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석 위원 (창원시평화인권센터 운영위원)
전교생 14명의 작은 학교 곤명중 아이들이 마을 이야기를 책으로 엮겠다며 질문지와 녹음기를 챙겨 곤명의 25개 마을 현장 답사를 갔다. 마을마다 이장님과 주민들의 자랑이 대단했다. 특히 성방리는 학생들 방문에 다과를 준비하고 마을을 이끄시는 여러분이 반가이 맞아주며 마을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삼국시대 성지(城地)가 임진왜란 때 호국 성지로 거듭났고, 산성 정상부에 다슬기 화석과 공룡 화석이 널브러진, 조선시대 면 소재지였던 과거와 마을 우물 14곳이 남아 있는 살기 좋은 마을이라 자랑하시는 표정들이 너무 밝아 덩달아 자긍심이 솟아났다.


성방리에서 야산 하나를 끼고 돌아 찾아간 작팔리의 구몰마을, 작팔마을, 신흥리의 만지마을은 분위기가 달랐다. 1960년대 홍수방지를 위해 진양호가 건설될 때도 남의 일로 여겨졌지만 1990년대 보강공사로 수위가 높아지자, 세 마을은 벼농사하던 넓은 들판을 잃었다. 보상은 받았지만 떠날 수 없어 야산의 밭을 일구며 지금껏 살고 있다고 하셨다.
물에 잠긴 들판은 시간이 흐르며 수면 가장자리로부터 버드나무 군락으로 변했고, 그 숲은 밤의 울음소리와 야생동물의 이동, 봄철 꽃가루라는 형태로 주민들의 생활 전반을 압박했다. 지나가는 이들은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드리운 ‘아름다운 버드나무 숲’이라 여기지만 그 풍경은 주민들에겐 소음 · 피해 · 질환으로 읽히는 일상의 압력이다.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마을의 혈맥을 단절해도 학문의 맥을 이어온 마을이라 자랑하시던 작팔 노인회장님도 버드나무가 마을의 행복을 앗아 갔다며 안타까워하셨다.
현장에서 수집된 진술은 구체적이고 반복적이었다. “밤마다 울음소리에 잠이 깹니다.”, “아침이면 밭고랑이 발자국으로 뒤집혀 있어요.”, “봄에는 창문을 못 열고 약을 달고 삽니다.”, “손자들이 오면 코가 막혀 오래 못 있어요.” 세 개 마을에서 말하는 이만 달랐을 뿐 내용은 거의 동일했다. 사람이 먹을 곡식을 지키기 어려워지자, 동물들이 먹지 않는 깨만 겨우 남겨 키우는 사례가 잇달았고, 밤의 불안은 수면을 깨뜨려 집의 휴식 기능을 약화했으며, 봄철 고농도 꽃가루는 호흡기 증상을 악화시켜 특히 고령 주민에게 치명적인 부담이 되었다. 손자들의 방문이 줄고 체류 시간이 짧아지는 상황은 정서적 상실을 넘어 가족생활의 실질적 제한으로 이어졌다. 구몰 이장님의 체념이 찾아간 아이들의 표정까지 삼켰다.
“십여 년 전 수자원공사가 버드나무를 베어냈다”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현재 숲은 다시 자랐다. 주민들은 다시 나무를 베어달라는 소극적 요구만 할 수 있을 뿐, “현실적으로 다른 방법이 무엇이 있겠느냐”라는 체념 섞인 말과 함께 화를 참지 못한 주민이 집 가까운 수십 미터의 베었다 고발당하여 수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를 보탰다.
이동성과 자원이 제한된 노년층에게 밤의 소음 · 밭의 훼손 · 봄철 꽃가루는 ‘불편’을 넘어 생활 기반을 잠식하는 구조로 작동했다. 평균값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교차적 취약성이 세 개 마을 모두에서 확인되었고, 피해는 통계보다 먼저 일상의 누적 손실로 체감되었다.

이들 마을에서 생계 · 건강 · 가족 · 주거 · 문화의 권리가 동시에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으며, 그 총합은 ‘사소한 불편’이 아니라 존엄의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수면 위 풍경의 정적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생활의 조건이 분명히 존재하며, 권리는 그 조건 위에서만 실제로 작동한다. 지금 이 세 마을에서 확인되는 것은, 사람들이 “여기서 계속 살아갈 권리”가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부의 시선에 비친 ‘풍경’과 내부의 체감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정확히 기록하는 일, 그 자체가 지역에서 성장하는 중학생들이 인권의 언어로 남겨야 할 숙제 같은 것이 되었다.
충북 영동의 노근리에서 6·25 때 미군 항공기 사격에 따른 250~300여 명의 양민이 학살당한 일이 뉴스를 통해 회자되면서 그나마 ‘노근리 평화공원’이라도 생겼지만, 우리 아이들이 만난 곤명의 조장리 주민들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당시 미군이 하얀 옷을 입은 양민에겐 폭격하지 않는다는 소문에 따라 주민들은 흰옷을 입고 마을 앞 곤양천에 모여 장대에 하얀 깃발까지 달고, 민간인임을 알렸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미군 전투기 4대의 무차별 기총소사로 100여 명이 희생되었는데 마을에는 비석 하나 세워주지 못했다며 애석함을 전했다.
약 20년 전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를 다녀갔지만 이후 소식이 없고, 남은 희생자 가족들은 전쟁 후 두려움에 마을을 다 떠나 지금은 당사자가 없어 국가에 민원을 제기할 수도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하셨다. 같은 희생을 당한 마곡리도 마찬가지였다. 조장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 한 분은 답답함에 중학생들이 만드는 자료에라도 담아달라 당부하셨다. 아이들이 말하길 누가 배상해야 하나요? 답이 곤궁하여 찾아봤지만, 배상법제(특별법)에 의한 포괄적 보상 제도가 아직 정비되지 않아,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대상으로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곤명이란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곤명에서 아침을 맞고 곤명에서 별을 보는 날들의 연속이다. 곤명은 아이들의 사랑이자 미래와 예술적 삶의 기반이다. 아이들 눈에 인권의 사각지대가 없는 오롯이 아름다운 추억 담긴 삶의 기반으로서의 ‘곤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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