하는 채널이 있고, 단체 보험 하는 채널이 있는데 단체보험 채널에서 여자 지점장은 처음이었어요. 내가 지점장 중에서도 1등하고 그랬어요. 내가 보험 여왕했던 건 모르죠?

잠깐 말을 멈추고 스마트폰 검색해서 미스코리아 시상식처럼 멋진 사진을 보여주었다. 보여준 보험여왕  사진은 한 때 교보생명 역사관에 전시도 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윤기: 보험회사는 왜 그만 두셨어요?

이지순: 좀 더 있으면 죽을 것 같더라고. 너무 힘들었어. 나는 진짜 열심히 해서 열심히 모든 삶을 살았더요. 아까 그 사진이 교보생명 역사관에 가면 있었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그 때 제 모토가 뭐였냐 하면 “조직이 원하면 따르라”였어요. 아침 일곱시에 출근해서 집에 12시에 들어가고 자고나면 다시 일곱시에 출근하고 이렇게 살았어. 아까 말했던 자기개발서 읽으면서 나를 채찍질 한거지.

 

“달려 달려 달려하고”, 그러다 어느 날 이대로 있다가 죽을 것 같다하는 생각이 들고,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과부화가 걸려서 좋게 말하면 번아웃 나쁘게 말하면 갈 때가 되버린거지. 내가 이 순간 멈추지 않으면 죽겠다 싶어서 잘 나가던 일을 그만두었지. 완전히 그만 둔 건 아니에요. 쉰 두 살에 지점장을 그만 두고 한 5년 동안 대리점을 하다가 지금은 초기 영업할 때 오랜 인연이 있는 고객들 일만 하고 있어요. 그분들이 소개해주고 하면 지금도 계약해서 넣고 있어요. 


내가 출판에 투자를 많이 했을 거잖아요. 아직까지 출판으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어요. 돈이 모자라면 요번 달에는 보험 일을 더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부족한 걸 메꾸죠

 

솔직히...출판사 안 했으면 경제적으로 훨신 여유롭게 살 수 있었어요

 

이지순: 가끔 돌아서서 생각하면 내가 이걸 왜 하지? 싶을 때가 있어요. 생각해보면 보험 일만 조금씩하고 출판사를 안 했으면 돈으로부터는 내가 진짜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왜 하지 이걸 때려치울까하고 생각해 보면 그게 안 돼요. 나는 우리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가슴이 설레요. 우리 달력 받았죠? 달력이 나와서 사람들이 너무 예쁘다 이러면 가슴이 두근두근 하고 설레요 이게 다 너무 좋아요. 내가 이렇게 가슴 설레이는 일을 하는데 이거 안 하고 돈만 벌면서 살고 TV만 보고 살면 너무 죽은 사람이 아니겠나 생각하는 거죠. 

이지순 위원은 돈이 안되지만 자기가 만든 책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하였습니다. 달력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 예쁘다고 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요즘 가슴 설레는 일이 없는데, 가슴 설레는 일을 하고 있는 이지순 위원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이윤기: 책 만들면서 늘 기쁘고 설레이기만 했습니까?

이지순: 그럴 수는 없지요.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있어요. 우리가 기획하는 책은 우리가  원고도 다듬고 디자인 만들고, 우리가 다 해서 그냥 시장에 파는 거잖아요. 물론 책임도 우리가 져야 하는거구요. 그런데 이 책은 주문 받는 책은 그렇게 못해요. 디자인도 자기들이 요구하는 대로 해 줘야 되고, 사진도 주는 걸 넣어야 되고... 내가 마음에 드는 책을 만들 수가 없는 거야.

 

사실 책 만드는 사람은 애당초 안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들 수는 없는데요. 심지어 주인이 우리가 파는 반찬에 소금 더 넣어라, 물 더 넣어라 이러면 음식이 제대로 될 수가 없잖아요. 책 주문한 사람 마음에는 들런지 몰라도 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에요. 항상 돈 받고 팔기에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자고 생각하는데, 디자인 감각이 없는 사람들 생각을 바꿀 수가 없었어요. 

이윤기: 같이 일하는 편집장은 어떤 분입니까?

이지순: 우리가 만든 책 보는 사람들은 기절하게 잘 만들었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특히 사진을 이렇게 디자인해서 넣는 책은 처음이다 이러는데요. 사실 우리 편집장이 원래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기획했어. 이상영 편집장 (책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내가 내셔널지오그래픽 했던 팀하고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특히 사진 작업을 되게 잘해요. 저자가 사진을 주면 그냥 넣는 게 아니고 이만큼 잘라서 예쁜 부분을 넣거나 더 돋보이게 하는 작업을 아주 잘하고. 주석을 달아놓은 것도 다른 책과 달라요. 출판사의 승패는 편집 능력이 80%라고 하더라구요.

 

우리 편집장이 편집 잘해요. 우리 편집장이 만든 책에 내가 만족해요. 월급 많이 줘도 내가 만족하니까 된거잖아요.(인터뷰 말미에 알게된 사실, 이 능력자 편집장님은 이지순 위원의 남동생이었습니다.) 편집장이 디자인하우스를 비롯해서 서울에서 일을 많이 했어요. 통영에 있는 남해의 봄날 대표하고도 일을 같이 했었데요. 우리 출판사를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 모르는데, 돈은 모르겠고 사람들이 알아주면 저는 너무 좋아요. 그래서 책을 만들고 있어요. 돈이 안 되는데....

이윤기: 그럼 기대보다 잘 나온 책은 없습니까?

이지순: 하동군수 자서전을 우리가 만들었어요. 하승철 군수 밴드에 가면 “책이 너무 좋아서 밴드에 가입했어요” 이런 글들이 있는거예요. 독자의 소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서 엄청 뿌듯했지요. 원고는 하군수님이 다 썼지만 자기 원고를 너무 멋지게 다듬고 편집해줘서 책이 너무 좋다고 하더라구요. 

이지순: 작년에 우리가 책을 여섯 권 냈는데,  유명한 저자들이 쓴 책이 세 권이잖아요. 주역과 조식은 제법 많이 팔았어요. 강수돌 교수님 책은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내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강수돌 교수 이야기가 “조금 먹고 조금 싸자”거든요. “자본에 휘둘리지 말자” 이런 이야기에 내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거에요. 

이지순: 올해 출판 계획도 다 세워놨어요. 출판사하면서 생긴 내 신조가 “돈 벌어서 좋은 책 만들자”에요. 앞으로도 보험해서 돈 벌어서 좋은 책 만들겁니다. 올해는 조식 선생이 쓴 ‘을묘사직서’ 해석본을 내고 1권 분량으로 내고 싶어요. 올해 내 목표는 을묘사직서 1만원짜리 책 1만권 팔아보기입니다. YMCA 회원들 한테도 책 싸들고 다니면서 팔지도 몰라요. 

 

지금 이 혼탁한 세상에 누군가 조식 선생처럼 그런 바른 말을 해줄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겠나 싶은데, 지금은 제대로 운동권도 없고 나이 많아서 얘기할 사람들이 다 사실은 몸을 사리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잃어버릴 게 많아졌거나. 아무튼 나는 우리사회에 할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지순: 제가 젊었을 때는 영업하고 사업하느라고 사람들을 폭넓게 만났어요. 그러다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좋다, 문정현 신부님이 옳다는 이야기 가지고도 어디서는 종북좌빨이라는 소리도 듣고 그랬어요. 자기들끼리 저거 좌파다 이러더라구요. 그런데 내가 출판사를 내면서 경남신문사 건물에 들어갔더니, 나보고 회색분자다 이런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이런 소리 들으면서 지금은 내 생각을 내 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나 싶어요. 내가 뭐가 두려워서...내 보신을 위해서 말을 아끼면서 살기도 했더라구요. 나의 보신을 위해서 말을 아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다음에 너무 오랫동안 할 말을 못하고 참아왔던 게 후회가 돼서 할 말은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려고 해요. 



인터뷰가 뜨거워 질때, 제가 사전 질문지에 있던 가족 관계를 물어보면서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남편과 사별하신 것을 인터뷰 하면서 처음 알았기 때문에 질문을 한 저도 많이 당황했습니다.

이지순: 우리 신랑이 죽었어요. 저 이혼한 거 아닙니다. 먼저 돌아가셨고, 딸 하나 아들 하나 있고, 딸은 결혼했어요. 아들은 올해 결혼할예요. 10월에. 아들은 충북 오송에 있는 바이오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딸은 창원시 공무원 그리고 사위는 LG연구원으로 다 잘나가요. 우리 아들 딸이 엄마만 잘 살면 된다고 해요. 이상한 짓 좀 하지 말라 그래요. 

 

그러면 내가 엄마는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을 것 같다고 말해줘요. 내가 생각하기에 성공하는 삶이란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삶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게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하고 싶은데 뭐 때문에 못하고 못 때문에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이윤기: 그럼 출판사와 보험말고 또 하고 싶은게 뭐가 있나요?


이지순: 나이가 들고 몸이 안좋아지니까 내가 진짜 내 몸뚱아리 하나에 지나치게 의지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입으로 말해서 돈을 벌고 또 머리로 하고 싶은 일에 막 돈을 퍼 쓰고 그랬는데. 이제 절대 딴짓을 안 하고 출판과 보험만 열심히 하자고 결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다른게 하고 싶냐하면 사실은 다포를 만들고 싶어요. 다포. 알지요? 

 

내가 다포를 좋아하는데 어딜 가봐도 이쁜 게 별로 없더라구요. 연꽃 있고 이상한 글씨 있고 이런게 다야. 조식 선생의 신명사도를 가지고 다포를 만들어볼까 궁리 중이에요. 그리고 독립서점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출판사하고 보험하고 나서 에너지가 안 될 것 같아서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묻지 않았는데도 올해 신간 준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먼저 해주었습니다. 


이지순: 남명 조식 시리즈로 을묘사직서를 준비하고 있구요.  하버드대 번역본인데 'AI시대가 과연 유토피아일까 아닐까'하는 내용인데, 번역이 마무리돼서 지금 편집 중인게 하나 있고, 중국의 고대사상을 다룬 책도 하나 있고 시집도 하나 계약했어요. 내가 출판사를 해보니가 사람들은 ‘단짠단짠’한 글을 좋아하더라고. 어려운 글을 싫어하더라고. 올해도 한 다섯 권 정도는 준비하고 있어요. 

이윤기: 작가, 저자는 어떻게 다 발굴하세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사람을 다 아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지순: 허권수 교수는 경상대에요. 그런데 나는 이 분을 몰라. 우리과 교수님한테 물어봐도 모르겠다 하고...여기저기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더라고. 여기저기 묻고 다녔더니 후배하나가 자기 동기과 한문학과 출신이 있다고 연결해주더라고. 그렇게 해서 허권수 교수를 만났고 책을 내게 된 거에요. 강수돌 교수는 우리 YMCA 회원인 정구일씨가 소개해줬고, 메일 주소만 받아서 구구절절 이야기를 써서 보내더니 원고를 받게 되었어요. 

 

또 <조식>책을 만들고 나니까 을묘사직서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책 좀 만들어달라고. 첫 번째 책이었던 <주역>은 원래부터 아는 분이었어요. 을유문화사에서 10만권 팔린 책을 쓴 작가였는데, 신생 출판사가 계약을 따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예요. 출판하고 나서 책 만들었다고 인사도 듣고 소문도 좀 났어요. 요즘은 책 내달라고 원고들도 오는 사람도 꽤 생겼어요. 
유명한 사람 책을 한 권 내서 단기간에 확 팔아보고 싶은데 우리 편집장 그런 책은 <뜻있는 도서출판>에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러는거예요. 

 

여기서 인터뷰이의 본분을 잃고 저의 독서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 참 늘어놓다가 정신을 차리고 질문지에 있는 질문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건강회복하고 정신 차리면 한 100명쯤 회원 모집 할 수 있어요 


이윤기: 네 위원님이 활동하시는 시민사업위원회를 웹진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이지순: 내가 시민사업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시민사업위원회는 지하련 주택을 보존하자, 시내버스를 편리하게 만들자는 하는 그런 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관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잖아요. 특히 시민사업위원회에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협업을 하고 하는 것이 너무 뿌듯했어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시민사업위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지요. 앞으로 연차가 좀 되고 내 건강이 좀 더 회복되면 시민사업위원회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요. 나로 인해서 세상이 좀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출판도 하고 또 다른 일들도 하지만, 시민사업위원회처럼 구체화시켜서 활동하는 곳은 많지 않아요. 나는 시민사업위원회가 시민운동을 구체화시켜서 조금씩 세상을, 눈에 딱 보이게 바꾸는 것이 좋아요. 그게 제일 좋았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보험여왕 출신 이지순위원에게 자꾸 빠져들었습니다. YMCA활동가가 하는 일도 사람을 설득하는 일인데, 이지순 위원의 이야기에 자꾸 설득이 되고 약간씩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YMCA 실무자들에게 특강을 부탁드렸지요.

이지순: 특강 보다도 내가 건강을 회복하고 정신을 차리면 회원 모집을 진짜 잘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내가 못 했잖아요. YMCA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세상 모든사람들이 한 달에 3만 원 내고 이런 거를 아까워하지 않게 만들어서 회원을 한 100명쯤 더 가입시키고 이래야 되느게 맞아요. 그런데 내가 막 가치있는 일이라고 설명을 하잖아. 그리고 회원가입 신청서를 내밀잖아요. 그러면서 매월 3만원 빠져나간다고 하면 그냥 1만 원만 하자고 그래요. 아직 그 정도에요. 안타깝지만. 

이윤기: YMCA 활동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이지순: 이경수 이사가 나를 찾아와서 회원 가입을 시켰어요. 나는 회원가입만 하면 나가서 바로 활동하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나오라는 소리를 안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회원 송년회 때 나갔어요. 그리고 그날 내 소개도 하고...... 그래서 YMCA 활동을 하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를 해서 시민사업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그때 보험회사 지점장을 그만두고 뭔가 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이경수 이사가 찾아왔고 처음에는 돈만 내다가 아무라 바빠도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던 거지요. 정말 열정적으로 하려고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어느 날 몸이 무너지면서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 지금은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올해부터 열심히 할께요. 

이윤기: 시민사업위원회에 바라는 점?

이지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데...시민사업위원회는 오랫 동안 활동했지만 항상 새로워. 살아 있더라고. 항상 새롭고 살아있고.  내가 저번에 어디 거기 그래 적었잖아요. 내가 만나는 경남의 리더라고 하는 사람들하고 비교하면 시민사업위원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에요. 오래 활동하지 않았지만, 내가 진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내 의견을 말해도 말해도 되는 곳이었어요. 아 ~ 처음에는 좀 달랐어요. 처음에 뭘 느꼈냐면 나의 말투와 시민사업위원들의 말투가 제가 만나던 사람들과 달랐어요. 언어가 다르다, 말이 다르다,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다하는 그런 괴리를 느꼈어요. 이건 여기에만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잘못느끼는데 저는 느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괴리가 없어졌어요. 지금은 더 이상 좋을 수 없어요. 


사무총장과 간사는 늘 YMCA 회원들 그리고 관계되는 사람들만 만나죠? 나는 책도 팔고 보험도 팔아야 되니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요. 대부분은 사회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그냥 내가 잘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런 의식이 뿌리 깊게 깔려 있어요. 창원시의회에 막말했던 시의원 있잖아요. 그런 사람 너무 많아요. 그 시의원을 비판하는 나를 욕하는 사람들 수두룩해요. 


내가 어떤 모임에 갔는데...희생자들이 이태원 놀러 가서 죽었다고 하는 그예요. 결국 내가 못참고 한 마디 했어요. 제발 그런 말하지 마라. 그게 네 자식이었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냐? 이게 돈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 우리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그런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 아니가? 그런데 왜 그걸 욕할 수 있냐? 21세기 대한민국이 놀러 가면 죽어도 되는 나라라는게 말이되냐. 이렇게 이야기 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어 버렸지. 

이윤기: 자 그럼 대화 분위기를 좀 바꾸겠습니다. YMCA에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김태석 위원장은 똑똑하고 말 잘 하는 사람... 난 똑똑한 남자 좋아해


이지순: 김태석 위원장. 

이윤기: 어떤점에서 김태석 위원장이죠?

이지순: 김태석 위원장 너무 똑똑하잖아. 난 똑똑한 남자 좋아해.

이윤기: YMCA에 똑똑한 사람 많잖아요?

이지순: 그 중에서도 김태석 위원장이 제일 똑똑해 보여. 말도 제일 잘하잖아. 사람들은 그냥 썰렁한 개그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데......똑똑하면서 유머가 나 하고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김태석 위원장은 재미있게 하자고 천박한 소리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천박한 소리 하는 거 나 딱 질색이거든. 김태석 위원장은 경계를 잘 아는 사람이야. 그래서 천박해지지 않으면서 또 옆에 사람들을 디스하지 않고(이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 재미있게 이야기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김태석 위원장은 똑똑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윤기: 이지순에게 YMCA란?(한 문장으로)

이지순: 앞으로 더 열심히 참여하고 우리 사회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조직. 

이윤기: 출판사를 시작한 까닭? 아까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했는데 다른 이유는 없나요?

이지순: 아 아까 말했던 그 유능한 편집장이 우리 남동생이에요. 이 사람이 서울에서 진짜 잘나갔어요. 내셔널지오그래픽 기획전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구요. 사진 전시의 지평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사진도 잘 다루고 글도 잘 쓰는 어마무시한 동생인데...강원도로 귀농을 했어요. 5년 정도 지나고 돈 버는 일이 필요하다고 해서 형제가 같이 출판사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어요.

 

그렇게 출판사 일을 시작했는데...편집장 월급 많이주거든요. 그래서 1년 걸려서 첫 책을 만들었는데 아직 본전을 못 건졌어요. 이게 본전을 못 건졌지만, 책이 딱 나왔을 때 아 이게 내가 하고 싶었는 일이네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출판사 운영하느라 보험으로 번 돈을 까먹었지만. 여전히 가슴이 설레요. 

 

아까 말했던 그 유능한 편집장이 우리 남동생이에요


이윤기: 출판한 책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책은 어느 책인가요?

이지순: 자식처럼 다 마음이 가요? 이 책(주역)은 제일 많이 팔렸지만 돈도 제일 많이 들었고 갑론을박이 많았어요. 이 책(조식)은 돈이 좀 적게 들었지만 거의 한결같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책인데 약간 지역적인 한계가 있고, 이 책(부디 제발)은 독자들보다 내가 읽고 내 삶이 많이 바뀐 책이에요. 

 

옷을 안 사 입고 편안한 복장으로 다닐 수도 있고, 아껴서 살고 소비를 줄이는 삶으로 바뀌고 있어요. 비닐이 안 쓰기, 일회용품 안 쓰기, 세제 안 쓰기, 집밥 해 먹기 이렇게 바뀌고 있어요. 보험 일만 할 때는 옷도 많이 사고 화장도 하고 네일도 하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안 해도 마음이 편해요. 차도 큰 차를 안 타려고해요. 

 

▲이지순 위원이 만든 책들


이윤기: 마산YMCA가 성장할 수 있도록 보태고 싶은 나의 재능이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피하다가 점심을 먹을 때 답을 해주었습니다.)

이지순: YMCA가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활동가들에게 제대로 급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만큼. 내가 앞장서서 판매 사업을 해볼까요? 뭐라도 수익사업을 만들어서 재정을 만들고 싶어요. 내가 그런 일에 재능이 좀 있어요. 

 

수익사업 이야기를 하다가, 한지선 팀장이 유정란을 한살림이나 자연드림 보다 훨씬 저렴하게 팔고 있다는 저의 고자질을 듣고 따끔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YMCA는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곳이 아니야, 좋은 물건은 제 값을 받고 팔아야 해, 싸게 팔면 좋은 건 줄 모르다니까."라고 말입니다. 올해 YMCA 유정란 값이 인상된다면 전적으로 이지순 위원 덕분(?)입니다.

이윤기: YMCA 활동에 참여시키고 싶은 지인이 있나요?

이지순: 올해 제가 추천해서 YMCA 후원회원이 된 이강화. 내년에 정년퇴직하거든요. 이강화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거든요. 경상대학교 학보편집장 출신이에요. 이인안 이사장하고도 친할꺼예요. YMCA 활동이 딱 맞는 사람이고 내가 같이 활동하자고 이야기 해놨어요. 

이윤기: 인터뷰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이지순: 밖에 다른데 나가면 내가 YMCA 시민사업위원회 위원인 것이 자랑스러워요. 난 정말 뿌듯해. 어느 날은 모임에 가서 아구찜만 한 그릇 먹고 와도 뭔가 큰 일을 한 것 같아요.

 

YMCA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일까요?
1주일 쯤 전에 급하게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두 번을 묻지 않고 승낙해주었습니다. 


1시간 조금 넘는 시간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지순 위원님과의 인터뷰는 저와 한지선 팀장에게도 새해 초부터 많은 울림이 되었습니다.

 

근처 남도식당에서 아주아주 맛있는 '장뚱어탕'으로 점심까지 사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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