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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

창원 시민 부러워하는 박물관 소유한 함안

by 조정림 2022. 12. 7.

작성자: 이지순(시민사업위원)

 

"아라가야의 현장 함안 답사기"

 

마산 YMCA 제3회 시민대학 프로그램으로 창녕과 함안에 지역의 역사를 배우고 탐방하는 교육이 있었습니다. 가야사 공부를 하고 답사를 갔어야 하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답사만 참여했습니다.

 

놀러 갈 때는 먹을 것이 많아야 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일어나 단감을 깍고 고구마를  삶아 두통을 보자기로 쌌습니다. 오늘 내가 무슨 짓을 한들 용서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버스타고 가면서 김주용 창원대학교박물관 학예 실장님이 함안 박물관에 개발 배경에 대해 설명 하였습니다. 신문 배달원이 마기총(말 갑옷)을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발견하고 마침 창원대 사학과 출신의 신문사 지사장이 이를 알아보게 되면서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개발과 함안 박물관 건립까지 이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하여 박물관 학예사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소중한 말들이었고 일을 성취하고 해낸 사람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왔던 함안박물관과 말이산 고분군

 

함안 박물관 처음 코스는 고인돌이었습니다. 함안 고인돌공원은 암각화 고인돌, 오곡리 12호 고인돌, 함안의 돌널무덤 등 다양한 고인돌 무덤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에 관한 역사적인 부분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돌에 별과 소용돌이 문양을 새기고 풍요와 다산을 빌었다고 합니다. 종이가 없어도 돌에 문양을 새기며 살았던 청동기시대의 삶은 행복했을 것 같습니다. 그림 한번 쳐다볼 여유도 없이 사는 현대인의 삶이 더 팍팍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박물관 내부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고분이라는 생각에 약간 주춤하기도 하기도 했습니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에 ‘미늘쇠-새의 날개 짓: 1500년의 아라가야가 되살아난다.’라는 제목의 안내문이 있습니다. ‘아라가야 사람들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유물에 새의 모양 장식 미늘쇠가 있다. 아라가야에서 새는 인간에게 풍요를 주고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해준다’라는 설명과 ‘새를 따라서 1,500년 전 아라가야’를 만나러 가자‘라는 안내문을 읽고 미늘쇠를 따라 진짜 아라가야로 떠나는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박물관안에는 각종 유물들의 설명과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 보다 잘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집만 한 무덤과 그 속에 발견된 유물 등 특히 사슴모양 뿔잔은 지금도 쓰고 싶을 정도로 세련되어보였습니다. 보물로 지정되지 못한 왕관이야기, 700년의 기다림 아라홍연 이야기....특히, 아라홍연은 성산산성 개발 과정에서 연씨를 수습하였고 분석결과 700년 전에 연씨였습니다. 농업기술센터와 협업하여 씨 담그기 작업을 하였고 계속되는 분갈이 작업을 통해 2010년 연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아라 홍연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고려시대에도 여전히 함안이 아라가야 의 옛 땅이라는 기록에 의해 아라홍연이라 명했고 고려시대의 불화나 불상의 연꽃대좌를 연상할 만큼 우아하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유물들을 돌아보고 미디어 아트센타에서 영상물 시청이 있었습니다. 아라가야 발굴과 제작과정을 담은 그냥 다큐멘터리 류일거라는 생각을 뒤집고 제주도 빛의 벙커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하고  살아있는 영상, 그에 맞는 음악, 배가 떠다니고 임금이 일어나고 아라홍연이 꽃을 피우고 사슴이 뛰어나와 돌아다니다 뒤돌아보는 장면까지... 이 장면에서 사슴이 다했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도에 땅을 얼마파고 어디에 무엇을 전시하고 이런 설명 없이도 아라가야 속 깊이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이제 땅위로 올라 말이산 고분군을 올랐습니다. 말이산은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우두머리 산에 오르니 높은 봉분과 진짜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오는 사진명소 핫플레이스 소나무와 그옆에 나무가 있었습니다. ‘봄에 오면 이쁘다는데 봄에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할 때 한겨울에 나비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비 따라 다닌다고 말이산 설명은 하나도 못 들었습니다. 설명 없이도 이쁜 곳이었습니다.

 


오전 탐방을 마치고 함안 옛 시장 통에 소고기 국밥을 먹고 오후일정인 무진정과 성산산성으로 향했습니다.
 
무진정 그리고 제주 오름 못지않은 성산산성

무진정은 조삼(趙參)선생께서 후진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시기 위하여 함안면 괴산리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으신 정자로서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無盡亭)이라 명명하였습니다. 조삼선생은 1473년(성종 4년)에 태어나시어 내직으로 사헌부 집의를 지내셨습니다. 

 

무진정의 현판 주련 기문은 백운동 서원을 지은 주세붕이 쓰셨다고 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주세붕이 더 익숙하기는 하지만 함안에서의 조삼 선생님의 위상은 대단하였습니다.

 

무진정 아래에는 둥근 연못이 있었습니다. 연못 한 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있고, 그곳에 나무로 지은 정자가 있습니다. 연못 안 정자로 건너갈 수 있도록 두 곳에 돌다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낙화 놀이를 할 때 참나무 숯가루를 광목 심지와 한지에 싸서 만든 낙화봉 수천 개를 설치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무진정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약간 높은 곳에 하루 종일 햇볕이 따스하게 들고 선선한 바람도 쉽게 드나들 수 있어 공부를 하거나 놀이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무진정을 나와 아직도 발굴 중인 성산 산성에 올랐습니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라는 토인비의 말이 있습니다. 함안군은 성산산성이 아라가야의 유적이라 가정하고 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발굴 된 거의 모든 유물은 신라의 유물이라 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함안군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성산산성은 그 자체로 좋았습니다.

제주도 오름 느낌이 있었습니다. 다 내어 보여 주는 산, 숨쉬기도 좋고, 걷기도 좋고, 하늘 쳐다보기도 좋고 사진찍기도 좋았습니다. 저질 체력 탓에  맨 뒤에 처지는 바람에 성산 산성  설명은 하나도 듣지 못하니 눈으로 보는 느낌만 남깁니다. 

 

켜켜이 쌓인 퇴적층이 발굴 중이었고 무성한 나무와 산성이 어울리게 조성 중이었습니다. 설명을 안 들으니 오롯이 산성에 집중 할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공부 하나도 안 듣고 나비 따라 다닌다고 설명 못 듣고 뒤에 쳐져서 설명 못 듣고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조정림 국장이 글을 써보라 했습니다. 그 때는 성산산성에서 막 감흥에 빠져서 일필휘지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돌아와서 2주나 지나 다 까먹고 다시 반추해서 쓰려니 엉망입니다. 그래도 각인된 것은 가까운 함안에 또 가고 싶은 박물관을 고분군을 산성을 찾은 것은 참 괜찮은 일었습니다.

 

이런 기획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마산 YMCA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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