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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YMCA 창립 80주년
회원활동/기진맥진 산악회

천지를 만나다, 사람을 만나다

by 조정림 2026. 7. 7.

마산YMCA 등산모임 ‘기진맥진’과 함께한 백두산 3박 4일 이야기

살면서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산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히말라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지리산일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단연 백두산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영산이라는 상징성 때문이기도 했고, 살아 있는 화산이 만들어낸 장엄한 자연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마산YMCA 등산모임 ‘기진맥진’ 회원 14명과 함께 그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행은 두만강과 백두산 서파·북파, 장백폭포, 금강대협곡, 그리고 용정까지 이어지는 3박 4일 일정이었습니다. 출발 전에는 밀린 일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지금 떠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지금은 단 한 가지 생각뿐입니다. 정말 오기를 잘했다.

 


여행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새벽 공항에서 만난 우리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습니다. 모두 각자의 일상을 마무리하고 겨우 시간을 내어 떠나는 여행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출국 수속을 마치고 단체사진을 찍는 순간부터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어느새 모두의 얼굴에는 설렘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은 잠시 내려놓고 여행자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연길국제공항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글과 한자가 함께 적힌 간판들이었습니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연길이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 도시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첫 식사는 연길냉면이었습니다. 양도 놀라웠지만 맛은 더욱 익숙했습니다. 함께한 옥 위원님이 "중국집 냉면 맛이네!"라고 말하는 순간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여행은 이렇게 작은 웃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두만강, 그리고 강 건너 북한

첫 번째 목적지는 일광산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강 건너가 북한입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순간, 평범한 강이 더 이상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도 속에서만 보던 국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추가 비용을 내고 작은 보트를 타고 두만강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유람선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배였지만, 두만강 위를 직접 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같은 풍경이 이어져도 "저곳이 북한입니다."라는 한마디가 풍경의 무게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드디어 백두산, 서파에서 천지를 만나다

둘째 날. 아침부터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습니다. 과연 천지를 볼 수 있을까. 
백두산은 자연보호를 위해 일반 차량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이동한 뒤 마지막에는 1,442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설마 고산증이 있겠어.' 가이드의 설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저는 몇 걸음 오르지 않아 숨이 차고 가슴이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처음 겪는 증상이라 순간 당황했지만,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으니 몸도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비가 내리고 안개는 더욱 짙어졌습니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빨리 올라가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마지막 힘을 내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지를 만났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천지는 맑고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안개가 스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잠시 모습을 드러낸 천지는 오히려 더 신비롭고 더 아름다웠습니다.그 순간은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모두 담아낼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나중에 내려와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가 내려온 직후 기상 악화로 입산이 통제되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백두산이 잠시 우리에게 천지를 허락해 준 것 같았습니다.

 


금강대협곡에서 만난 또 하나의 백두산

오후에는 금강대협곡으로 향했습니다. 1989년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협곡은 '동양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이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숲길을 따라 걷는 시간은 오히려 더 운치 있었습니다. 

새소리, 다람쥐, 초록빛 이끼, 깊은 협곡….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특히 평소 이끼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천지 못지않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북파, 천지는 만나지 못했지만

셋째 날에는 북파를 올랐습니다. 짚차를 타고 정상 가까이까지 오르기 때문에 천지를 더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정상은 짙은 안개에 완전히 갇혀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렸지만 안개는 점점 더 짙어졌고, 결국 천지는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여행은 늘 원하는 것만 얻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장백폭포가 들려준 자연의 힘

아쉬움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장백폭포였습니다.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들어낸 폭포는 상상 이상으로 웅장했습니다. 수많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자연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강이 없는데도 천지가 엄청난 수량을 유지하는 이유가 지하수와 강수량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자연의 신비로움에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곳곳에서 김을 내뿜는 온천수는 백두산이 살아 있는 화산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 용정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반가웠던 일정은 뜻밖에도 용정이었습니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김태석 산행대장님의 끈질긴 노력과 가이드의 배려 덕분에 용정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버스 안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듣고 함께 「서시」를 낭독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토지』를 읽으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용정 땅을 밟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해란강을 바라보고, 멀리 일송정을 바라보고, 용두레 우물을 둘러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여행의 주인공은 결국 사람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백두산의 풍경만이 아니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이어졌던 자기소개 시간, 갑자기 시작된 노래자랑,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웃던 시간, 힘든 계단에서는 자연스럽게 기다려 주던 모습, 저녁마다 둘러앉아 하루를 이야기하며 웃던 시간…. 그 모든 순간들이 백두산의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 주시고 끝까지 세심하게 이끌어 주신 김태석 산행대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3박 4일 동안 서로를 배려하며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기진맥진 회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백두산의 천지는 언젠가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흐려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함께 웃고, 함께 걸으며, 함께 감동했던 사람들의 얼굴은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백두산은 분명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백두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였기에 더욱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기진맥진과 함께한 3박 4일. 오랫동안 기억될 소중한 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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