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YMCA 임정로드 연수기
| - 일시: 2025. 6. 4(수)~6.8(일) 4박 5일 - 장소: 항주(항저우), 남경(난징), 상해(상하이) - 참석: 20명 (권다영, 김경년, 김정하, 김태석, 박수연, 서익진, 신삼호, 옥명훈, 윤서연, 윤서찬, 윤태원, 염진아, 이경수, 이승준, 이윤기, 임기준, 정규식, 정은희, 허정도, 조정림) |

2025년,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상해, 항주, 남경을 방문하는 특별한 해외연수를 떠났습니다. 시민사업위원회는 2년에 한 번 해외연수를 진행해왔으며, 2년 전에는 몽골을 찾았습니다. 올해는 ‘임시정부의 자취를 따라’라는 주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중국 방문이 결정되었습니다. 출발에 앞서 이승준 위원이 준비한 태극기와 함께 기념촬영을 마치고, 상해로 향했습니다.
상해에서 항저우로, 연수의 첫 걸음
20명이 함께한 이번 연수는 상해 공항에 도착한 후 항저우로 이동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김정하 위원장님의 인사말은 첫날의 분위기를 묵직하게 열었습니다.
“아직 임시정부 유적지를 보지도 않았는데, 상해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먹먹합니다.”
현지 가이드는 김혁 선생님으로, 조선족 출신임을 밝히며 다음과 같은 말로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다른 나라에 임시정부를 세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버스 안에서는 YMCA 특유의 유쾌한 소개 시간이 이어졌고, 연수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습니다.
퀴즈로 채워진 유쾌한 이동 시간
항저우까지는 약 3시간의 버스 이동. 가이드가 “산이 보이면 항저우에 다 온 것”이라 했지만, 산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승준 위원이 준비한 ‘용수당(꿀타래)’을 계기로 김태석 위원이 퀴즈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버스 안은 퀴즈대회장이 되었습니다. 퀴즈는 생각보다 본격적이었습니다.
- 상해임시정부 수립 연도
- 중국 군벌 정부의 마지막 실세 ‘장학량’
-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이원록(이육사) 등
역사 퀴즈로 의미를 더했으며, 김태석 위원의 넌센스 퀴즈로 웃음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항저우 도착, ‘청하방’에서 과거를 걷다.
드디어 항저우 도착. 도시는 공영 자전거, 가로수, 신호등, 공원 등 잘 정비된 경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청하방 옛거리는 남송시대 상점가를 재현한 거리로, 복원된 문화유산과 상점, 먹거리, 전통차와 소품가게가 어우러진 활기찬 장소였습니다.
거리를 따라 걸으며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역사 속 도시의 숨결을 느끼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복원사업의 과정을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거리는 볼거리가 풍성해 데이트 장소로도 손색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항저우에서의 첫 끼, ‘지방 요리 박물관’
한참을 걷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고, 기다리던 첫 식사 장소는 ‘지방 요리 박물관’이었습니다. 이름부터 기대를 모았던 이곳에서는 코스 요리처럼 다양한 음식이 연이어 나왔고, 전부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시원한 맥주 한 잔이었습니다. “역시 여행의 맥주는 진리!”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짧은 뒷풀이
식사 후에는 ‘광전개원명도’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호텔은 쾌적하고 시설도 훌륭했습니다. 긴 이동으로 모두 피곤했지만, YMCA답게 첫날을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짧은 뒷풀이 자리를 마련해 한국의 정치상황을 이야기하고, 청년들과 함께할 미래에 대한 고민도 나누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터지는 아재개그로 분위기는 더 따뜻해졌습니다.
마산YMCA 임정로드 두 번째 날
두 번째 날의 아침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됐습니다. 빡빡한 일정과 난징으로 이동까지 감안해 모닝콜은 5시 30분, 로비 집결은 7시 10분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표였지만, 모두들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일찍 움직이는 이유는 단 하나, 임시정부 유적지를 한 곳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 설명 끝에 덧붙인 한 마디가 마음 깊이 남았습니다.
“재개발로 임시정부 청사가 사라질 뻔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노력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사실 남의 나라 유산을 대신 관리해주는 중국에 감사해야 한다.”
서호의 아침, 뇌봉탑에서 시작된 하루
임시정부 유적지를 방문하기 전, 이른 아침 시간을 활용해 항주의 관광지를 먼저 찾았습니다. 첫 목적지는 ‘뇌봉탑’. 중국 현지인에게도 인기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전 도착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계획 덕분에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977년에 세워진 뇌봉탑은 이후 왜구의 침략으로 훼손되었고, 1924년 완전히 무너졌다가 복원되었습니다. 완전한 원형은 아니지만, 꼭대기에서 바라본 서호의 풍경은 가히 절경이었습니다. 탑 주변을 한 바퀴 돌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서호는 원래 첸탄강의 일부였으나, 2천 년 전 인공 제방을 쌓아 지금의 호수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유람선을 타고 서호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시간 동안, 노래로 분위기를 띄워준 이승준·김태석·권다영·정규식·김경년 위원님 덕분에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벅찬 감정 속 임시정부 청사를 마주하다.
서호 도심공원의 길을 따라 버스로 이동하며, 관리되지 않은 듯 자연스럽고 그럼에도 정갈한 풍경에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했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벅찬 감정, 남의 나라에 임시정부를 둘 수밖에 없었던 그 현실이 공간 자체에 스며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의지에 마음 깊이 감사했습니다.
영상과 현지 한족 출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작은 글귀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눈과 마음으로 담았습니다. 해설사는 묻습니다.
“이 건물의 특징이 보이시나요?”
많은 이들이 대답합니다. “창문이 많다, 도망가기 쉽게…” 그 말 한 마디에도 다시금 마음이 아팠습니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현수막을 펼쳐 사진을 찍는 것이 어렵지만, 이곳만은 허락된다고 합니다.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 태극기와 현수막을 들고 단체 사진을 남겼습니다.

사흠방, 항주로 함께 옮겨온 독립당사
다음은 한국독립당의 당사, 사흠방을 찾았습니다. 상해에서 항주로 임시정부 청사가 옮겨지면서 당사도 함께 이사한 공간으로, 당시 주소는 34호, 40호, 41호입니다. 건물은 옛모습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고, 표지석이 그 자리를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이 소중한 장소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쉬움이 남은 청태2여사 방문 무산
이후 방문 예정이었던 ‘청태2여사’는 공연과 고속철 일정으로 인해 아쉽게도 들르지 못했습니다. 이곳은 상해에서 항주로 임시정부가 옮겨오던 당시, 잠시 청사로 사용되었던 공간으로 지금은 호텔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외관은 바뀌었지만 내부는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아직 표지석조차 없는 이곳이 하루빨리 유적지로 지정되기를 바랐습니다.
이 아쉬움을 김태석 위원님의 자세한 설명이 달래주었습니다.
“쫓기는 과정에서도 항주에서 꿋꿋하게 정부의 기능과 형태를 유지했다.”
그 말에 또 한 번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송성 가무쇼와 고속철, 그리고 난징 도착
푸짐한 점심 식사 후 송성 가무쇼를 관람하며 중국의 대규모 공연 문화와 관람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이어 난징으로 향하는 고속철에 올랐습니다. 편안한 좌석에 안심하며 1시간 20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 자연스레 대화는 ‘난징 대학살’로 옮겨갔고, 허정도 위원님의 짧은 해설이 균형 잡힌 시각을 더해주었습니다.
윷놀이로 마무리된 하루
호텔 도착 후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광장에 모였습니다. 도박만 아니면 뭐든 가능하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힘입어, 준비해간 윷놀이 도구를 꺼냈습니다. 20명 전원이 참여해 3팀으로 나눠 시작 시점에 결국 너무 시끄러워 공원 관리인의 지적을 받고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호텔방에서 다시 시도해볼까 고민했지만, 또 시끄러울 것을 알기에 포기하고 맥주 한잔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날이 저물었습니다.
“시민사업위원회와 함께하는 연수는 왜 연수다운지 알 것 같다.”는 말이 실감 나는 하루였습니다.

마산YMCA 임정로드 세 번째 날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향하며
셋째 날 연수의 시작은 유난히 무거웠습니다. 오늘은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하는 날. 허정도 위원님의 추천으로 출발 전 읽은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습니다.
이날도 이른 아침부터 이동이 시작되었고, 버스 안에서 짧은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허정도 위원님이 직접 진행한 강연에서는 창원과 난징을 연결하는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이야기 천자봉 전설, 그리고 항주YMCA 간사와 남경YMCA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조지 피치 박사의 활동이 소개되었습니다. 조지 피치 박사는 임시정부와도 깊은 인연이 있으며, 난징대학살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강연에서 제시된 세 가지 질문은 깊은 생각을 안겨주었습니다.
- 왜 일본군은 이토록 많은 사람을 죽였을까?
- 어떤 방식으로 이렇게 많은 살상을 감행했을까?
- 이토록 큰 사건이 왜 이상하리만큼 역사에서 덮였을까?
답은 하나로 정리하기 어렵지만, 아이리스 장의 기록을 통해 그 진실을 마주해보길 권하셨고, 녹음한 책 내용을 함께 공유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 기억의 공간에서 마주한 참상
기념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이곳은 실제 학살이 벌어졌던 ‘만인갱’ 위에 세워졌고, 수많은 유골이 발굴된 장소입니다.
실외 전시관에는 희생자들의 유골과 상황을 재현한 조형물, 생존자의 발자국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실내는 방대한 증언과 사진, 문서로 채워져 있었고, 일본의 부인과 왜곡에 대해 분노를 참기 어려웠습니다.

리지샹 위안소 진열관: 끝없이 흐르는 눈물
이어 방문한 리지샹 위안소 진열관은 1937년 점령 당시 실제 위안소가 운영되던 장소로, 2015년부터 전시관으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통곡의 벽’—벽면을 가득 채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얼굴이 시선을 붙잡습니다. 전시관은 ‘기본전시(A구역)’, ‘옛터전시(B구역)’, ‘테마전시(C구역)’로 나뉘며, 시간의 제약으로 모든 구역을 온전히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그 깊은 아픔은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특히 ‘끝없이 흐르는 눈물’ 조각상 앞에서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실제로 눈에서 물이 흐르는 조각상 앞에 놓인 손수건과 “눈물을 닦아주세요”라는 문구는, 위로가 아닌 함께 울게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군인 500명당 10명의 위안부, 하루 30명의 상대”라는 설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참담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 숨겨진 항일의 요람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국민당 총통부’를 둘러본 뒤, 우리가 향한 곳은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 터였습니다.
1932년부터 1935년까지 3년간 운영되었으며, 1기에서 3기 총 125명의 독립운동 인재를 배출한 곳입니다. 교장은 김원봉이었고 윤세주, 이육사, 정율성이 거쳐갔습니다. 우리가 찾은 곳은 3기생 훈련이 이뤄진 ‘천녕사 터’였습니다.
1, 2기 훈련지는 일본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천룡사 터만이 폐허처럼 남아 있습니다. 가이드도 처음 오는 곳이라 입구조차 찾기 어려웠고, 이승준 위원와 가이드의 노력으로 겨우 도착했습니다.
산속 깊은 곳, 폐허가 된 터 앞에서 우리는 현충일을 맞아 엄숙한 추모식을 진행했습니다. 이승준 위원이 준비한 구호와 시작의 말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문재인 정부때, 평양을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기차티켓을 보며,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윤정권이 아니었다면, 임정로드가 훨씬 더 많이 알려졌을텐데요. 늦게 찾아와서 미안한 마음과 이제라도 와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얽혀서, 임정로드를 더욱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네요. 걷지 않는 길은 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걸은 이 길이 미래세대에도 꼭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정하 위원장의 제향, 허정도·신삼호 이사님의 인사말, 그리고 이육사의 <광야> 낭독과 합창으로 마무리된 추모식은 많은 이들에게 눈물을 안겼습니다.

폐허 위에서 다시 길을 묻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으며 독립의지를 다졌던 그분들은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폐허로 방치된 이 터를 보며 “어떻게 더 많은 이들에게 이곳을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의 결단으로, 여행사와 상의해 이후 일정을 모두 조정하고 이 추모식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뜻깊었습니다.
상해로의 이동, 그리고 윷놀이
이제 상해로 향합니다. 2시간 가까운 고속철 여정 동안, 오늘의 체험과 느낀 점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어느덧 상해 도착.
저녁은 기다리던 한식—삼겹살과 김치. 더 반가운 건, 식당 주인과 가이드의 배려로 어제 못다한 윷놀이를 마침내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시민사업위원회와 함께하는 윷놀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벤트입니다. 손님이 나간 식당에서 판을 깔고, 가이드까지 함께하며 1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인 한판이 펼쳐졌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이날 밤은 호텔방 뒷풀이는 생략되었습니다.

마산YMCA 임정로드 네 번째 날
어제의 깊은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 네 번째 날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의 첫 방문지는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주가각(주자자오)입니다. 1,700년 전 조성된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수향마을은 명·청 시대 상업이 번성했던 흔적을 품고 있습니다.
주가각의 고즈넉한 골목과 운하 풍경도 인상 깊었지만,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펼쳐진 윷놀이 평가회와 ‘취두부 먹기’ 퀴즈 대회가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더했습니다. 연신 이어지는 이야기와 웃음소리에, 가이드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번 팀은 마이크가 쉴 틈이 없네요!”
마음을 다잡으며, 홍구공원으로
흥겨웠던 분위기는 다음 일정인 홍구공원과 윤봉길 기념관을 앞두고 다시 가다듬어졌습니다.
김태석 위원님이 낭독한 ‘오마이뉴스 임정로드 기행문’은 상해 임시정부의 역사와 건국절 논란을 짚으며 깊은 울림을 전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이 시계를 맞바꾸던 장면을 상기시키며, 이 장소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습니다.
홍구공원(루쉰공원)은 오래된 나무와 조용한 산책길이 인상적인 공간이었지만, 비가 내려 더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앞에서 두 차례 묵념을 올리며, 의거를 결심한 젊은 의사의 결단을 헤아려보려 애썼습니다. 기념관 앞에 이미 많은 추모 메시지와 꽃이 놓여 있었고, 우리는 미처 준비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 자리에 신삼호 이사장님이 메모장에 손글씨로 남긴 메시지는 마산YMCA의 마음을 담기에 충분했습니다.
“윤봉길 의사를 기리며… 마산YMCA 회원일동은 윤 의사님의 애국심을 길이 잊지 않겠습니다.”
루쉰의 말처럼, 길은 걷는 자의 것
기념관을 나와 우리는 루쉰 동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임정로드팀은 이곳이 윤봉길 의거의 실제 장소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동상 앞에서 허정도 이사님이 루쉰과 마오쩌둥의 일화를 소개하며 『고향』에서 남긴 루쉰의 말을 전했습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실상 땅 위에 본래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문장이, 이 순간에 다시 들리니 마음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누군가 걷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임정의 길’을 지금 우리가 다시 걷고 있다는 사실이 뭉클했습니다.

마침내, 상해 임시정부 청사
드디어 많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렸던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했습니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입장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한국인 자유여행객이었고, 이곳을 일부러 찾아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좁은 전시실 안은 관람객들로 가득했지만, 우리는 현장이 주는 무게감을 오롯이 느끼며 전시를 둘러보았습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만난 여성 항일운동가들의 모습은 또 다른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어린 소녀의 얼굴로 일제에 항거했던 이들의 사진 앞에서 쉽게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청사 관람 후에는 김구 가족의 거처였던 연경방, 신천지 거리 등 주변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마지막 밤, 다시 길을 묻다
이후 시간은 관광 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원(위위안)과 옛거리, 황포강 유람선까지 상해의 야경 속에서 연수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마지막 밤의 뒷풀이는 의미 있는 나눔의 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맥주 한잔을 앞에 두고, 이번 연수에서 우리가 보고 느낀 점을 나누고, 앞으로 이 경험을 어떻게 기록하고 실천으로 이어갈 것인지 진지한 논의가 오갔습니다.

끝이 아닌 시작을 위하여
4박 5일의 여정은 다소 빠듯했지만,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이곳을 청소년들이 자주 찾았으면 좋겠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과 배움은 책이나 영상으로는 결코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방치된 독립운동 유적지를 어떻게 보존하고 알릴 것인가’, ‘우리의 청소년들이 이 역사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번 연수는 단순한 방문을 넘어, 우리의 과제로서 역사교육과 기억의 실천을 고민하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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