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등대, 공주 촛불 - 김소진 회원]
마산YMCA 웹진(와이드림 2월호) 회원 인터뷰는 김소진(공주) 촛불입니다. 등대 활동하는 촛불님들은 각자가 원하는대로 불리고 싶은 이름(별명하고는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김소진 회원의 원칭은 ‘공주’입니다. 공주님께서는 마산YMCA 다른 열성 회원들처럼 YMCA 안에서 1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행복 등대에서 촛불 활동을 하고 계시면서 YMCA 본관 급식 교사이고, 아기스포츠단 차량 지도 선생님 그리고 어린이 수영 강사까지 1인 4역을 하고 계십니다. 이번 호 와이드림에서는 마산YMCA 17년 차 김소진 회원을 인터뷰하였습니다. |
이윤기: 안녕하세요? 오늘 갑자기 제가 차 한잔 하자고 했는데...혹시 저랑 인터뷰하는 거라고...누구 딴 사람한테 들었나요?
김소진: 네 부장님...아니 국장님한테 들었어요. 신문에 오늘의 운세를 보니까 ‘직장 상사랑 불화가 있을꺼라고 하던데...’ 이런 일이 생겼네요. 사무총장님이랑 불화가 생기기는 않겠지요.
다행히 불화는 없었는데...YMCA운동을 이야기 할 때 다른 의견은 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YMCA 활동 계기를 물어보았는데요. 대부분 다른 촛불들처럼 아이들이 아기스포츠단에 다니면서 등대 활동을 시작한 줄 았었던 제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김소진: YMCA활동은 2007년부터 시작했어요. 아기스포츠단 학부모로서 등대활동에 참여한 게 아니고, 등대 촛불활동을 먼저 하면서 2008년도에 광민이가 아기스포츠단에 입단 한 거죠. 끈기(노영희: 이장희 시민사업위원 아내)가 등대 활동을 함께 하자고 권유했고, 촛불대학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그때 끈기 딸 세진이, 그리고 조카 서정이가 다 아기스포츠단에 다닐 때였지요.
오늘 운세에 직장상사와 불화가 있을꺼라던데...
김소진 회원은 16년 차 등대회원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마산YMCA)에 왔는데, 친구보다 훨씬 더 오래 등대 촛불로 활동하고 지금은 촛불들 중에서도 ‘언니’ 촛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16년 YMCA 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무엇인지...그리고 YMCA 늪에 빠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김소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역시 ‘행복#’ 활동이었어요. 몽돌, 은하수, 줄기, 푸른솔, 마음 그리고 저까지 여섯 명이 야심차게 ‘행복#’을 열었잖아요. 저희는 YMCA라고 하는 든든한 백이 있어서 다 잘 될줄 있을 줄 알았어요. 사회적기업으로 등록도 하고 또 정부로부터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금도 받고 하면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꿈을 꾸었는데...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요.
등대에서 일본 연수가서 생협활동과 워커서 콜렉티브 활동을 보고 자신감이 생겨서 시작했는데, 생각만큼 자리를 잡고 성장시켜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일본에서 만난 분들은 몇 십년씩 노력해서 성과를 만들어 낸 건데 우리가 좀 성급했던 면도 있었구요.
‘행복#’은 양덕동 526-12번지(현재의 한국PME 사옥)에 마산YMCA가 있을 때, 등대 촛불들이 만든 사회적기업입니다. 친환경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유통하고, 친환경 반찬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회적기업이었는데, 새 회관 건축을 위해 당시 회관을 매각하면서 2016년으로 사업을 중단하였습니다. 따로 매장을 마련하여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김소진: ‘행복#’에서 좋은 재료로 반찬을 만들어서 판매하였는데, 해보니까 한계가 있더라구요. 영업을 해서 약국이 거래처가 되었는데, 채소와 해조류를 중심으로 짜놓은 YMCA 식단이 통하지 않더라구요. 매일 고기반찬을 넣어달라고 하는데...우리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려니 매일 고기 반찬을 넣고는 도저히 단가가 안 나오는거예요. 이런 경험을 통해 사업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거죠. 숲안 마을에서 좋은 야채를 공급 받았는데...계절 야채가, 매주 비슷한 야채가 들어오니까 이것도 한계가 느껴지더라구요. 투자를 늘인다고 사업이 더 성장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계를 맞이한거죠.
YMCA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행복#’
이윤기: 결국 실패로 끝난 실험이었던가요?
김소진: 손익 측면에서는 실패 맞지요. 정부 지원이 중단되고 나니까 자립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어요. 하지만 저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움의 과정이었죠. 적어도 이렇게 운영하면 실패한다는 걸 배웠고 당시 촛불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회활동과 경제 활동에 다시 참여하고 있어요. 모두에게 배움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김소진: ‘행복#’을 그만두고 2017년부터 몽돌과 함께 YMCA 급식 교사로 일하게 되었지요. 2017년 3월 새 학기부터 YMCA유치원 건물에서 급식 교사로 일하다가 5월에 새회관으로 이사를 하고 지금까지...벌써 7년째 일하고 있네요. ‘행복#’ 마무리 할 때.... 사무총장님하고 허은미 부장이 도와달라고 해가지고... 지금까지 같이 일하고 있는거죠.
여기서 서로 이견이 있었습다. 제 기억으로는 공주(김소진 회원)님과 몽돌님이 먼저 ‘행복#’에서 YMCA유치원 급식까지 맡았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먼저했고, 그래서 ‘행복#’을 정리하면서 급식교사로 모셔온 것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윤기: 선생님은 원래 자격증이 있었잖아요. 자격증 관련된 일은 왜 안하세요?
김소진: 제 자격증은 경력이 많아요. 오랫 동안 자격증 혼자서 일을 했거든요. 그래서 자격증 격력은 회사에 가면 한 부장급 정도됩니다. 그런데 제 실무 능력은 여전히 사원급이거든요. 그러니 실제로 자격증과 관련된 일을 하기는 어렵지요.(무슨 자격증인지는 알려고 하지 마시길...)
이윤기: 등대 촛불 활동은 김소진 회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김소진: 저뿐만 아니라 많은 촛불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하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사회활동이 중단되잖아요. 이른바 경력단절이 되는거지요. 그렇게 결혼,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엄마)들이 새로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곳이 바로 등대인 것 같아요. 촛불대학을 통해 공부도 하고, 배우자와 아이들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때로는 위로 받고, 격려 받는 모임이 등대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독서지기, 영상지기, 시사지기, 사귐지기 같은 활동을 통해 내 아이뿐만 아니라 이웃과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거구요.
이윤기: 결혼 전에 친구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친구들보다 등대 촛불들과의 친밀도가 더 높은 까닭은 뭘까요?
김소진: 우선 학교 때 친구들은 결혼을 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가기도 하고, 또 결혼 시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관심사가 일치하지 않아요. 그런데 등대활동을 함께 하는 촛불들은 나이는 달라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다보니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육아, 남편, 시댁이라고 하는 공통분모가 있다보니 서로 같이 울고 웃는 그런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웃음과 눈물의 위로 끝판왕 등대 수련회
김소진: 그 결정판이 바로 등대 수련회에요. 등대 수련회를 하면 ‘씨앗(자녀) 캠프’를 같이 하잖아요. 정말 오랜만에 아이들 걱정을 내려놓고, 촛불들과 같이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하고, 술도 한 잔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밤을 새워 나누다보면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등대는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여성(엄마)들에게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 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이윤기: 그럼 이렇게 의미있는 등대활동을 8~10년쯤 되면 하나, 둘 떠나거나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 원인은 뭘까요?
김소진: 등대 활동이 마음의 안식처이자 새로운 사회활동을 준비하는 곳은 분명해요 그런데 등대 활동을 하면서 촛불들이 경력단절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동안에 아이들은 엄마의 돌봄이 덜 필요할 만큼 자라게 되더라구요. 등대활동이 8~10년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의, 엄마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결혼, 출산, 육아를 거쳐서 아기스포츠단에 입단할 때쯤 새롭게 등대활동을 통해 외부 세계와 소통을 시작하고, 등대활동을 하는 동안 아이들도 함께 자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는거죠. 그럼 등대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그런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라고 생각해요.
김소진: 라이프 스타일을 받아들이면서 매주 모이는 등대활동을 마치면 새롭게 좀 더 느슨하게 활동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국장님한테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요. 촛불대학에서 공부하고 열심히 매주 모여 활동하는 시기를 대학 학부 과정이라고 한다면, 다시 사회 진출을 시작할 때 대학원 과정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매주 모이는 등대활동을 그만둔다고 해서 그냥 헤저지지 않아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계속 인간관계를 이어가는데, 시간이 지나면 YMCA와 끈이 점점 얇아지고 그러다보면 그냥 계모임이 되는거거든요. YMCA가 등대 대학원 과정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등대활동도 아기스포츠단처럼 7~8년 활동하면서 촛불들을 성장시켜서 사회로 내보낸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등대활동, 대학원 과정이 필요하다
이윤기: 그럼 등대 활동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김소진: 가장 아쉬웠던 것은 앞서 말씀 드린대로 등대가 학부 과정이라면 대학원 과정을 만드는데 번번히 실패한거죠. 사실 등대에서 동아리 활동을 해보려고 ‘산악회’를 만들기도 했어요. 다들 산에 가는 것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니까 잘 될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동네 가까운 산만 좀 다니다가 모임이 흐지부지 되었어요.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구요.
김소진 회원에게 YMCA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김소진: 저에게 YMCA는(삶의) "원동력" 입니다. 저는 YMCA가 그냥 일터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등대 활동을 통해 촛불들과 만나고 있고, 또 급식 준비를 마치면 젊은 실무자들과 소통하는 것도 즐겁고, 차도 같이 마시고, 세상 이야기도 나누고 새로운 정보도 얻고, 선거 때가 되면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는 그런 곳입니다. 저는 제 삶의 원동력이 YMCA라고 생각해요.
YMCA는 내 삶에 원동력
이윤기: 아기스포츠단 출신 광민이와 어린이-Y 출신 소연이는 YMCA를 만나서 잘 성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소진: 네 둘 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청년으로 자라고 있어요. YMCA에서 수영을 처음 배운 소연이는 체대 4학년 때부터 수영강사로 어린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어요. 아이들 둘다 YMCA를 통해서 스키도 처음 배우고, 수영도 처음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지요. 부모들이 다 해줄 수 없는 여러 경험을 아이들이 YMCA를 통해서 했다고 생각해요. 역사 캠프를 정말 좋아했던 광민이는 ‘친구들이 왜 역사가 어렵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거든요.
아 그리고 아기스포츠단을 함께 다녔던 광민이 친구들은 청년이 되어서도 서로 만나고 모임도 함께 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들이 있던 것도 YMCA 아기스포츠단에서 얻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쉽게도 광민이는 좋아하는 역사 대신 기계공학 전공하고 있다더군요. 제가 AI 시대에는 기계공학보다 역사학이 더 나은 학문이 될 수도 있다고 살짝 엇박자를 냈습니다만,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세상이 와도 로봇 설계는 해야되니...그런 일을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시더군요.
이윤기: 급식 교사는 정년(65세)까지 하실거죠?
김소진: 알 수 없지만 YMCA 급식교사는 아기스포츠단 학부모 중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YMCA의 좋은 먹거리 운동 취지를 알아야 하고, 그래야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
단 1차 목표는 ‘바람’이 아기가 아스단을 졸업할 때까지는 할 겁니다.(바람님 아기는 아직 아스단 입단 전이기 때문에 7세 졸업 때까지 계산하면 한 7~8년은 더 남았다) 아 ~ 그리고 제 자리를 이어 받으려고 하는 아이가 있어요. ㅋㅋ 조채린(조정림 국장 둘째)이 나중에 커서 급식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이윤기: 채린이 한테 물려주려면 정년까지 하셔야겠네요. 채린이가 자라면서 변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마 인수인계는 어려울겁니다. ㅋㅋㅋ
그런데 촛불명(원칭)은 왜 ‘공주’라고 정하셨어요?
김소진: 안 그래도 Y를 오래 전에 그만둔 선생님을 길에서 만났는데, 지금도 저를 ‘공주님’이라고 부르더라구요. 사실 큰 의미는 없어요. 등대활동 시작하면서 원칭을 정하는데, (당시)조정림 부장한테 그럼 공주라고 해도 되냐했더니...“뭐든지 상관 없다”고 하는거예요. 그렇게 우연히 공주가 되었고, 17년째 공주로 살아가고 있지요 ㅋㅋ
김소진 회원과 촛불들의 YMCA 등대활동이 생애주기에 따라 다음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습니다. 김소진 회원은 앞으로 YMCA에 바라는 점으로 “지금보다 좀 더 살림이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실무자들이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게 되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한 달에 한 번 YMCA 이사회 때 저녁 식사를 하시는 이사님들, 그리고 가끔 회관에서 점심 식사를 하시는 허정도 역사편찬위원장님 모두 “YMCA는 밥이 참 맛있다”고 하십니다. 허정도 위원장께서는 식사 때마다 김소진 회원에게 “밥이 맛있었다”는 인사를 하십니다.
제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김소진 회원은 “재료가 좋으니까 맛있는거”라고 하셨습니다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사실 YMCA에서 사용하는 친환경 재료들은 몸에는 좋을지 몰라도 맛있는 재료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매일 식사하는 실무자들부터 한 달에 한 번 식사하는 이사님들까지 모두들 “밥이 맛있다”고 하는 것은 식당 밥처럼 하지 않고, 집밥처럼 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산YMCA에서 1인 4역을 하시는 김소진 회원, 앞으로도 급식 선생님으로 또 등대의 큰언니로 좀 가늘더라도 길게 길게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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